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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산경탐사Ⅰ- 한남금북정맥을 가다 ⑪

가을이 내리는 파노라마 마음까지 풍요롭게…

  • 웹출고시간2008.10.09 13:12:2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보광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남금북정맥. 꿈틀대는 정맥 줄기에 가을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은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봄과 여름이 가져다 준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농부의 입가엔 함박 웃음이 피어나고, 여물대로 여문 벼이삭은 가을볕이 힘에 겨운 듯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어린아이 주먹처럼 조막한 감은 발갛게 제모습을 찾아가고, 아침이슬을 머금은 코스모스도 수줍은 새악치처럼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 10차 청풍명월산경탐사의 출발점인 이 곳에도 가을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이번 산경탐사 구간은 모래재를 출발해 보광산을 넘어 고리티고개를 거쳐 음성군 원남면 행치재까지는 코스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보은을 출발한 한남금북산경탐사가 어느덧 청원, 청주, 괴산을 거쳐 음성땅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제 음성땅을 지나면 금북정맥의 종착지인 경기도 안성 땅에 닿게 된다. 산경탐사도 그 끝이 서서히 보이는 것이다.

보광산은 괴산군에서 정한 ‘괴산 35명산’에 속한다. 괴산의 명산이 대부분 암골미를 갖춘 산인데 반해 보광산은 부드러운 육산이다.

때문에 괴산명산이라고 하지만 다른 산에 치여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보광산이 주는 넉넉함과 부드러움은 애써 이곳을 찾은 이의 수고로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보광산 오름길은 험하지 않다. 구례손씨의 묘역의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편한 숲길이다. 적당히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40여분 한적한 산길을 오르면 능선길에 닿고, 능선에서 왼쪽방향으로 틀면 보광산 정상가는 길이 보인다.

정상못미쳐 봉학사지 오층석탑은 주변이 온통 밤나무다. 미처 따가지 않은 밤이 지천이다. 애써 밤가시를 까는 수고로움 없이 줍기만 해도 금세 손이 모자란다. 탐사단 모두가 가던길을 멈추고 밤을 주웠다. 일행들 모두가 큰 전리품이나 챙긴 듯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하다.

옛말에 ‘가을산은 없는 처갓집 가는 것 보다 낫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가을산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었다.

해찰을 떨던 일행들이 다시 행장을 꾸려 보광산(539m)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은 밋밋했지만 정상을 지나 5분정도 직진하니 괴산 사리면 일대와 증평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전망대가 나타났다.

지나온 금북정맥과 가야할 정맥의 힘찬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증평 두타산이 반갑게 손짓을 한다.


전망대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보광산 정상을 지나면 금북정맥은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내림길이 시작됐다. 하지만 곡하지 않다. 발아래 밟히는 도토리만 조심하면 별로 신경쓸 것도 없다.

완만한 내림과 오름이 40여분 계속된 곳에 백마산(40분), 소암(30분), 보광산(40분), 둔터골(30분)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진 안부네거리에 발걸음이 닿았다.

탐방을 시작한지 2시간여가 됐지만 그다지 힘이 안든다. 편안한 육산과 완만한 산세 덕일 것이다.

안부네거리에서 1분여를 오르면 395.4m봉에 이르고, 이 곳에서 얼마가지 않아 고리티고개를 지났다.

고리티고개에서의 길도 편안한 숲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청주-음성간 국도가 보이고,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들녘이 마음을 풍요로움으로 채워주었다.

터덜터덜 산행길 중간에 만난 이정표.

이정표는 백마산(청주 음성간 국도구간 가운데 백마령 터널이 있는 산)과 토굴고개의 갈림길을 가리키고 있다.

이 곳에서 백마산 까지는 30여분. 탐사단은 백마산 길을 버리고 정맥길을 좇는다. 어느덧 탐사길은 음성군 원남면과 괴산군 소수면을 연결하는 토굴고개(보천고개)에 다다렀다.

