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둘레길은 140km로 11개 코스로 이어진다. 코스마다 다채로운 풍경을 선물한다. 등산로와 샛길, 임도, 둑길, 옛길, 마을길 등이 교차한다. 치악산 국립공원을 넘나들며 걸을 수 있다. 풍광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기 좋다. 주변의 작은 마을 풍경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언덕배기 곳곳의 전망대 시야가 시원하다. 각기 다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꼭꼭 숨겨둔 비밀의 숲도 만날 수 있다.
ⓒ함우석 주필치악산 둘레길은 잠시 쉬어가라고 마련한 쉼터 같다. 웅장하고 험한 산속에 지은 휴헐산방 같다. 치악산 산길은 가파르다. 된 비알이 많아 치가 떨리고 악에 받쳐 올라간다. 산객들의 농담이 이해될 정도로 가파르다. 하지만 둘레길은 다르다. 작은 고갯길부터 둑길과 샛길이 섬세하게 이어진다. 그야말로 무장애 도보 여행길이다.
길은 걷는 자의 몫이다. 길 위에 선 사람이 자유롭든, 불편하든 그 사람 몫이다. 그 길에서 내면으로 이어지는 소통의 길을 닦는다. 세상과도 만난다. 치악산 둘레길은 안과 밖을 이어준다. 함께 어우러지는 길이다. 그 길을 걷다보면 관음사를 만난다. 거기서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거대한 108 대염주(大念珠)를 만날 수 있다.
염주는 글자 그대로 생각을 집중시키는 구슬이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를 소멸을 돕는 도구다. 주로 108개가 기본이다. 그러나 108염주만 있는 건 아니다. 10배나 5배인 장주(長珠)도 있다. 단주(短珠)라고 부르는 20개에서 30개 사이의 염주도 있다. 손목에 차는 합장주도 있다. 다만 그 기준은 108염주다. 염주는 범어로 m·l·라고 한다. 수주(數珠)·송주(誦珠)·주주(呪珠)라고도 한다. 염불의 횟수를 기억하는 구슬이라는 뜻이다. 염불할 때나 다라니를 외울 때 사용한다. 일정한 수의 구슬을 끼워 연결해 그 수를 기억하도록 하는 도구다. 보통 108주(珠)를 사용하는데, 이를 108염주라고 한다.
치악산 관음사 108 대염주는 세계 최대 규모다. 관음사는 대한불교 태고종 계열의 사찰이다. 1960년대 창건돼 역사는 길지 않다. 그런데 세간의 관심이 유독 이 절집에 집중된다. 특이한 볼거리 때문이다. 바로 108 대염주가 주인공이다. 대웅전 좌측의 천일기도 도량에 봉안돼 있다.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 염주는 재일교포 3세인 임종구씨가 만들었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분단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수령 200년의 부빙가 원목을 깎아 만들었다. 모주의 지름은 74cm나 된다. 무게는 240kg이다. 모주 좌우로 무게 60kg짜리 구슬 108개가 동아줄로 연결돼 있다.
임씨는 2000년 5월 똑같은 염주 세 벌을 만들었다. 하나는 일본 화기산 통국사에 있다. 남한과 북한에 각각 한 벌씩 봉안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 벌 모두 관음사에 있다. 관음사는 치악산의 아주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개통한 치악산 둘레길 1코스 덕에 둘레꾼들의 발길이 잦다.
1코스 답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돌아온다. 국형사 주차장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울창한 숲을 뚫고 청아한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108 대염주가 갖는 염원처럼 민족의 평화통일을 소망한다. 다시 하나 되는 날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