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작되는 계절에 남녘 끝을 찾는다. 이미 봄이다. 꽃샘추위가 매화나무 꽃잎을 떨어트린다. 그 옆에서 하얀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노란 유채꽃이 은근한 향기를 풍긴다. 마늘밭은 이미 짙푸르다.
걷기를 반복한다. 곧은 길, 굽은 길, 갈림 길을 이어 간다. 길 모양 따라 풍경이 변한다. 마음 속 느낌도 달라진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회원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봄맞이에 발그레 달떠 탄성을 지른다.
봄날의 발걸음이 사부작사부작 소리를 낸다. 남해 바래길이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선물한다. 해안을 끼고 있는 밭마다 마늘과 시금치 천지다. 해풍을 맞고 자라 초록 기운이 왕성하다. 걷는 내내 마늘 향과 갯내음이 귓불을 스친다. 가천 다랭이마을 풍경이 그림 같다.
ⓒ함우석 주필옛 해안초소
ⓒ함우석 주필남해 진달래꽃 만개
ⓒ함우석 주필충북일보클린마운틴 단체사진
ⓒ함우석 주필남해 바래길은 2년 전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됐다. 다랭이지겟길로도 불린다.
평산항 선착장 옆에서 시작된다. 1코스 종점은 가천 다랭이마을이다. 평산항은 아담한 포구다.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마을이다. 일몰 풍경이 좋아 화가들이 즐겨 찾는다. 항구 가까이엔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떠다닌다.
걷기 시작하면 초입부터 감성이 솟구친다. 짙푸른 바다 풍경에 압도된다. 걷는 내내 행복해 어쩔 줄 모른다. 고즈넉함조차 고맙다. 파란 봄동 배추와 마늘밭은 담백하고 시원하다. 개발이 더딘 탓에 해안선이 그대로 살아있다.
남해의 어머니들이 하나 둘 보인다. 물때에 맞춰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갯벌이나 갯바위로 나간다. 물질하는 해녀도 눈에 띈다. 해질녘 해초류와 낙지, 문어, 조개들을 한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온다. 모두 가족을 위한 모습이다.
바다가 준 선물은 때론 국이되고 무침이 된다. 어떤 건 말려서 도시락 반찬이 된다. 그래도 남으면 시집 간 딸래미(딸) 집에 보내진다. 어머니들은 대량 채취를 하지 않는다. 일용에 필요한 양 만큼만 채취한다.
'바래'는 어머니들의 그런 작업을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바래길은 어머니들이 이 일을 위해 들고 나던 길이다.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는 어머니들의 숨소리가 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소쿠리와 호미의 수고로움이 함께 한다.
바래길은 생명의 길이다. 어머니들의 고된 삶이 묻어나는 길이다.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길이 아니다. 선조들의 삶을 배우는 각종 체험 장이다. 어촌생활과 바래의 수고를 체험 할 수 있다. 선조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느낄 수 있다.
바래길은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된 삶의 이야기가 짙게 배어있다. 다랭이 논을 일군 고단한 삶도 품고 있다. 급하게 떨어지는 비탈이 삶의 나이테다. 한 줄 한 줄 세월의 이야기다.
가천마을 다랭이논엔 수고가 묻어 있다. 층층이 계단식 논을 일군 세월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농사지을 땅을 얻기 위한 힘겨운 싸움이었다. 묘하게도 가천마을 다랭이논은 공식적으로 108개다. 108 숫자 안에 모든 게 들어 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인색한 이정표는 정말 아쉽다. 초행자의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갈래 길에서 헛걸음하기 쉽다. 저 아래 길이 보이는데 내려갈 길을 찾을 수 없다. 팬션 뒤편 산으로 돌아가는 길도 찾기가 어렵다.
물론 지금의 불편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 감수할 수도 있다. 길이 주는 호젓함 하나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남해 바래길은 지금도 걷는 내내 행복을 선물한다. 그래도 남해군이 약간의 수고를 더하면 좋겠다.
이왕 나선 남해군이다. 남해 바래길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는다. 조금만 더 신경써줬으면 한다. 조금만 더 투자했으면 한다. 바래길을 처음 낼 때 심정으로 다듬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봄날 바래길이 더 행복할 것 같다.
길섶에 노란 민들레가 방실방실 웃는다.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머문다. 봄빛 일렁이는 남해 바래길에 행복이 깃든다. 느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