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사람들이 다시 길을 걷는다. 마침내 닫힌 공간에서 나온다. 온몸으로 자연과 만나 교감한다. 확 트인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편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활동이다. 신이 자연을 만들고 사람은 역사를 쓴다. 자연의 힘으로 행복의 꽃씨를 피운다. 한티 가는 길 도암지 풍경이 화사하다. 소나무와 벚꽃이 멋들어지게 만난다. 언택트 힐링 여행에 최적의 공간이다.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마음을 되돌아볼 여유를 되찾아 준다.
그대 어디로 가는 가다시 걷기여행을 시작한다. 전국의 명품 걷기길 중 한 곳을 찾아 걷는다. 그래도 비교적 덜 알려진 '다크 투어리즘'에 집중하려 한다. 걷는 길이 코로나19 백신이자 치료제임을 알리려 한다.
마음이 공허해질 때 가끔씩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로 가는 가'. 문득 떠오르는 길이 있다. 칠곡군 '한티 가는 길'이다. 한말 천주교 박해의 고스란한 현장이다. 믿는 자에게만 열려 있는 건 아니다. 누구든 걷고 싶은 사람들에게 길을 내준다.
한티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있는 한티성지를 찾아 가는 길이다. 한티는 19세기 초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피신한 순교성지다. 칠곡군이 국·공유지와 천주교 재단법인의 토지를 이용해 2016년 만들었다.
순교자들은 박해를 피해 한티에서 살았다. 포졸들을 피해 살다 죽고 묻힌 곳이다. 어떻게 보면 교우들이 박해를 피새 함께 모여 살던 곳이다. 무명 순교자들은 깊은 숲속에서 미사나 고해성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이 묻혀 있는 성지다.
길은 모두 5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은 '돌아보는 길'이다. 2구간은 '비우는 길'이다. 3구간은 '뉘우치는 길'이다. 4구간은 '용서의 길'이다. 5구간은 '사랑의 길'이다. 가실성당을 나서며 바로 이어진다. 전체 테마는 '그대, 어디로 가는 가'다.
한티 가는 길은 45.6㎞의 100리 길이다. 걸으면서 수없이 이 물음의 답을 찾게 된다. 길옆 순교자 묘지 앞에 서면 더욱 또렷해진다.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켰던 믿음을 보기 때문이다. 종교를 떠나 내 인생 행로에 대해 한 번씩 되돌아보게 한다.
모든 순례자들은 길 위의 사람이다. 믿음의 길을 사랑의 발걸음으로 걷는다. 걸을 수 있음을 기적으로 여긴다. 숙연해져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길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모두 함께 걷는 마주 오는 길이다. 만나는 길이다.
아무튼 한티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치유의 숲길이다. 서로 오가며 만나는 길이다. 순교의 고결함을 느낄 수 있다. 고귀하고 경건한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로 느낄 수 있다.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짧아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1구간만 해도 산을 3개나 넘고 저수지를 하나 끼고 돌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닮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어떤 순례자들은 이 길은 '한티아고 순례길'로 부르기도 한다.
성인(聖人)들의 삶 속에서 나를 찾아보려 한티로 간다. 무욕(無慾)으로 산을 오르내리듯 삶도 그렇게 가꿔보리라. 그대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