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은 뼈에 붙은 고기다. 뜯어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뼈에 붙은 고기를 발라먹는 재미를 고기의 맛에 포함시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등갈비는 누구나 한번쯤은 외식 메뉴로 먹어봤을 음식이다. 여러 외식업체에서 폭립이라는 이름으로 접했거나 직화구이, 등갈비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흔히 볼 수 있다. 한때 치즈 등갈비 등 여러 체인점들이 우후죽순 생겼던 것을 보면 등갈비를 찾는 수요는 분명히 있다. 조리 방식이나 소스에 따라 색다른 맛과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도 등갈비의 특징이다. 스무살에 치킨집을 시작해 여러 업종을 섭렵한 권미정 대표가 오늘만등갈비를 내세워 잠시 떠나있던 요식업계로 돌아온 것은 체인 사업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이영길 대표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판매하던 등갈비를 먹어본 미정씨는 서브 메뉴로 머물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스나 조리 방법을 조금만 개선하면 단독 메뉴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고기 손질 방법을 바꿔보기도 하고 굽는 시간이나 양념의 숙성 과정을 바꿔보며 등갈비 연구에 몰두했다. 수없이 만들고 먹어본 끝에 원하는 맛에 정착할 수 있었다. 오늘만등갈비는 바베큐등갈비 전문점이다. 미정씨의 맛간장 소스를 입혀 불맛을 더한 간장바베큐와 매콤한 특제 소스를 더한 등갈비 구이는 바로 먹을 수 있게 조리된 상태로 손님상에 오른다. 손님이 직접 굽지 않지만 충분한 불맛을 입고 나온다. 주문과 동시에 주방에서 구워지는 등갈비는 고온 고압 바베큐 기계를 거친다. 가장 적당한 식감과 맛을 위해 고기 손질은 영길씨가 직접한다. 뼈에 붙은 살을 최대한 먹기 좋게 손질해 다른 가게에 비해 넓적한 형태를 띈다. 뼈보다 넓게 펼쳐진 고기는 푸짐해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드러운 고기를 손쉽게 입 안 가득 즐길 수 있다. 직접 구워먹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불 위에서 육즙을 잃고 말라가는 고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촉촉하게 육즙을 머금고 한 입 뜯어도 쉽게 넘어가는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하고 싶었다. 각 테이블에 있는 버너에 찜기를 올려 오늘만등갈비의 맛을 끝까지 잡았다. 손님들은 취향에 따라 온도를 조절하며 따뜻하고 촉촉한 등갈비를 맛볼 수 있다. 고기와 함께 즐기는 어리굴젓은 미정씨의 손맛으로 완성한 독특한 곁들이 음식이다. 고추와 마늘 등을 다져 넣어 색다른 조합을 만들었다. 고기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배가된다. 과일과 양파 등을 갈아 넣고 고춧가루와 함께 일주일에서 열흘간 숙성시키는 매콤한 소스는 감칠맛 가득한 쟁반막국수에도 사용한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고기와 함께라면 끝없이 들어가는 또 하나의 인기 메뉴다. 일반적인 보쌈과 달리 바비큐 기계를 이용해 만드는 바베큐보쌈도 두껍지 않은 고기를 대각선으로 썰어내 특별한 맛을 담았다. 부드러운 식감과 감칠맛이다. 간장 소스를 더하거나 뺄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다. 오늘만등갈비에서는 친근한 서비스가 기본이다. 스스럼 없이 웃으며 다가서는 미정씨의 친절함과 서비스에 손님은 단골이 되고 친구보다 가까운 지인이 된다. 지난해 분평동에서 처음 문을 연 뒤 몰려드는 손님으로 오늘만등갈비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분평동은 분점으로 두고 율량동에 본점을 열었다. 저 멀리 거제에서도 오늘만등갈비의 맛이 전해진다. 맛깔나는 구성의 포장과 배달은 오늘만등갈비의 맛을 집까지 그대로 전한다. 매일 새로운 하루, 오늘만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자는 것이 오늘만등갈비의 목표다. 그 맛을 제대로 본 이들은 분명 오늘만 먹지는 않을 것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먹고싶다고 더 먹을 수 없고, 싫다고 안 먹을 수도 없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공평하게 조금씩 나이 들어간다. 어른들도 놀고 싶다. 일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니라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도 스스럼 없이 뛰어놀 수 있었던 아이들의 세상에서 멀어진 어른들은 마음껏 놀기 어렵다. 놀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인데 놀 수 있는 장소나 함께 놀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른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마련한 특별한 곳이 있다. 평범한 술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플레잉&포차를 내세웠다. 어른들만 놀 수 있는 이곳은 임민섭 신혜영 대표가 운영하는 '어른이집'이다. 이들은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고 시간을 보내던 10여 년 전의 어떤 카페에 대한 기억을 함께 가졌다. 타지에서 온 스무 살의 혜영씨에게 든든한 인맥을 만들어주고 민섭씨에게는 누나의 남편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해준 곳이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에 20대 청년들이 모여들어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놀이였던 장소다. 10여 년이 흘러 각각 사회의 구성원이 된 지금은 가끔 만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 외에는 놀 거리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공간에 대한 구상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청주 시내 맛집으로 인정받던 혜영씨의 라멘집이 지난해 '반일불매' 바람을 타고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직접 배워온 라멘 맛과 선점한 배달서비스로 2년여를 승승장구했던 가게다. 버티는 것은 6개월까지였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정리하려던 혜영씨에게 민섭씨가 손을 내밀었다. 프로그래머로 회사를 운영하는 민섭씨는 추억의 장소를 둘만의 색깔로 다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1년간 곁을 지키며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조건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구상했다. 아는 사람끼리 와서 술만 마시는 술집이 아니라 누구나 들어와서 즐길 수 있는 어른들의 놀이터를 꾸렸다. 혼자 오건 여럿이 오건, 어른이집에 있는 사람들은 소통할 수 있다. 주인장이 웃으며 말을 붙이고 함께 하는 놀이를 제안한다. 왁자지껄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끌려 선뜻 2층으로 올라오는 손님들도 있다. 혜영씨의 음식 솜씨도 한몫한다. 간단한 조리보다는 요리 과정을 거치는 음식을 안주로 낸다. 맛있는 요리와 함께하는 즐거운 술자리를 원해서다. 두 사람만의 특제 소스를 이용한 어른이집 떡볶이는 손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배달 업체로 따로 등록했다. 한 달간 삼시 세끼 떡볶이만 먹어가며 만들어낸 작품이다. 어른이집은 오후 6시에 문을 열지만 떡볶이 주문은 낮12시부터 가능해 낮부터 밤까지 떡볶이를 찾는 손님들의 주문이 여기저기서 이어진다. 가게에서 일정 금액을 주문하면 어른이집만의 화폐를 다시 제공한다. 이 화폐를 이용해 비어퐁이나 다트 게임, 카드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한편에 마련된 매점에서도 옛날 과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준비했다. 청주에 정을 붙이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가도 어른이집에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변했다는 손님도 있다. 