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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인·수필가

내 고향 조붓한 마을에 봄이 찾아왔다. 느티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면 자목련꽃이 보랏빛 얼굴을 내민다. 봄 향기가 '아롱아롱' 들숨으로 들어와 내 맘을 홀렸던 초봄은, 언제나 순간에 지나가버렸다.

초록잔치 벌어지는 5월이 돌아왔다. 꽃바람으로 설레는 마을 사람들이 관광 길에 나선다. 흔한 꽃 놀이에 한 눈 팔지 않는 어머니는

"쯪쯪 한가한 꽃놀이가 웬말이여"하시며 커다란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옆 마을로 옷 팔러 가신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을 덤덤하게 넘기며 쉼 없는 봄빛을 맞는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극진했다. 농사일에 바빠 유행지난 옷만 입다가, 어머니가 나타나면 한결같이 "성님~ 우째 요번엔 늦게 왔당가? 월매나 기다렸다고 잉~"하며 반긴다. 마치 친구 같은 그분들의 위안을 받으며 하루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 종일 발품 팔아 옷 값으로 받은 잡곡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신다.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동생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팽게치고, 빈 방 문턱을 괴고 앉아있기 일쑤였다. 나는 동생들을 살구꽃이 훤~한 마당으로 불러내어 동화속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뒤란에 핀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하루해를 보냈다. 동생들이 기다림에 지쳐 어깨가 축~ 쳐지는 해질녘에 멀~리 논둑길을 걸어오시는 어머니를 나는 까치발 딛고 기다렸다.

유난히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던 여동생은 어물한 저녘에야 돌아온 어머니를 향해 맨발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어무이 어무이 왜 인자 왔어" 칭얼거리며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 옷 냄새가 그리도 좋은 모양이다.

어느 봄 날, 틈새 시간을 저축해 산나물 망태기를 어깨에 메신다. 쑥과 고사리를 캐러 가는 길을 여동생과 함께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나에게 쑥 캐는 일을 한사코 말리면서 하는 말은 "너는 그냥 놀고 있어라 잉~ 몸이 약혀서 쪼그리믄 힘들어야~" 그럴때마다 나는 홀로 망초꽃을 한아름 꺾어 안고 기다리는게 고작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유난히 허약한 내가 감기를 늘 안고 살던 어느 날, 마을에 유행병이 돌아 우리 형제들이 병앓이를 했단다. 며칠 지나 동생들은 회복됐지만 나만 '비실비실' 쓰러져 학교까지 못가게 되었다. 정성껏 보살펴도 깨어나지 못하자 포기하고 밭 일을 다녀왔는데, 다행히 살아난 것을 발견하고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당시 약을 못구해 자칫 생명을 잃기도 했다는데, 못먹어 빼빼 마른 나를 바라보며 "이제야 살아났구먼!! 난 니가 사람구실 못 헐줄 알았는디 잉~참말로 하늘이 도왔제" 그 후 나에게 힘든 일은 시키지 않았을뿐 아니라, 보리밥을 지을 때마다 밥솥 가운데 쌀밥을 따로 해먹였다고 한다.

나 홀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여동생은 쑥과 고사리를 한 바구니 넘실거리게 캐왔다. 어려서부터 활발하고 부지런한 동생은 집안 일을 곧잘 도와 어머니 칭찬을 받았다.

봉숭아 씨방 터트리는 여름날이었다. 땡볕을 등에 짊어지고 파꽃이 수북한 텃밭에 앉으며 중얼거리신다.

"주문 받은 옷을 꼭 가져다 줘야될턴디, 몸이 아파 워쪄~ 잔치집 갈 때 입을 옷이라고했는디 잉~" 겨우 밭일을 끝마치고 퀭~ 한 눈으로 허리춤을 들먹이며 시들은 시래기처럼 드러누워버렸다. 온 삭신이 ' 쏙쏙' 쑤신다며 구들목에 누워서 땀을 빼내고, 며칠 뒤 움직임이 수월해지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슬며시 기운없는 엷은 미소를 띄우면서 제일 먼저 옷 보따리를 챙기시는 어머니~ 마르지않는 그 꿈은 좀처럼 지치지도않는다.

가을이 돌아왔다. 단풍들이 감춰 두었던 고운 속내를 드러내며 기척없이 온 산을 물들였다. 어머니는 옷 팔러 가는 일을 주저하더니 긴 장대를 찾으신다.

"오늘은 집안 일이 우선 더 급하구먼~"

하시며 큰 고모네 감나무에 지탱 못하게 열린 땡감들을 따서 항아리에 담아 떫은 맛을 울쿼 내고, 곶감용 감들을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내 아버지는 이북에서 홀로 내려와 큰 고모네 집에 얹혀살았다. 고모네 농사일을 돕다가 결혼 후 면사무소에서 서기 일을 보셨는데, 대쪽같은 성격에 입에 풀칠 할 정도 월급으로 식솔들 생활을 이어갔다.

푸른 하늘 사이로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마당 한쪽에 풀 먹인 흰색 홑청 이불을 '툴툴' 털어 널더니 "오~메 가을볕이 참 좋네, 아까워서 워쪄~!!"

하시며 고추, 무, 가지, 고구마순 등등…을 말리기에 바쁘시다. 잠깐 지나가버리는 가을 빛을 놓치면 안된다며, 겨우살이 먹거리를 장만 하신다. 여동생은 좋아라 벙글대며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어느 겨울 날, 밤새 하얀 눈이 마당에 소복히 쌓였다. 마을 길이 막혀버리자 옷을 팔러 갈 수 없게 되었다. 나와 동생들은 신바람나서 어머니 품에 '도랑도랑' 매달렸다. 마치 어린 새들이 어미 날개죽지에 부리를 파묻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부엌 설거지를 끝낸 뒤, 보리쌀을 '쓱쓱' 문질러 솥에 앉힌다. 그런 뒤 뒤란 대밭을 기어올라 뒷산에서 생 솔가지를 낫으로 쳐내려 억척스럽게 머리에 이고 날랐다. 겨우 방 한 칸 간직한 가난한 구들목에 매일 군불을·지피면서도 단 한번 불평하시는걸 못 봤다. 궁핍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오직 일념으로 살림을 꾸려나가셨다.

어머니는 생솔가지를 아궁이에 잔뜩 집어 넣고 마른 밤송이 불쏘시개로 불길을 살리려 애를 쓰신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풀무질로 바람을 일으켰다.

드디어 불길이 '훨~훨' 살아나자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리며 신세타령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우리 형제는 모처럼 어머니를 차지한 기쁨으로 그 옆에 '수런수런' 앉아 마냥 흥겨운 하루를 지냈다.

흰 눈이 속수무책으로 마을길을 덮어버리면 옷 팔러 갈 수 없어 큰 일이라며 늘 걱정하시던 내 어머니~지금도 소나무 가지에 흰눈이 쌓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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