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회남재 숲길이 오색 단풍으로 물든다. 숲이 워낙 크고 짙어 다 보기 어렵다. 산새소리가 깊어가는 가을을 알려준다. 늦은 시월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다. 바다에서 금방 퍼올린 쪽빛 물을 머금고 있다. 길가의 빨강 노랑 단풍은 눈물 나게 예쁘다. 가끔씩 눈에 띄는 소나무 푸른빛이 신비롭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어려운 풍경이다.
ⓒ함우석 주필회남재 숲길은 지리산 중턱을 오르내리는 길이다. 청학동의 신비를 품은 길이다. 하동군 청암면과 악양면을 잇는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리산 삼신봉을 주산으로 한다. 이즈음 한 폭의 진경산수화다.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삼신봉 줄기를 타고 이어진다. 청학동 삼성궁에서 토지 마을 최참판 댁이 있는 악양면 등촌리까지다. 구불구불 10km 고갯길이다. 삼성궁에서 회남재 정상까지는 흙길이다. 승용차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너비다.
길의 방향은 회남정에서 다시 결정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산 중턱을 도는 걸 좋아한다. 평지를 걷는 듯한 편도 6km 원점회귀를 선호한다. 회남정에서 등촌리까지는 4km 포장도로다. 차가 다닐 수 있다. 아름드리나무 숲길이다.
첫 번째 길은 앞서 밝힌 대로다. 삼성궁에서 악양면 등촌리까지의 편도 10km다. 두 번째 길은 삼성궁에서 묵계초등학교까지 편도 10km다. 다른 또 하나는 삼성궁에서 회남재까지 왕복하는 12km다. 모두 회남정이 중간거점 역할을 한다.
산길은 세 곳 모두 구불구불하다. 한 굽이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두루마리 펼치듯 끊이지 않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도 점점 넓어진다. 고갯길 정상에 서면 지나온 길은 보이지 않는다. 지리산의 넉넉한 풍모만 보여준다.
회남재 숲길에서 청학동을 빼놓으면 '팥소 없는 찐빵'이다. 청학동의 공식 행정지명은 청암면 묵계리다.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다. 일종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전설 속의 푸른 학, 즉 청학이 울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믿음을 담은 지명이다.
대표적인 시설이 삼성궁이다. 삼성궁은 삼한시대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던 소도(蘇塗)를 복원한 곳이다. 환인과 환웅, 단군을 모시는 배달겨레의 성전임을 내세우는 시설이다. 동의하기 어렵지만 놀라울 시설임엔 틀림없다.
회남재 숲길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물론 청암과 악양 두 지역을 연결하는 소통의 길이다. 하지만 남명 조식선생이 걸은 '선비의 길'이기도 하다. 지리산 등정 과정에서 청학동을 찾다가 되돌아 간 일화가 유명하다.
남명 선생은 '유두류록(遊頭流錄)'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거기엔 지리산을 등반한 날짜와 인물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여행 경로까지 적고 있다. 50대 후반의 선비가 겪은 등산의 어려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위로 올라 갈 때는 한걸음 딛고 또 한걸음 더 내딛기가 힘들었는데 내려올 때는 발을 들기만 해도 몸이 저절로 흘러 내리는듯 하다"며 "선(善)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惡)을 따르기는 내려올 때와 같다"고 한 대목이 압권이다.
하동군은 매년 회남재에서 걷기대회를 연다. 옛 조상들의 애환을 느껴보고 선비들의 산 사랑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전국 규모 걷기대회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보이스트롯에서 2위를 한 김다현양 길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