혼자 왔다가 둘이 된 손님도, 나이를 불문한 우정을 쌓은 이들도 있다. 두 사장님은 사람이 좋아서 사람을 만난다. 만나는 사람은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크다. 호기심에 찾아왔던 손님들도 꼭 다시 찾아오는 어른이집의 인연들로 만드는 이유다. 쉬는 날엔 함께 캠핑을 가기도 하고 두 사람의 옥상에 초대해 고기를 굽는 날도 있다. 단골 손님의 생일엔 신청 메뉴를 받아 함께 축하한다. 결국 사람의 일이다. 기꺼이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안에서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청주 금천동의 한 골목에 들어서면 푸릇한 마당 너머로 화려한 색채감의 건물이 보인다. 들어서는 순간 깔끔한 실내의 전시물과 커피향이 반긴다. 익숙한 듯 독특한 집 구조를 따라 계단을 오르거나 내린다. 끝났나 싶으면 다시 방, 반쯤 지하같은 공간과 다락 느낌의 공간도 있다. 눈이 닿는 곳마다 감상할만한 것들로 가득하다. 갤러리카페 다운 면모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움직이는 발걸음에 자연스레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밖에 없다. 세월이 묻은 가옥을 여기 저기 어루만져 새롭게 꾸몄다. 무엇 하나 가벼이 보이지 않는다. 벽에 걸린 작품과 숨겨진 듯 놓인 물건이 조화롭다. 수십년 전 사용하던 다리미와 요강, 시계와 악기도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 담 넘어 재건축하는 주택에서 사용하던 문도 이곳에서 멋스러운 탁자로 새옷을 입었다. 자칫 어두울 수 있는 내부를 은은하게 밝히는 조명에도 배려가 느껴진다. 관람을 위한 최적의 조명이다. 벽마다 걸린 작품들이 빛과 조화를 이루며 벽면 하나가 독립적인 전시관이 된다. 차 한잔 즐기며 풍요로운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 지역 작가들의 작품 전시가 이어지는 이곳은 청주 금천동의 작은 골목을 지키는 40년 된 가옥이다. 박수정 대표의 이름을 넣어 정스다방이라고 이름지었다. 수정씨만의, 정스러운 문화 공간이다. 할아버지가 지으셨지만 잠시 놓아두었던 이 집을 생활 터전으로 바꾼 것은 십 여년 전이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관련 업계에서 일하던 수정씨는 교육가로 10여년간 일했다. 내 아이에게 좀더 신경쓰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아이가 마음껏 뛰며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된 주택을 선택하고 재정비 했다. 마당과 주택이 다시 보인 것은 아이가 자라고 난 뒤다. 훌륭한 교육장소가 됐던 주택은 붓글씨와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하는 자신을 위한 공방으로 다시 꾸렸다. 그리고 또 한번의 변화를 꿈꿨다. 400년 전통의 가양주를 만들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늘 지역 문화와 가까이 했던 배경이 한몫했다. 해외 교류전까지 섭렵하며 왕성한 작가 활동을 이어가던 중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훌륭한 작품으로도 시민들에게 충분히 다가서지 못하는 지역 예술인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량과 공간을 빌어 문화 중매쟁이의 역할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지난 8월 청주시의 동네기록관으로 선정되며 막연했던 꿈에 탄력을 받았다. 가치있는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스다방을 꾸몄다. 정스다방의 전시를 위해 작업하는 작가들도 각자의 기억과 새로운 영감으로 이채로운 작품을 내놓곤 한다. 지역 작가와 시민 모두에게 의미있는 장소이자 작가와 시민 사이의 벽을 허무는 문화공간이다. 한달에 3주 가량은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1주일 정도는 유동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곳곳에 숨겨진 동네 사람들의 물건을 찾는 재미도 있다. 수십년 자리를 지키다 사라진 우체국의 작은 간판이나 약국 구석에서 사용하던 다리미, 자개가 인상적인 장식장도 있다. 금천동 골목의 소소한 역사를 정스다방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이다. 수정씨는 이 골목을 지나던 할머니도 스스럼없이 들어서길 기대한다. 차 한잔 즐기러온 동네 친구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전시를 만끽하는 문화충전소가 되는 것이 목표다. 선뜻 미술관이나 전시장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면 정스다방에 먼저 들러보자. 중매쟁이 역할을 자처하는 수정씨가 나서지 않아도 공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동네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을 그저 마음 가는데로 감상하면 그만이다. 정스다방을 나설 때 쯤엔 마음 한편에 숨어있던 문화적 소양을 발견할 지 모른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첫 아르바이트 장소였던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커피머신이 들어온 것이 시작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된 연희씨가 맛본 커피는 그간 봐왔던 인스턴트커피나 캔커피와는 다른 음료였다. 씁쓸하면서 고소한 맛도 신기했지만 향기로 먼저 존재감을 알려왔다. 향긋한 커피 향에 매료된 연희씨는 곧 집에도 커피머신을 들였다. 부모님에게 먼저 커피를 소개했다.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커피의 진가를 알리고 싶었다. 늘 만들고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커피와 함께했다. 여러 카페에서 일하며 다양한 분위기도 접했다. 어떤 곳에서는 베이커리를 주력으로, 어느 곳은 커피와 차, 또 다른 곳은 브런치 등 커피와 어우러지는 음식도 함께였다. 10여 년이 훌쩍 지나는 시간 동안 커피를 다뤘다. 관리자로 일하면서 서너 번씩 바뀌는 사장을 교육하는 일도 생겼다. 어느 날 커피 너머로 보이는 음식들에 시선이 멈췄다. 취미로 배워온 요리 실력도 차근히 쌓인 뒤였다. 3년 정도는 피자와 파스타 등의 요리에 집중했다. 매장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자신감도 생겼다. 식재료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연희 대표만의 정직한 맛을 찾고 '미쁨식탁'의 문을 열었다. 장소도 특별하다. 11년 전 일했던 커피전문점이 업종을 바꿔 운영하던 곳이다. 직원, 손님 할 것 없이 그 장소에서 맺은 모든 인연이 여전히 이어진다. 좋은 기운을 주는 장소가 분명했다. 추억이 담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 싶었다. 어두웠던 분위기를 밝게 바꾸고 곳곳의 실내 장식에 신경 썼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연희씨의 취향이 가득 반영된 2층 내부는 사랑스럽다. 전면의 넓은 창이 소나무길의 햇볕까지 환하게 채운다. 미쁨식탁은 손님들이 머무는 모든 식탁을 믿음직한 음식으로 정직하게 차려내겠다는 의지다. 소스부터 정성을 담았다. 커다란 통에서 뭉근하게 우려내고 있는 것이 기본적인 토마토 소스다. 마늘과 양파를 볶아낸 뒤 토마토와 갖은 향신료를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래 끓여낸다. 시간이 주는 깊은 맛을 더하고 싶어서다. 통마늘을 직접 손질해 올리브 오일에 넣고 오븐에 구워낸 뒤 생크림과 채소 육수를 끓여 만드는 크림소스는 담백함과 감칠맛이 더해져 한 그릇을 모두 비워도 느끼함 없이 즐길 수 있다. 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를 더한 로제소스는 손님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쁨식탁의 상징이다. 이곳에서 유독 많이 쓰이는 루꼴라도 연희씨의 취향이다. 독특한 향을 갖는 향신 채소지만 샐러드나 피자, 파스타, 샌드위치 등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기 때문이다. 미쁨식탁에서는 신선한 루꼴라를 듬뿍 올린 파스타나 피자를 만날 수 있다. 평소 좋아하는 와인도 메뉴에 담았다. 식사와 함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하우스 와인과 미니 와인이 준비돼있다. 선호도를 고려해 조금씩 종류를 늘려갈 예정이다. 