토굴고개에는 괴산군에서 지정한 450년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묵묵히 한남금북정맥의 한 가운데에서 나그네들의 벗이 되어 주었으리라.

보호수를 지나 길은 다시 오름길이다. 지나온 편안한 길과는 달리 가시밭길이다. 찔레며, 아카시아 등이 사정없이 얼굴로 내리친다.(덕분에 얼굴에 약간에 상처가 남).


힘겹게 이들을 물리치고 378.5m에 올랐다. 드디어 멀리 음성읍이 시야에 들어온다.

들판을 가로질러 내달리는 기차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음성읍을 바라보며 정맥길은 왼쪽으로 돌아나간다.

고도를 낮추며 다시 숲길은 30여분간 계속되고 어느덧 길은 마을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콘크리트포장길과 맞닿는다. 정맥길인지 동네 뒷산인지 분간이 안되는 길이다.

인삼밭둑길을 지나고 깨밭을 지나고 묘지를 지난다. 이렇게 야트막한 정맥길을 오르내리길 20여분. 이번 탐사의 종착점인 행치재가 눈아래 들어온다.

요란스럽게 고갯길을 지나는 차량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그 소음 때문에 온종일 가을산에 취했던 꿈에서 깨어났다.


/특별취재반
괴산군 사리면에 특별한 관광지는 없다. 지정학적으로 증평과 괴산 중간지점에 위치한 사리면은 보광산을 모산(母山으)로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하지만 보광산 보광사와 봉학사지 5층석탑 등은 사리면의 면면을 이어오는 대표적인 사적지로 손꼽히고 있다.

보광사 중턱에 위치한 보광사.

△보광사

보광사는 보광산 중턱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고려 28대 충혜왕 1년에 창건됐다 조선 현종때 폐사된 옛 봉학사 터 아래에 건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청북도지에 의하면 1925년 폐사지에 권봉주 스님이 초막을 세우고 김봉삼 스님이 1936년부터 폐사지에 있던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대웅전에 봉안해 주존볼로 모시면서 보광사로 건립한 것이라고 적혀있다.

1967년 사찰 위쪽에 있는 봉학사지를 발굴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봉학사지 5층 석탑 2층 옥개석 사리공에서 조선 세조때 탑을 보수한 기록문이 나왔다고 하며 폐사지에서 수습한 암막새에 음각된 당초문이 고려 중기 이후인 것으로 밝혀져 봉학사의 창건과 중수연대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보광사는 크게 대웅전, 삼성각, 요사건물로 이뤄진 작은 가람으로 이 곳에는 구례 손씨와 깊은 인연이 있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대웅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은 본래 봉학사의 법당에 있었는데, 조선 현종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의 자손들이 이 절터가 풍수지리설에서 금계포란형의 명장자리로 소문났기 때문에 김소의 묘를 법당자리에 쓰면서 불상을 근처에 파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보광사 정상 부분에 위치한 봉학사지 5층석탑.

그러던 어느날 한 스님이 찾아와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일러주었고, 자손들이 그 말대로 하자 집안이 망했다. 금계포란형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인데, 물이 흐르지 못하여 알이 썩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다는 것이다.

그 뒤 19세기 중엽 보광산 아래 하도마을에 사는 손씨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서 옛날에 파묻은 불상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이제 때가 됐으니 보광사 남쪽 언덕에 있는 땅속에서 불상을 파내어 봉안하라’고 했다. 이에 손 씨는 마을사람들과 산에 올라가 불상을 파내고 봉안했는데 그후로 손씨 집안은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봉학사지 5층석탑

보광사 200m 위쪽에 위치한 봉학사지 5층석탑은 충북유형문화재 29호다. 기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채 평평한 돌로 5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2개의 돌로 이뤄졌고 나머지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1층 몸돌은 큰편이고 2층 몸돌에서 급격히 낮아지다가 5층까지는 비슷한 크기를 유지한다. 각 층 지붕돌은 두꺼운편이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지 않고 지붕돌이 두꺼워진 점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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