시간의 변화에 따라 풍경의 깊이가 달라진다. 해안 절벽을 따라 천연목재 데크길이 이어진다. 백수해안의 독특한 절경이 집약돼 펼쳐진다. 칠산바다의 드넓은 풍경이 제대로 드러난다. 자연과 인공의 힘이 합쳐진 건강길이다. 바람 맞은 노을길에서 솔향기와 굴비 냄새가 난다.
ⓒ함우석 주필모자바위
노을전시관앞에서 본 칠산바다
백수해안 등대
백수해안 노을길 범종.
불갑사 전경
다시금 물이 차오른다. 빠지는 시간에 비해 들어차는 시간이 꽤 빠르다. 선명하게 새겨놓은 모든 자취가 사라진다.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나온 시간을 관조한다.
불갑사로 향한다. 버스 밖 풍경은 여전히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다. 아름다운 영광의 풍경을 천지신명으로 알린다. 법성포를 지나 불갑사에 다다른다. 94차 충북일보클린마운틴 일정이 불갑사에서 마무리 된다.
이즈음 꽃무릇(일명 상사화)은 물론 없다. 피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록 잎만 삐죽삐죽 보인다. 불갑사 가는 길은 붉은 빛 대신 초록빛이 온통 지배한다. 붉은 빛은 그저 저 멀리 불갑사 전각의 단청에서 빛날 뿐이다.
불갑사 경내를 둘러본다. 유서 깊은 고찰이다. 전남 영광군 모악산을 배경으로 터를 잡고 있다.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가 침류왕 1년 창건했다. 절집의 처음 이름은 제불사(諸佛寺)였다. 불갑사는 훗날 불리게 된 이름이다.
절집 이름이 부처 불(佛), 첫째 갑(甲)이다. 그만큼 으뜸이란 뜻이다. 불갑사의 문화재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대웅전(보물 제830호)다. 단청을 하지 않아서 더 고풍스럽게 보인다. 처마 조각과 연꽃 문양의 문살이 유명하다.
불갑사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쳤다. 1680년 중건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전쟁(6·25전쟁) 때는 산내의 여러 암자 등이 불타버렸다.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고 터만 남은 곳도 있다.
불갑사 입구부터 불갑사 경내까지 이르는 길은 고즈넉하다. 그늘진 산책코스를 따라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걷다 보면 찾아온 여름을 느낄 수 있다. 붉은 융단 펼치는 꽃무릇의 풍경도 즐겁지만 초록의 맛도 적잖이 괜찮다.
물론 꽃무릇이 피기 전 누리는 호사다. 너무 일러 꽃무릇은 아직 피지 않았다. 길을 걷다 보면 쏟아지는 여름을 느낄 수 있다. 그 속에 나를 던져놓고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다. 마음에 고요와 희열이 깃드는 시간이다.
유월 한낮 불갑사 가는 길은 한적하다. 피안으로 드는 숲길이다. 꽃무릇 고독과 정열을 함께 생각한다. 가장 뜨거운 날 피어남을 떠올린다. 수행의 고통을 재본다. 깨달음과 피안이 교차한다. 넓은 세계가 여러 가지로 진동한다.
불갑사에 꽃무릇이 필 날을 기다린다. 만수사화(曼殊沙華)가 닿길 소망한다. 클마 회원들과 인연을 생각한다. 삶에 정답은 없다. 소란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만다라꽃, 마하만다라꽃, 만수사꽃, 마하만수사꽃들이 비 오듯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