각각의 테이블에는 페퍼론치노와 함께 끓여낸 오일, 소금과 통후추가 놓였다. 건강한 맛을 지향하지만 손님들의 입맛에 따라 가미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새로운 식재료는 무조건 먹어보고 책과 SNS 속 활용 방법을 연구하거나 요리 클래스를 찾는다. 식재료와 조리법 등에 대해 많이 알수록 손님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오픈하면서 몇 달간 모든 손님에게 메모를 부탁했다. 메뉴나 가게에 대한 평가와 조언이다. 미쁨식탁의 메뉴판은 조금씩 변화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계절별로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대접하는 연희씨의 방식이다. 미쁨식탁은 단출하지만 푸짐하다. 정직한 재료와 정성 가득한 맛으로 채워져 믿을 수 있는 한 그릇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꽃이라는 글자에서 꽃망울이 터질 듯 생동감이 넘친다. 유려한 선들이 조화를 이루며 이어진다. 글씨에서 그림이 보인다. 글자 크기와 모양으로 변화를 주며 쓰여진 작품은 같은 글도 색다른 느낌으로 표현된다. 아름다운 글씨 캘리그라피다. 청주 금천동의 작은 공방 '연준흠 캘리그라피'를 가득 채운 작품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전한다. 노래 가사나 싯구가 연준흠 작가의 색깔로 다시 쓰였다. 일필휘지로 표현한 크로키 작품도 여럿이다. 인물 크로키도 곳곳에 보인다. 40여 년간 교직에 몸 담았던 연 작가는 지난 2017년 8월 31일 퇴직 후 바로 다음날부터 연준흠 캘리그라피로 출근했다. '취미 부자'로 통하던 선생님의 인생 2막이 가장 자신있는 취미 생활에서 시작됐다.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 정점을 찍었다. 영어 교사였던 연 작가는 영어 교육을 전공하며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영어 교육을 위해 작업한 책만 20권이 넘는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그림을 목표로 삼지 못한 것은 적녹색약 때문이다. 색채를 활용한 미술은 떠나보냈지만 크로키는 자신있었다. 동호회나 강습을 통해 꾸준히 해온 크로키는 취미이자 특기였다. 중학교 때부터 연주해온 기타나 30년 넘게 즐기고 있는 테니스, 새롭게 시작한 드럼 등 연 작가는 주변 사람 모두가 알만한 취미 부자다. 짧은 시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다. 늘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던 연 교장의 눈에 교사들이 모여 진행하던 캘리그라피 동아리가 들어온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초빙 강사의 수업을 함께 하다보니 더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서너명의 작가를 더 찾아 새로운 필체와 기법을 익혔다. 내친 김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 만번의 글귀를 써나갔다. 원래 친했던 먹과 화선지는 캘리그라피를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아름다운 글씨는 멋스러운 그림과 만나 더욱 표현력이 강해진다.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표현하는 작품은 같은 글귀라도 각각의 색을 입은 다른 작품이 된다. PC통신으로 영어 교육을 하기도 했던 정보화 능력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선뜻 적응할 수 있는 비법이다. 블로그, SNS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더 많은 작품을 접하고 익힌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 유명 작가와 교류할 시간을 빼놓는다. 새로운 재료나 기법에 목마른 연 작가는 영상 속 단서를 찾아 해외 직구로 재료를 구입하기도 한다. 40여 년간 무수한 제자들을 양성하고 교편을 놓았지만 새로운 제자들은 계속 생긴다.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해졌을 뿐이다. 수강생들을 가르치며 만들어지는 한 학기 동안의 체본도 제본을 통해 하나의 교과서가 된다. 3년간 모인 체본은 단계별, 구성별로 꾸려 연준흠표 캘리그라피 교본이 됐다. 독학을 위해서나 강의를 위해 구입하는 이들이 늘었다. 비대면 시대에 맞춰 온라인 강의도 진행한다. SNS로 만난 새로운 제자들은 이제 울릉도와 제주도에서도 가르침을 받는다. 연 작가에게 그림과 글씨는 소통의 수단이다. 그리는 순간의 즐거움도 크지만 받는 이의 기쁨으로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 얼굴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이유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시간은 길지않다. 하지만 모든 작품에는 몇 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을 그려낸 연 작가의 시간이 녹아있다. 연 작가의 머릿 속에 차곡차곡 쌓인 밑그림이 종이 위 작품으로 스며든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고기처럼 환경의 영향을 받는 음식도 드물다.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먹느냐에 따라 같은 고기도 다른 맛으로 느껴진다. '남이 구워주는 고기' '집 밖에서 먹는 고기' '숙성 고기' 등 고기 맛을 상승시키는 요인은 다양하다. 거기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접촉을 최대한 기피하는 요즘 분위기를 타고 특수를 누리는 곳이 있다. 맛있는 고기의 모든 요소를 충족시킨 것은 물론 십 여 동의 방갈로로 개인 위생까지 걱정할 필요없는 '초정바베큐캠프'다. 18년간 인견 맞춤옷을 제작하던 노현숙 대표와 인테리어 업계에 몸담았던 남편이 바베큐캠프를 열게 된 것은 흔하게 볼 수 없는 특별한 가게를 운영해보고자 했던 오랜 구상 끝에 이뤄졌다. 기계 제작에 일가견이 있던 남편이 판매용으로 만들었던 초벌구이 기계가 지나치게 높은 완성도를 선보인 탓도 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구와 실패를 거듭해가며 제작한 초벌구이 기계는 참숯과 황토, 맥반석이 어우러져 고기의 맛을 살린다. 적절한 온도와 시간, 적합한 고기 두께 등을 바꿔가며 수백번 씩 먹어본 뒤 찾아낸 맛이다. 기계를 판매하는 것보다 이 기계를 활용하는 것이 이익일 것 같았다. 이 기계와 특별한 가게 운영 방식을 접목하면 그동안 없었던 고깃집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에 아들이 수소문해 유통을 연결해 낸 특별한 제주흑돼지까지 더해졌다. 프리미엄 흑돼지와 육지 백돼지는 워터에이징 방식을 통해 숙성을 거쳐 초벌구이에 딱 맞는 옷을 입었다. 인테리어 하던 남편의 솜씨는 방갈로 제작에도 쓰였다. 가게 바깥으로 모두 14동의 방갈로를 만들었다. 적은 인원부터 대규모 모임도 가능한 크기까지 다양하게 갖췄다. 시원하게 개방된 자연 속에서 호젓하게 독립된 공간이다. 여름과 겨울에도 불편함이 없도록 에어컨과 온풍기 등 냉난방 시설도 넣었다. 비가 오면 빗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날씨와 상관없이 쾌적한 야외 바베큐캠프가 만들어 졌다. 가족이나 지인 단위로 예약이 이뤄지니 반려동물도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케이크를 사들고 와 생일 등 이벤트를 즐길 때는 주인장 부부의 센스있는 와인 서비스도 더해진다. 간단히 구워먹을 수 있는 초벌 구이된 고기를 6~7가지 기본 찬으로 제공된 현숙씨의 음식 솜씨와 함께 즐기면 된다. 파절이에 들어가는 소스마저 9가지 이상의 재료가 쓰인다. 다른 고깃집에 비해 파 소비량이 월등히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된장찌개 육수는 10가지 이상의 재료를 넣어 끓여낸다. 국물갈비에 사용하는 맛간장도 현숙씨가 달인다. 간이 달라지거나 맛이 변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되는 마음에 잠 자는 시간이 부족해 코피를 쏟아가면서도 손수 맛을 만든다. 인근 초정온천을 찾았다가 우연히 들른 손님들이 초정을 다시 찾는 이유는 온천이 아니라 맛있는 고기다. 매주 주말 반려견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오는 단골 손님은 바쁜 주인장을 배려해 그저 주변을 산책하며 기다린다. 다른 곳의 삼겹살을 못 먹었다던 임산부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다시 삼겹살을 찾아온다. 