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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밤의 밑바닥이 환해졌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의 첫 구절입니다. 설국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겨울밤은 종종 눈으로 화사해지곤 합니다. 특히나 첫눈은 하늘이 비로소 겨울로 가는 하얀 외투를 건네주듯 그렇게 반갑습니다.

 지난 주말 서울에 내린 첫눈은 너무 쉽게 자취 없이 사라져 꿈속의 연인이 다녀간 듯 아쉽기만 합니다. 어른들은 운전 때문에 눈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 눈송이가 흩날리면 누구라도 우선 반기고 보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나이 지긋한 이들에게는 옛 기억 갈피마다 첫눈이 고스란히 쌓여 있을 것이구요. 추억의 눈은 전혀 녹는 법 없이 변함없는 그대로의 적설량으로 애틋하고 가슴 서늘한 이야기와 더불어 가슴 저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첫눈 내리는 날 만나자는 약속은 왜 그리 많았는지요. 또 누구와 만나자는 약속이 없었어도 무작정 거리로 나설 때가 많았습니다. 첫눈은 남녀노소 걸음을 멈추고 천진한 미소로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는 마력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마법가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눈은 눈인지 모르게 슬쩍 스쳐 지나가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첫눈 내리면 만나자고 약속한 수많은 연인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게 첫눈인가, 아닌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첫눈은 첫사랑과 닮았어요. 불현듯 왔다가 아련하게 사라지고 마니까요. 첫사랑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죠. 쌓일 듯 말 듯 땅을 적시고 그냥 녹아버리는 첫눈처럼 말입니다.

 숲의 나무에 내린 첫눈이 비와 섞이면서 그대로 얼어버려 햇빛을 튕겨내니 눈이 부십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안도현의 시 구절도 떠오릅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첫눈 내리는 날 그대가 올 것 같은데 왜 겨울 숲 나무가 되고자 하는 것일까요? 성숙한 사랑에 대한 염원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나무들은 처서가 지나면 생장을 멈추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위로만 솟아오르려는 상승의 기운을 접고 이제 어두운 땅속으로 마음을 내려놓죠. 모든 것을 떨구고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는 몸을 날렵하게 만듭니다. 매서운 바람은 그의 몸을 빗겨 가는 겁니다. 한 여름 풍성한 몸으로 햇빛과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이하던 시절을 잊고, 깊은 땅속으로 적요의 침묵 속에 생각을 키우는 거죠. 욕심을 더 부려 위로만 자라려고 한다면, 혹한의 겨울을 버텨낼 힘이 없었을 겁니다. 나무는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 자연의 흐름에 순응해 갑니다. 나가고 들어오는 시기를 깨닫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균형을 잡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오래된 고목(古木)은 평생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면서 마음이 깊어지죠. 지혜로운 노인처럼 오르고 내려올 때를 분명히 알게 되는 겁니다.

 옛말에 '첫눈이 내리는 날은 일하면 안 된다.'라는 말도 전해옵니다. 첫눈이 내리는 시기가 보통 음력 10월이니 추수가 끝나고 쉬는 달인 상달, 즉 공달이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나온 것입니다. 첫눈에 담긴 인간사의 세정(世情)이 흥미롭습니다.

 함박눈 내리는 오늘 / 눈길을 걸어 / 나의 첫사랑이신 당신께 / 첫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 언 손 비비며 / 가끔은 미끄러지며 / 힘들어도 / 기쁘게 가겠습니다 / 하늘만 보아도 / 배고프지 않은 / 당신의 눈사람으로 / 눈을 맞으며 가겠습니다. -이해인 '첫눈'

 아무래도 첫눈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사랑의 첫 마음을 일깨워 주니까요. 아내가 지난 여름 끝자락 새끼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며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뤄진대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늘 귀가하면 속절없이 나이 들어가는 아내의 손을 한번 잡아봐야겠습니다. 손톱 끝 봉숭아물을 보자는 핑계를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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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