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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며칠 전, 아침 일찍 볼 일이 있어 시내버스를 탔다. 시간이 워낙 이르다 보니 버스 안에는 승객이 모두 일곱 분이다. 그런데 버스에 오르고 조금 뒤였다. 저 뒤 쪽에서 어느 여인이 전화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흐느낌이 들려왔다. 기분은 별로였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그러려니 했다. 기사님도 거울을 통해 힐끔 보곤 말없이 운행을 이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인의 흐느낌과 하소연이 장장 10분여 정도 이어졌다는데 있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했지만 울음이 길어지자 슬슬 불쾌하고 짜증스러웠다. 아침시간 버스 안 아닌가. 드디어 기사님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듯싶었다. 갑자기 버스가 멈춰서고 울근불근해진 기사님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가씨! 뭐 하는 짓이요· 아침에 재수 없게". 모두의 시선이 20대로 보이는 여인에게 쏠렸다.

순간, 기막힌 반전을 보게 되었다. 문제의 여인은 그토록 흐느껴 울던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은 깔끔 자체였다. 그리곤 말간 얼굴을 기사에게 들이대며 "왜 남의 일에 참견이에요 내리면 되지, 됐어요·" 라며 혀를 쏙 내민다.

이런, 누구라도 그 물렁하고 둥근 혀를 내미는 발칙한 그녀를 보았다면 뻔뻔함의 극치를 보았다 할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앞에 앉아 순진하게 진짜로 믿었던 나도 그렇지만 지근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번연히 거짓연기 하는 그녀에 왜 침묵으로 일관했을까. 그것도 장장 10여분을. 미안해하기는커녕 당당하기까지 했던 그녀. 때 묻지 않은 젊음의 수줍음은 어디로 달아난 걸까. 그녀의 어떤 욕망이 혀로 하여금 거짓 울음을 지어내게 한 건지. 텁텁한 물을 쏟아내듯 많은 생각이 오간다.

식욕이 인간의 1차 본능이라면 젖은 혀는 2차 본능이다. 그녀의 혀는 분명 젖어 있었을 터이다. 나 역시도 그러하지만 대개 사람들이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맛난 음식을 보면 침을 삼키고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은 욕망. 입은 기쁨이 들어오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걸어 나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쁨만이 들어오길 바란다. 즉 걸어 나가는 장소라는 걸 자주 잊게 된다. 인류문명사에서도 혀로 인하여 역사를 다시 쓰게 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전쟁이 그렇고 개인 간의 다툼도 그러하다. 오죽하면 말(言) 무덤까지 있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혀의 위력은 대단하다. 의학적으로도 우리 몸에 시각을 제어하는 유전자는 네 개이지만 후각. 미각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천개가 넘을 만큼 촘촘하다. 먹는 것과 소통의 역할을 도와주는 것도 대단한데 더 대단한 것은 혀의 놀림에 따라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엔 1차 본능과 역할을 흔드는 인간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혀와 욕망의 고리가 그만큼 거미줄처럼 걸려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공동사회의 근간을 흔들 때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난다. 젖은 혀의 욕망이 도덕과 부딪칠 때 우린 거짓과 뻔뻔함, 변명과 호도가 도덕의 가치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릇 세치혓바닥이라 했다. 그 혓바닥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꽃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본능에도 의지가 개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욕망 앞에선.

염치가 사라진 사회엔 붉게 달아오른 입술들이 구름처럼 동동 떠다닌다. 서로의 욕망의 수평선이 어긋나서 투명한 감정을 파도 위에 올려놓아도 욕망의 길이 미끄러지는 현상이다. 입술로 혀를 은폐하고 그럴듯한 포장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거짓사회. 침묵한다고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꽃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혀를 놀릴 수 없다. 혀,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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