자신도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노라며 정말 맛있는 고기라는 칭찬을 전하는 손님도 있었다. 개별 공간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주말 예약은 한달 전에 미리 해야할만큼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맛있는 곁들임 음식과 함께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초정바베큐캠프의 매력이다. 수려한 경관 없이도 아름다운 자연이다. 우리만의 야외 바베큐파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초정에 들러 캠핑의 여유를 만끽하면 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청주 소나무길' 이라고 부르는 중앙로를 걷다보면 작은 가게가 눈에 띈다. 철물점 옆 귀여운 로고는 아는 사람만 온다는 그 카페,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쩐다방이다. 커피 머신과 쿠키 진열대만으로 이미 빼곡한 공간이지만 다양한 메뉴가 준비됐다. 커피 메뉴와 생과일 주스, 요거트 등 외에도 집에서 직접 담근 오미자청과 매실청으로 만드는 음료도 만날 수 있다. 주인장이 직접 구웠다는 쿠키류도 몇 가지있다. 초콜릿 쿠키나 마시멜로 쿠키, 스콘 등 전유진 대표가 만드는 디저트다. 스콘과 함게 먹기 좋은 달달한 수제 잼도 제철 과일에 따라 다르게 준비된다. 유진씨가 가장 힘을 준 메뉴는 크로칸슈다. 인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크로칸슈는 쩐다방의 시그니처다.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디저트류를 고민한 끝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완성했다. 바삭한 첫입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유진씨가 찾던 그 맛이다. 우유와 생크림을 끓이다 계란 노른자를 넣고 섞어 푸딩처럼 만드는 커스터드는 기술만큼 정성이 들어간다. 완성된 커스터드 크림을 빵 안에 적당히 넣어 식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성 제품을 사서 해결하면 쉬운 일이다. 유진씨의 맛을 만들기 위해 여러군데 크로칸슈를 먹어보며 느꼈던 커다란 맛의 차이 때문에 팔이 아프게 젓는 수고를 택했다. 단 맛대신 고소한 맛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크림을 채우지 않은 메뉴도 판매한다. 바삭한 식감과 담백한 맛으로 만족도가 높다. 유진씨는 고등학생 때 처음 베이킹을 접한 후 자연스럽게 커피에도 관심이 생겼다. 가까이 할수록 베이킹 보다 커피에 대한 의욕이 커졌다.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여러 카페에서 일해보며 실무를 익혔다. 혼자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떠난 제주도에서도 카페에서 일하며 일상을 채웠다. 청주로 돌아와서 선택한 것은 커피 머신과 자재 관련 일이었다. 커피에 대한 기초 체력을 키우고 싶어서다. 무거운 기계를 다루는 일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몸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커피의 시작과 끝을 익힐 수 있는 경험이 됐다. 기계의 원리와 원두의 상태까지 온전히 파악할 수 있게 된 뒤 비로소 커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쩐다방의 커피는 일정한 맛을 낸다. 커피 추출 방법이나 머신에서 나오는 물줄기로도 커피 맛이 달라지는 오차를 짚어내는 유진씨의 탄탄한 기초 때문이다. 이 자신감이 첫 커피숍을 열면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넣어 쩐다방으로 만든 이유다. 쩐다방에서 내놓는 것은 저렴한 가격으로 가볍게 즐기는 커피지만 유진씨의 정성은 가볍지 않다. 못보고 지나칠 법한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의 취향을 고려해 모두의 입맛에 딱 맞는 메뉴를 내어주고 싶은 주인장의 마음이다. 메뉴판에 적힌 십 여가지 음료 외에도 단골 손님들이 찾는 메뉴는 여럿이다. 메뉴 공부를 위해 준비된 재료가 있을 때는 원하는 음료를 제조해주기 때문이다. 민트를 추가해 달라거나 카푸치노를 시원하게 먹고싶다는 요청도 응대가 가능하다. 단 맛을 조절해 달라는 손님이나 온도를 조절해 달라는 까다로운 주문에도 웃으며 대처하는 유진씨의 싹싹함에 반해 단골이 되는 손님도 많다. 꼭 이곳에서 하루의 카페인을 충전하는 주변 상인들의 응원도 쩐다방의 힘이다. 천천히 걷다보면 분명히 보인다. 마스크에 가려져있어도 새어나오는 친절한 미소가 쩐다방의 로고와 닮았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뽀얗고 통통한 자태에 윤기가 흐른다. '바다의 우유'라고 불릴만큼 철분 함량이 높고 카사노바가 먹었다고 전해질만큼 아연이 풍부하다. 열을 가해 조리해도 영양소의 변화가 없어 다양한 메뉴로 사계절 즐길 수 있다. 밥, 국, 전, 튀김, 무침, 젓갈 등 어디에도 이질감이 없는 이 식재료는 굴이다. 볼에 닿는 공기가 서늘해지면 날 것으로도 즐길 수 있어 활용법이 더 많아진다. 돌에 핀 꽃 '석화'를 찾는 이들도 는다. 청주 성화동에 있는 굴 요리 전문점 '신선정'에서는 이 굴을 샤브샤브에 담았다. 굴을 주재료로 요리하는 이인숙 대표는 매일 오후 통영에서 작업하는 생굴을 다음날 공급받는다. 17년 전부터 10여년간 운영했던 굴 요리 전문점에서부터 연을 맺은 도매인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알알이 선별한 가장 신선한 통영 굴이 신선정에서 쓰인다. 굴 요리 전문점을 운영했던 솜씨도 그대로 활용한다. 굴국밥, 굴순두부, 굴매생이국, 굴돌솥밥, 굴전, 굴무침 등 굴을 활용한 요리만 10여가지다. 인숙씨의 손맛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낙지볶음과 조기매운탕, 닭도리탕과 두루치기 등도 선보인다. 참조기만 사용하는 조기매운탕, 1kg 가득 수마리의 낙지를 끓여내는 연포탕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푸짐한 맛을 자랑한다. 메뉴가 많은 것을 걱정하는 가족도 있지만 하나의 메뉴라도 사라질까 조바심 내는 단골 손님들이 더 많아 메뉴에 손을 댈 수 없다. 급냉 시키면 향과 맛이 보존되는 재료는 제철 재료를 대량 구입해 사용한다. 멍게비빔밥은 5~6월 급냉시긴 멍게로 사계절 향을 유지하고 매생이는 1월에 나오는 고흥 매생이를 급냉시켜 사용한다. 다른 지역보다 따뜻해 매생이 채취 시기가 늦은 대신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굴 요리 전문점을 운영할 때 손님으로 만난 인연이 질 좋은 매생이를 공급받을 수 있는 비결이 됐다. 할아버지가 키우고 손질하는 매생이를 추천해서다. 사계절 생굴을 받아 쓰는 이유는 냉동 굴로는 생굴이 내는 국물맛을 온전히 재현할 수 없어서다. 10여년간 단 한번 생굴이 떨어져 사용해본 냉동 굴은 생굴에 대한 고집을 굳어지게 했다. 확연히 차이나는 개운한 국물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부심 가득한 좋은 재료를 담는 육수를 가벼이 할리 없다. 주방 한편에서 24시간 끓고 있는 커다란 들통 안에는 10여 가지 천연 재료에 이인숙 대표의 비법을 섞었다. 모든 요리의 기본으로 쓰이는 천연 육수는 깊고 은은한 감칠맛을 책임진다. 보통 국밥집에서 나오는 반찬은 김치와 깍두기 정도지만 신선정의 국밥은 5가지 반찬을 대동한다.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으로 꼽는 파김치는 보기도 좋게 가지런히 상에 올린다. 고향 하동에서 가져오는 매실로 만든 매실장아찌, 계절마다 달라지는 무장아찌와 열무김치 등은 국밥과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 집에서 먹는 반찬처럼 정갈하고 깔끔해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늘 점심을 먹으러 찾아오는 이들이 질리지 않도록 반찬 종류도 수시로 변경한다. 조미료 대신 매실액이나 사과즙, 배즙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손님들의 건강을 생각한 인숙씨의 조리법이다. 양념장으로 사용하는 고춧가루도 농사 짓는 지인을 통해 국산만 사용한다. 식혜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시어머니 덕에 떨어지지 않게 만드느라 어느새 달인이 된 인숙씨표 수제 식혜도 신선정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다. 여름 메뉴인 콩국수와 메밀국수도 찾는 사람이 꾸준해 내리지 못한다. 신선한 재료에 정성까지 가득 담기니 신선정이다.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면서도 몸에 배인 친절이 손님들을 배려한다. 