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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성격이란 게 있다. 흔히 까칠한 성격을 빗대 성질머리라고도 불리는데 나의 경우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격이 있다. 한 박자 늦추자 늦추자 하면서도 못 고치는 급한 성격이다. 혹자는 수양을 하거나 노력을 하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걸 잘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주 거창한 것도 아닌 소소한 상황에서 조차 그러하니 나 같은 사람은 수양이 한참 필요한건 맞는 얘기인가 보다.

올 봄, 처음 키워보는 종류의 꽃 화분을 들였다. 그러고 바로 며칠 전이다. 아침에 화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활짝 피었던 네 송이의 꽃이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죽은 듯 누워있었다. 순간 "어떡해 웬일이야 죽었네"라는 말이 나왔다. 수분이 생명인 꽃이라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물도 아침에 흠뻑 주어서 말라 죽은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상하다 죽을 이유가 없다 생각하니 더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아예 녀석들이 죽었다고 잠시나마 생각했다.

네 송이의 꽃은 그렇게 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그것도 하루 사이에. 이튿날 오후, 기척도 없던 녀석이 저녁 무렵 일어난 게 아닌가. 성급한 단정에 머쓱해지면서 생명의 신비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두 송이가 살아난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깨어나지 못한 두 송이 꽃도 살아나겠지 하는 희망이 일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소망처럼 한 송이가 살아 났다. 이제 한 송이만 일어나면 되는데 또 내 안에선 어쩐지 희망보다 불안이 앞서있었다. 의심 반 희망 반으로 하루가 또 지나 점심때다. 거의 포기했던 마지막 한 송이까지 다 살아났다. 참지 못하는 가벼운 조급증이 확인된 셈이다.

3일에 걸친 조바심은 마지막 한 송이가 살아남으로써 안정을 되찾았다. 보랏빛 장미모양의 꽃에 물을 주고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물이 과했나· 아님 벌레가 그랬나. 보이지 않는 무엇이 원인이었나. 처음 키워보는 종류이니 시행착오의 과정일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원인은 알고 싶었다. 답은 모르겠다였다. 그렇다면 모르면서 왜 조급하게 기다리지 않고 죽었다고 먼저 단정을 했을까.

물을 주고 그를 바라볼 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행복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늘 마음에 충만을 안겨주었다. 꽃줄기에 잎이 피고 넓어져 바람에 흔들릴 때, 작은 몽오리가 필 듯 말 듯 내 가슴을 설레게 할 때 어떠했던가. 드디어 어느 날 한 장의 꽃잎이 비밀의 문을 열었을 때, 조그만 손을 내밀었을 때 감격하고 환성을 지르지 않았던가. 그 시간을 먼저 기억하지 않고 어쩌자고 조급한 예단을 했을까.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수도거성(水到渠成)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또 장자 제물론에도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물위지이변(物謂之而然)이라는 말이 있다. 시기를 기다리며 인내의 시간을 갖다 보면 마침내 때가 저절로 온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보이는 현상에 먼저 반응을 한 시간들이 많았다. 특히 오래 전 아이를 키울 때를 돌아보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과정의 기다림 보다 빠른 결과만 원했던 시간들이다. 왜 그리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다그쳤을까. 아이들이 내게 얼마나 큰 행복을 안겨주었고 주고 있는데 말이다. 이 또한 조급증에 해당할 진저.

소설'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남은 만남 자체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기다림의 설렘과 환희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말한다. 화분의 꽃들은 3일에 걸쳐 차례로 살아났다. 당장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에 비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굳건히 지켜낸 한 생명 앞에서 또 다시 참지 못한 내 조급증이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그가 건넨 묵언의 가르침을 돋을새김하며 가슴에 새긴다 "한 박자 늦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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