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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멱살을 잡으며 앙탈하던 늦더위도 계절의 변화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구 온난화로 긴 여름을 보내며 투덜대던 사람들은 비온 뒤, 급강하한 날씨에 서둘러 긴 팔 옷을 꺼내 입으며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변덕스런 모양이다. 한미 FTA 체결과 미국 발 금융위기 및 멜라민 파문 속에서도 가을은 어김없이 다가오며 들녘을 황금색으로 물들인다.

옹골차게 익은 곡식들을 갈무리하는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질 때면 우리들의 마음도 통통 영글어야 할 텐데 수명을 다한 건전지처럼 빈 쭉정이 뿐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베스트셀러 한권 못 읽어보고 공연장이나 화랑 나들이 한번 못해본 지난 여름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마음 또한 허전할 것이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방랑자가 되고 싶고 시인이 된다. 갈대숲이 서걱대고 풀벌레가 우는 밤이면 왠지 옛 사람이 그리워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학창시절에 은행잎을 책갈피에 꽂아두며 읽던 시집의 추억이 아련하다. 이때 쯤이면 가을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가장 생각난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들이우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따듯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 맛을 넣어주십시오…”

릴케의‘가을 날’이라는 시는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시 중 하나다. 특히 바람이 불거나 낙엽 지는 가을날이면 이 시가 더 생각난다. 여름의 위대함이 있었기에 포도송이가 영글어 간다는 시작(詩作)의 전개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가득 담고 있다. 장미를 너무 사랑하여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릴케. 그는 오래 전에 유명을 달리했어도 그의 명시는 두고두고 애송시로 회자된다.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가을걷이가 끝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도 약간의 여유가 묻어나기 마련이다. 각 시·군에서는 풍년잔치가 앞 다투어 열린다. 황금들녘에 풍장소리가 요란하고 문화회관 등지에서는 음악회, 전시회가 봇물을 이룬다. 평소에 가보지 못한 문예행사를 감상할 절호의 기회다. 빈 마음을 욕망으로 채울 게 아니라 문화예술의 향기로 채워야 정신적 부자가 된다.

물질적인 부족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의 황폐화다. 정신적 영양결핍은 단기간에 채우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으나 정신적 국민소득은 아직도 2천 달러 미만이다. 물질의 큰 바퀴에 비해 정신의 바퀴는 보잘 것이 없다. 국민소득만으로 문화국가 여부가 재단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의 산유국은 높은 국민소득을 기록하고 있으나 세계는 그들을 문화국가로 부르지 않는다.

이에 비해 체코,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은 국민소득은 낮아도 문화의식은 아주 높다. 체코의 필하모니는 전 세계가 알아주는 교향악단이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황금의 도시’로 불릴 만큼 건축물이 아름답다. 유네스코와 청주시가 기록물 보존에 공이 큰 기관 단체를 선정하여 수여하는 ‘직지상’에 체코의 국립도서관이 제 1회 수상자가 되었듯 국민의 문화의식이 높다.

척박한 마음의 밭을 갈고 기름지게 만드는 데는 문화예술을 접하는 것이 특효약이다. 유명 작가나 연주자가 된다면 다다익선이지만 인간마다 재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명인의 길은 쉽지 않다. 그 대신 신체의 오감(五感)을 동원하여 문화예술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비타민은 상당량 섭취하는 것이 된다.

문화의 달을 맞아서 단 한곳의 문화현장 이라도 달려가 보자. 격조 높은 예술의 향취를 맡는 순간 당신은 고품격을 가진 시민이 되며 정신이 풍요로운 문화시민이 된다. 문화는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전유물이 아니라 전 시민이 공통적으로 누리는 삶의 필수요건이다. 문화는 귀부인의 귀고리도 아니고 빵 위에 바르는 잼도 아니다. 문화는 삶의 필수영양소이며 삶의 들러리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10월 달에는 문화를 먹고 살자. “문화가 밥 먹여 주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세기는 “문화가 밥 먹여 주는 시대”로 변하게 된다. 문화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확대재생산을 거듭하는 생산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합하여 ‘프로슈머’라 부른다. 문화의 달이 부끄럽지 않도록 저마다 마음속에 문화의식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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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