사계절 맛있는 굴이지만 생굴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을 놓치면 아쉽다. 날 것 그대로의 신선함이 차가워진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향긋한 커피향이 건물을 가득 채운다.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는 커다란 로스팅 기계 옆에는 원두의 계량과 포장을 돕는 이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한편에 마련된 작업 공간도 분주하다. 각각의 제품을 포장하는 손길이다.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집중하는 작업자들의 손에서 예쁘게 라벨을 입은 강뉴 더치커피 병이 줄을 잇는다. '강뉴'는 청주에서 생산하는 커피 브랜드다. 춤추는 향기나무가 상표권을 가진 이 이름은 따뜻하고 강한 선순환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커피의 고장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대 '강뉴'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해 전승을 거뒀다. 식민지를 경험한 에티오피아는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나라가 있다는 소식에 기꺼이 파병했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도왔던 강뉴는 200번 이상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보화원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해 한국의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어려움 속에서 감동을 안긴 이야기를 브랜드명에 담은 것은 커피를 통해 중증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춤추는 향기나무가 스스로를 세우는 다짐이기도 하다. 춤추는 향기나무는 장애인보호작업장이다. 지난 2009년부터 청주 사창동에서 춤추는 향기나무·춤추는 북카페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던 이 곳은 카페로 시작해 중고 서점의 역할도 했다. 장애인들을 교육해 바리스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13년부터 로스팅을 시작했다. 원두를 직접 볶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새로운 수입 창출에 나선 것이다. 전문적인 로스팅을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현재는 로스터 등 4명의 커피 전문가가 함께한다. 생두를 소분하고 볶아진 원두를 계량하거나 포장하는 일은 장애인들이 맡는다. 바리스타의 역할을 온전히 해낼 수 있기까지는 대략 3년 간의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다. 춤추는 향기나무에서 훈련을 거쳐 외부의 사업장으로 취업하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사회로 진출한 장애인 바리스타는 15명 정도다. 춤추는 향기나무는 좋은 일을 함께 나누자는 배려를 강요하거나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좋은 원두를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의 품질로 승부한다. 누구에게나 '괜찮은 커피'로 인정받을 '강뉴 커피'를 만들 뿐이다. 티백으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커피백이나 드립백 등 강뉴의 제품은 컵과 따뜻한 물만 있으면 된다. 소비자들의 기호에 따라 액상스틱과 믹스커피, 블랙커피 등도 생산한다. 맛있는 강뉴 커피를 찾으면 자연스레 장애인들을 돕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곽희철 원장은 춤추는 향기나무를 '안전한 일터', 바깥 세상을 '완전한 일터'로 칭한다. 이곳에서 무리없이 일을 해내던 이들도 바깥에 나가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정해진 일 이외의 일들을 함께 소화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적응하지 못하고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오는 훈련생을 볼 때면 안전과 완전 사이에서 곽 원장의 고민은 깊어진다. 춤추는 향기나무는 단순히 장애인작업장이 아니다. 일상에서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보호' 작업장이다. 하루 3시간의 노동 이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이곳에 모여 비슷한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를 겪어보고 익숙해 질 수 있도록 연습을 반복한다. 그들의 노동으로 얻어지는 것은 생산물 뿐 아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보상이고 즐거움이다. 재촉하고 나무라는 이 없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함께 완성하는 따뜻한 일터다. 강뉴 커피를 포장하는 이들의 마스크 너머로 웃음이 머문다. 그들의 손길은 커피 볶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인다. 기꺼이 사회의 일원이 된 이들은 각 가정의 힘이다. 가정의 행복은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돌아온다. 일상 속 커피 한잔의 여유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강뉴 커피는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 모두에게 향기와 온기를 전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카페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카페는 기본적으로 커피 등의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다. 거기에 더해 홀로 쉼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도심은 물론 골목 구석이나 외곽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가까이에 보이는 카페를 찾을 수 있다. 카페는 많아졌지만 카페에서 소비하는 돈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신생 카페일수록 높은 가격대가 형성된다. 케이크 한조각에 음료 한잔이면 만원을 훌쩍 넘을 때가 많다. 심지어 직접 만든 케이크도 아니다. 저렴한 케이크를 받아서 이윤을 붙여 판매한다.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인 가성비는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얼마나 큰 만족을 얻었는지 결정하는 척도다. 저렴한 가격을 지불했더라도 그만큼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성비를 충족했다고 말할 수 없다. 주관적인 만족도는 모두 같을 수 없다. 암브로시안 스푼은 조금 다르다. 이 카페를 다녀온 이들은 입을 모아 '가성비갑'이라고 추켜세운다. 지난 2015년 청주 도심의 한가운데서 문을 연 뒤 6년간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케이크와 커피 전문점인 이곳은 서하영 대표가 동생과 함께 운영한다. 신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겠다는 포부로 문을 열었던 때는 30년 경력의 제빵사 삼촌과 함께였다. 제과 제빵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자매는 새벽에 나와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며 밑바닥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다양한 케이크의 종류와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 맛에 대한 자신감을 가장 가까이서 배웠다. 조카들에게 비법을 전수한 삼촌은 다시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하영씨와 은지씨 자매는 삼촌에게 배운 케이크에 감각을 더했다. 맛있지만 다소 평범했던 삼촌의 케이크에 여러가지 디자인을 입혔다. 가격과 운영 방식은 유지하되 암브로시안 스푼의 색깔을 새롭게 채운 것이다. 무려 6년째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세트 메뉴는 암브로시안 스푼의 상징이다. 