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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속리산에서 흘러내린 봄물이 서원계곡을 적시고 있다. 봄물을 머금어서일까 물소리가 맑고 투명하게 들린다. 계곡을 따라 펼쳐진 들판 경작지에는 이미 봄이 와있다. 농사준비를 위한 비닐이 씌워져 있고, 비닐 구멍 속으로 따뜻한 바람이 들어갈 적마다 훅하고 콧속까지 훈기가 전해진다. 바람과 흙 내음이 향기처럼 느껴진다. 봄이 건네는 자연의 향기다. 산과 들, 계곡 그리고 흐르는 물이 고향처럼 감싸고 있는 곳. 고즈넉한 서원(書院) 앞이다.

문이 굳게 잠겨있다. 혹시나 하고 마을 분께 말씀 드려보나 '들어가야 볼 거 없다'는 대답이다. 외양(外樣)만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맨 앞에 외삼문이 있고 가까이에는 묘정비가 있다. 묘정비를 지나 몇 발자국 들어가면 내삼문 안쪽에 보이는 노회한 상현사가 전부다. 유생들의 강당이 서원 철폐령 때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물이 사라졌다고 역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금도 이곳엔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다. 사당엔 다섯 분의 선현이 배향되어 있다. 충암김정(金淨), 동주성제원(成悌元), 대곡성운(成運), 중봉조헌(趙憲) 그리고 우암 송시열 선생이시다. 모두 조선시대 문인이며 학자들로 이 지방 보은과 직접연고가 있거나 인연이 깊은 분들로 삼남(三南)의 중심 서원이었던 이곳에 모셔져 있음도 우연은 아니지 싶다.

서원은 건축 자체만으로도 역사라고 생각한다. 이곳엔 400여년 시공(時空) 속에 수많은 인물들의 희열과 비탄, 평화와 시련이 역사의 명암처럼 남아있다. 그 속에는 서원을 통해 배출된 인물들의 충절의 역사도 있고 붕당의 역사도 있다. 허나 혹자가 말하는 붕당이나 사화는 시대가 낳은 역사의 산물이라는 현실적 시선도 있다. 또 명분과 관념에 치우친 논쟁이 나라의 부침을 가져온 한 요인이었던 것도 사실이나 그 역시 우리의 역사요 역사의 흐름과 맞물린 시대적 아픔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선조들이 보여 주었던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위한 노력이다. 그들이 중시했던 명분과 관념이 인간을 중심으로 한 예(禮))에서 출발했음이요 그 뿌리는 지금도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학창시절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과목이 역사였다. 한마디로 점수 잘 받아 진학하기 위한 방법에만 몰두했었다. 역사는 그저 고리타분한 것, 어르신들의 전유물로 지나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가정을 이루고 엄마가 되었을 때 '나'라는 존재가 '나'만에서 가족의 연으로 얽혀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역사는 거대하고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몸짓, 말 한마디, 시선에서 출발한 너와 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요 남겨지는 흔적이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어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10남매 중 7명의 자녀들이 학교 구경도 못했다는 내용이다. 요즘 같은 광명 천지에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니 부모의 무책임이라며 손가락질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모를 탓하기 전에 서로를 챙기며 밝게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가족애를 보았다했다. 코딱지 같은 방 하나에 10여 식구가 가난과 싸우며 살아야 하는 현실적 아픔과 안타까움 보다 사랑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보여 지고 느껴질 수 없는 게 사랑이요 가족애이다. 더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히려 부모를 깊이 생각하는 그들에게 마음이 한참을 머물렀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향기는 사람의 향기라고 생각한다. 한 송이 꽃향기는 잠시 스쳐가지만 인간의 향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주위를 향기롭게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서원은 그나마 우리들이 붙잡고 있는 가느다란 예(禮)의 토양을 마련해준 근원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 싶다. 밖에서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닌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노력하는 마음 그것에서 그윽한 향기가 피어나는 건 아닐까. 예는 사랑이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갈수록 물질문명에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가치보다는 이윤을, 생각보다는 시각을 명분보다는 실리만을 추구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주체가 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해본다. 서원의 향기는 그 답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예(禮)의 가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다고 말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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