조각 케이크 2조각에 커피 등 음료 2잔의 구성을 단돈 1만원에 판매한다. 그나마 9천900원이었던 것에서 100원을 올린 가격이다. 잔돈을 거슬러 주는 일이 번거로워 져서다. 소비자의 입맛은 정확하다. 저렴한 가격에 맛을 의심하던 이들도 조각 케이크를 맛보고 나면 홀케이크 한판을 사들고 나가는 것이 암브로시안 스푼 케이크의 매력이다. 모든 케이크는 자매가 직접 만든다. 시트를 굽는 과정부터 숙성과 데코레이션까지 며칠에 걸친 작업이 이뤄진다. 한 달에 천 여개 이상의 케이크를 굽고 판매한다. 마카롱 케이크 등 주문 케이크까지 더하면 그 수는 훨씬 웃돈다. 재료에 대한 자부심도 누구 못지않다. 우유 생크림과 프랑스산 크림치즈, 쿠키나 시트 등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세 가지 버터를 나눠쓴다. 고민 끝에 줄이고 줄인 14가지 종류의 케이크는 각각 찾는 손님이 꾸준해 힘들지만 유지할 수밖에 없다. 주기적으로 만드는 자몽청과 레몬청이나, 하영씨의 비밀 레시피로 만든 특별한 복숭아 아이스티도 케이크와 어울리는 색다른 음료다. 국산 당근을 직접 갈아넣고 만드는 당근케이크나 호박고구마를 오븐에 구운 뒤 천연벌꿀과 섞어 만드는 고구마무스케이크는 특히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다. 정성을 쏟는 만큼 그 맛에 그대로 표현된다는 반증이다. 암브로시안 스푼을 찾는 이들은 기념일을 위한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그저 케이크의 맛을 즐기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암브로시안 스푼의 케이크 한 조각이 특별한 날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부담없이 즐기는 케이크가 맛까지 좋으니 일석이조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넓고 편안한 공간에서 나눈다면 그 맛이 배가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그릇 위로 한떨기 꽃이 피었다. 같은 음식을 담아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떤 컵에는 어렸을 적 향수가 가득한 캐릭터가 그려졌다. 물 한잔을 마셔도 기분이 새롭다. 식기는 단순히 음식을 담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음식의 맛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먹는 사람의 기분을 움직일 힘은 충분하다. 그릇에 자신의 색깔을 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손으로 흙을 만지는 일이 당연했던 때도 있었다. 어느 세대에게는 흙장난이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언제부턴가 흙을 만지는 경험이 귀해졌다. 놀이터에서조차 흙을 보기 어려워지면서 흙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이 늘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흙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전문적인 공간이 아니면 흙을 맘껏 만지기 어렵다. 흙으로 만들어 내는 것 중 실생활에 가장 가까운 것이 도자기다. 먹고 마시는 도구를 흙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화 '사랑과영혼'에서 본 것처럼 물레를 돌리기는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핸드빌딩 전문 도자기 공방이 있다. 흙을 만지며 쉼을 얻는 것은 물론 원하는 모습으로 나온 결과물까지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친구와 연인, 가족 단위의 어른들도 행복한 흙 놀이에 빠진다. 전문적인 장비나 기술은 필요없다. 오늘도자기에서 한달 전 공지하는 시간표에 맞춰 예약을 하면된다. 성인은 2시간, 어린이는 1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김민정 대표의 가르침에 따라 조물조물 반죽을 주물러 원하는 모양의 그릇을 만들거나 컵, 화병 등 사용하고 싶은 물품을 만들 수 있다. 친구를 응원하기 위한 장신구가 되기도 하고 반려물고기를 위한 터널, 반려묘를 위한 밥그릇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따라 건축을 전공했던 민정씨는 5~6년간 건축회사에서 일하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업무를 중단했다. 아이들에게 엄마 손이 조금 덜 필요해지면서 민정씨가 고민한 것은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었다. 결혼 전 서울에서 경험했던 도자기 공방이 떠올랐다. 단 하루의 추억이었지만 그날의 손놀림이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서둘러 도자기페인팅 자격증을 알아보고 서울, 대구 등 민정씨가 원하는 분야를 가르치는 공방을 찾아 다니며 배웠다. 그리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이미 만들어진 제품도 전혀 다른 느낌의 완성품으로 재탄생한다. 손길이 닿는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오늘도,자기'는 민정씨의 성향대로 밝은 배경에 그리는 꽃무늬나 캐릭터 디자인이 많아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다림의 시간조차 설렘이다. 도자기를 만들면 일주일 간의 자연 건조를 거쳐 초벌과 시유, 재벌 작업까지 3주 가량이 소요된다. 가마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도 대략 9시간, 도자기를 구운 뒤에도 12시간은 기다려야 가마의 온도가 내려가 비로소 문을 열어볼 수 있다. 손으로 많이 만져줄수록 고운 작품이 나오는 것도 민정씨가 좋아하는 도자기의 특징이다. 여러 사람이 똑같이 만들었어도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질감으로 표현된다. 모양이 마무리 된 뒤 자연 건조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물 묻은 스펀지로 표면을 다듬고 손으로 문지르며 애정을 담아야 갈라지거나 깨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수강생이 만들고 간 뒤에도 공방에 남은 민정씨는 수없이 그릇을 매만진다. 몰랐던 손톱자국, 미세하게 남은 칼자국도 미끈하게 다듬는다. 가마에 들어간 뒤에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도자기의 일이다. 그저 뜨거운 열기를 견디고 단단해져 온전한 모습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잊혀져가던 기다림의 시간이다. 절반은 내가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시간과 가마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합작품이다. 민정씨와 함께 흙을 주물러 3주의 설렘을 빚어낸 이들이 '오늘도,자기'를 나선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식당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외출이 망설여질 때도 그때 그 음식을 집에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는 뜻이다. 지난해 겨울 율량동에 문을 연 '가온석갈비'도 그중 하나다. 숯불에 구워낸 양념갈비와 가온석갈비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10여 가지 반찬들을 포장 용기로 가득 담아 받아볼 수 있다. 강진구 대표가 코로나19로 외출을 꺼리는 손님들을 위해 지난 6월부터 시작한 새로운 서비스다. 가온석갈비의 매력은 깔끔한 한 상이다. 고기는 먹고 싶지만 굽는 것은 싫을 때 석갈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번거롭게 굽는 과정을 생략하고 간편하게 고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석갈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양념이 된 고기를 굽는 것은 어지간한 고기 굽기의 달인이 아니라면 먹는 내내 신경이 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주 뒤집어 줘야 하는 것은 물론 불의 크기에도 영향을 받는다. 여차하면 타버리고 잘 익혔다 하더라도 잠깐 한눈을 팔면 육즙이 말라버리는 것이 양념 고기의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양념 갈비를 찾는 이유는 단연 그 맛이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매력적인 맛은 양념 고기에서만 느낄 수 있다. 석갈비는 양념갈비의 이 모든 단점을 보완한 음식이다. 주방에서 적당한 굽기로 익혀 따뜻한 돌판에 올려 나오는 석갈비는 버섯과 채소 등 곁들여 먹는 다양한 부재료까지 갖췄다. 따뜻한 고기를 입맛에 따라 조합해 입에 넣기만 하면 된다. 함께 먹는 이들이 온전히 먹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기에 식탁에서 소외되는 사람도, 고생하는 사람도 따로 있지 않다. 시야를 가리는 환기 장치 없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점이다. 가온석갈비에서는 이러한 석갈비의 장점에 조금 더 매력적인 요소를 담았다. 가운데 올려진 석갈비를 중심으로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늘 푸짐한 10여 가지 반찬이다. 한정식을 떠올릴 정도로 정갈하고 예쁘게 담긴 밑반찬은 구색을 갖추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10여 년간 일식에 몸담았던 진구씨만의 특별함이 밑반찬에서 드러난다. 싱싱함을 자랑하는 생 연어 샐러드나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게를 선택해 푸짐하게 씹는 맛을 더한 양념게장, 꼬막과 해파리냉채 등이 색다르다. 갈비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파김치와 열무김치는 직접 농사짓는 이모의 고춧가루를 더해 삼일에 한 번씩 매장에서 버무려낸다. 된장찌개 하나도 허투루 끓이지 않는다. 직접 멸치를 손질하고 디포리와 대여섯 가지 채소를 더해 정성껏 끓인 육수에 두 가지 된장을 섞어 깔끔하고 구수한 찌개 맛을 살렸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육수는 멸치국수에도 쓰인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깨끗한 주방은 믿고 먹을 수 있는 신뢰를 더 하고 숯으로 굽는 고기의 연기는 가둔다. 구워 나온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연기가 가득한 석갈비 가게들과 비교하면 마치 카페 같은 쾌적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높은 층고와 넓은 매장도 연기에서 자유롭게 갈비를 즐길 수 있는 비결이다. 오랜 기간 이자카야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와 인맥도 가온석갈비에서 빛을 발한다. 진천에서 농사짓는 지인의 쌀이 밥의 윤기를 더한다. 달걀이나 기름은 각각 양계장과 방앗간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조달받는다. 신선한 식재료는 모든 음식의 기본이다. 가온석갈비의 맛은 늘 따뜻하다. 무엇하나 정성 아닌 것이 없는 반찬들 가운데 숯불의 열기와 돌판의 온기를 머금은 고기가 놓인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올해 여름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릴만큼 긴 장마였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거나 하루 종일 저녁처럼 어두운 날도 있었다. 야외 인증샷으로 유명해진 '카페고트'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북적이는 사람들은 연일 대기행렬을 이어갔다. 날이 좋으면 좋은대로, 흐리거나 비가 오면 또 그대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아늑함 때문이다. 오히려 한옥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이다. 청주 수동의 어느 골목에서 GOAT라고 흘려 쓴 글씨가 적힌 작은 간판을 따라 시선을 돌리면 하얀 조약돌길이다. 조약돌 사이 커다란 돌을 돌다리 처럼 밟아가면 한아름의 대나무 숲을 품은 한옥이 나타난다. 오래된 한옥이지만 깔끔한 분위기가 앞서는 것은 마당까지 깔린 하얀 조각돌 덕이다. 내부는 한옥에서 연상하기 어려운 모던함마저 감돈다. 서까래와 대들보는 그대로 살렸지만 널찍하게 자리잡은 높은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 진열된 디저트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카페고트의 감성을 만든다. 올해 2월 문을 연 카페고트는 SNS를 타고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다. 다녀간 손님들의 센스있는 인증샷이 이어지며 골목 속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인기를 독차지한 두 개의 거울은 마당 한편에 그냥 놓인 것이 아니다. 셀카를 찍었을 때 배경이 될만한 대나무와 대추나무, 석류나무의 각도까지 계산해 준비한 콘텐츠다. 같은 장소에서 찍어도 카페고트를 방문한 계절이나 찍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사진의 색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곳은 직업 군인이었던 김상욱 대표가 제대 후 꾸며낸 이색적인 장소다. 대학 생활 중 느닷없이 특전사 입대를 결심한 그였다. 특공무술 시범단 대표로 활약할만큼 적성에 맞는 군생활이었지만 무릎에 이어 어깨 부상까지 당한 뒤 더는 남을 수 없었다. 평생 직업으로 꿈꿨던 군생활을 접을 무렵 휴가 때마다 열심히 다녀온 카페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함을 느꼈던 공간이 있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저 멍하니 앉아있어도 위로가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번 본 것은 모든 따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손재주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커피와 베이킹을 배우고 부모님을 설득할 사업계획서도 작성했다. 한 눈에 공간 구상이 떠오른 카페고트 자리에 본인이 생각했던 디자인을 더해 인테리어 작업을 마쳤다. 카페고트만의 먹거리도 만들었다. 집에서 늘 해먹던 '고트마사바', 직접 만든 스콘과 생크림으로 시선부터 사로잡는 '생크림스콘' 등이 카페고트의 시그니처로 떠올랐다. 이모가 보내주는 안동생마에 사과와 바나나를 함께 갈아내는 고트마사바는 건강한 음료의 표본이다. 집에서 해먹던 대로 인위적인 단맛 첨가 없이 그대로 낸다. 밀크티 메뉴도 일반적인 얼그레이 대신 자스민을 끓여 상욱씨만의 맛을 만들었다. 비법을 더한 생크림이나 아침마다 직접 굽는 디저트류도 카페고트에서만 맛볼 수 있다. 다양한 연령층에 적당한 맛을 골고루 준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없이 고민하고 만들어본다. 카페고트에는 흔한 진동벨이나 테이블 표식도 없다. 테이블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까지가 애써 찾아와주는 손님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SNS 맛집의 표본처럼 퍼진 딱딱한 의자와 보기에만 예쁜 작고 낮은 테이블도 없다. 맛있는 쉼을 위한 공간이다. 처마 밑 귀여운 좌석까지 꽉 들어차도 여유가 느껴지는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편안함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자처하는 손님들로 가끔 고민이 생기지만 카페고트에서의 시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공간이 최선이다. 염소를 파느냐며 들어서는 중년층도 가끔 있다. 상욱씨의 고트(goat)는 염소가 아니라 역대급 스포츠 선수에게 쓰이는 최고의 찬사(greatest of all time)다. 청주 골목 카페의 레전드가 되겠다는 신념을 담았다. 손님이 머무는 공간을 힐링으로 느끼는 순간이 곧 카페고트 그 자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수수한 동네 골목에 눈에 띄는 민트색 창틀은 '무브민트'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외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의할 수 없는 좋은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작은 공간에 가득한 향기를 느끼는 것은 분명 후각만이 아니다. 머릿속까지 향기를 품게 하는 이곳을 슬쩍 둘러보면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즐비하다. 딸기나 치즈가 올라간 것도 있고 크림으로 예쁘게 장식된 것도 있다. 음료와 쿠키, 와플 등도 선반 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카페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다르다. 모든 제품 가운데 한줄기 심지가 툭 솟아있다.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한 캔들이기 때문이다. 김지운 대표가 무브민트를 채우고 싶었던 캔들의 모양은 처음부터 케이크였다. 무브민트 간판에 사용된 로고가 지운씨의 계획을 드러낸다. 아이가 그린 듯 귀여운 케이크에 작은 불 하나, 단순하지만 대충 그린 것 같지 않은 표정이 담긴 캐릭터는 무브민트의 상징이다. 점점 작고 예뻐지는 케이크는 소소한 마음을 전하는 선물로 제격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부터 서로에게 부담이 없다. 작은 이벤트로 케이크를 찾는 이유다. 지운씨는 예쁜 케이크로 축하를 전하고 받은 뒤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케이크 모양 초는 그 작은 아쉬움을 달랜다. 작고 앙증맞은 치수에 실제 케이크 같은 모양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음은 물론 불을 켜 축하를 전한 뒤에도 내내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 방 한편에 놓인 케이크는 적어도 2~3개월간 향기와 함께 그날의 기억을 전한다. 직접 만들어 선물하면 당연히 감동은 배가된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청소년 상담을 이어왔던 지운씨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은연중 가지고 있던 편견까지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스스로 문제인 친구들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누군가의 기대를 받으면 충분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가 지운씨에게는 보람이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방을 기획하고 캔들 및 디퓨저 등을 배우며 새로운 길을 준비했다. 손으로 하는 일은 자신 있었던 지운씨에게 캔들과 디퓨저는 뒤늦게 찾은 적성이었다. 향의 조합이나 색의 표현을 고민하며 만드는 사람이 먼저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무브민트의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주고 응원해준 것은 그간 상담으로 만났던 친구들이다.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나 이제는 친구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열게 한 지운씨의 따뜻함 때문이다. 이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낯선 공간에서 캔들을 만들어내는 2시간이 편안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는 비법으로도 쓰인다. 불편함 없이 대화를 이어가며 작품을 만들고 나면 예쁜 결과물의 만족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 찾아온 손님은 한 번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또 다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찾아오거나 일부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무브민트는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향기를 머금고 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조심스레 손님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편안한 시간을 배려하는 지운씨의 의도가 무브민트를 찾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예쁜 캔들과 디퓨저, 석고 방향제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불을 붙이지 않아도 이미 따스하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목욕탕'은 각자의 추억과 닿아있다. 누군가에게 목욕탕은 달콤한 바나나우유 한 모금으로 기억될 수 있고 때 밀어주는 부모님의 거친 손길이나 젖은 나무 냄새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이전과는 달라진 목욕 문화로 인해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청주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학천탕'은 가보지 않은 이들도 목욕탕의 상징으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다. 1988년 문을 연 이곳은 박노석 대표에게는 더욱 특별하다. 아버지와 함께 유명 건축가를 찾아가 설계를 부탁했던 때부터 학천탕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부모님 이름 가운데 글자를 한자씩 따서 지은 학천탕은 아버지의 선물이었다. 어머니의 환갑을 맞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선물하고 싶다던 아버지의 자상함은 당시 최고의 명성을 떨치며 바쁜 시간을 보내던 故김수근 건축가마저 설득시켰다. 앞서 운영하던 두 개의 목욕탕보다 더욱 공을 들였다. 좋은 목욕탕을 위한 노력이었다. 아버지와 노석씨는 서울, 부산, 대구는 물론 일본까지 오가며 하루에 7~8차례 목욕하는 일도 있었다. 아름다운 외관에 좋은 자재로 전에 없던 목욕 시설을 갖춘 학천탕은 문을 열자마자 문전성시였다. 목욕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몰려드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십수 년 이어진 성수기는 목욕 시설 및 생활 방식의 변화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노석씨는 남다른 생각이 생활화 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이어진 칭찬의 힘이다. 작은 발상에도 "노석이 생각이 정말 대단하다"라고 추켜세우던 아버지 덕에 일상적으로 달리 생각하는 습관이 들었다. 다른 사업체를 운영할 때도 폐열을 고추 건조에 활용하거나 소금을 만들어 대량으로 납품하는 등 추가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해 열을 이용한 콘텐츠로 각각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위기의 학천탕을 살릴 방안을 모색했다. 쉬운 길을 택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외면한 채 의미 있는 건물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매달렸다. 카페로 결정하고 직접 설계 공사를 이어간 1년. 남탕으로 활용하던 1, 2층이 2019년 1월 1일 카페 목간으로 문을 열었다. 상대적으로 발길이 뜸해진 3, 4층의 여탕은 남탕으로 바꿔 운영을 이어간다. 인테리어와 조명 등 내부 작업은 모두 직접 나섰다. 어깨너머로 수십 년간 봐왔던 타일 작업은 금세 손에 익었다. 노석씨가 붙인 타일로 카운터가 뚝딱 새옷을 입었다. 옷장, 목욕탕, 거울, 수전 등은 물론 탈의실에서 사용하던 의자조차 그대로 남겼다. 당시 좋은 자재를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각품과 때수건, 번호표, 목욕탕 집기 등 볼거리도 갖췄다. 목욕탕을 사용했던 이들에게는 향수를,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날 것 그대로의 레트로 감성을 깨우는 힘이다. 목욕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은 그릇에도 담겼다. 옛 목욕 바가지처럼 생긴 목재 그릇을 찾아 쟁반 대용으로 활용한다. 적당한 사이즈를 맞추기 위해 직접 재단하고 재조립했다. 음료와 함께 나가는 삶은 달걀도 목욕탕 카페라서 가능한 이색적인 서비스다. 달걀이 흔들리지 않게 기다란 나무 접시에 고무줄로 칸막이를 했다. 소금을 담아낼 세상 가장 작은 용기도 선반 부품을 이용해 만들어 붙였다. 서비스로 내어주는 팝콘은 벨크로로 그릇에 붙여 한번에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아이디어의 근원이다. 물이 없는 탕 안에서, 샤워기가 붙은 거울 앞에서 마시는 커피는 카페 목간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재미다. 행복의 그릇을 작게 가질수록 넘치는 행복을 양껏 누릴 수 있다는 노석씨의 행복론이 카페 목간 안에서 빛을 발한다. 곳곳에 숨겨진 아이템을 알아보고 감탄하는 손님들이 많아질수록 가슴이 뛴다. 물 빠진 목욕탕에 새로운 추억이 흘러넘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