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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아름다움 자태와 기교 - 정자와 누각은 어떻게 다를까

정자 '개인적 수양' 누각 '공적인 교류' 역할

  • 웹출고시간2013.08.04 16:05:31
  • 최종수정2013.08.13 19:01:24

편집자주

우리의 조상들은 멋과 풍류를 알았다.

지금도 멋진 경치나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을 찾으면 정자나 누각이 산재해 있다.

이곳에서 조상들은 더위를 피해 차(茶)를 마시며 정치를 논했고 사람의 근본을 깨달으며 몸과 마음을 다졌다.

조상들은 인품이나 정신수양의 기본을 일상생활의 환경에서 찾고 이를 이루어 나갔다. 건축물을 통해 자연과 자신을 비교하고 함께 공존하는 삶을 찾게 된 정자(亭子)와 누각(樓閣)은 이를 대신해주는 하나의 장소였다.

충북도내의 정자와 누각을 찾아 건축에 나타난 충북의 멋과 전국의 누각과 정자의 아름다움을 지면을 통해 찾아본다.

망선루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인 망선루는 본래 취경루(娶景樓)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 관아의 부속 누정(회의 및 연회 장소)으로 창건되었으나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다. 이전된 망선루는 청주지역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인 청남학교, 상당유치원등 민족교육운동과 한글강습, 각종 집회 및 강연장으로 활용되었고 해방 후에는 세광중고 교사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망선루의 노후로 붕괴위험이 날로 높아가자 청주시에서는 1999년 10월 이 건물을 해체해 청주시민이 가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소의 채광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내에서 정신을 집중시켜 몸과 마음을 다지는 다도는 자연과 벗삼아 자연인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정자는 작지만 자연속에서 개인적으로 수양을 쌓는 장소였지만 누각은 공적인 집단 수양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정자와 누각은 자연이 아름답고 사방이 트인 장소에 세워 건물로서만의 의미가 아니라 장소에 가치를 두고 자연을 중시하는 우리민적의 아름다움을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충북에는 정자와 누각이 많이 있다. 충북의 아름다움을 꼽는 그중 하나가 정자와 누각이다. 영동군내에는 10여개가 넘는 누각과 정자가 금강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다.

충북의 누각과 정자를 찾아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이들이 세워진 유래와 설화 등을 찾아본다.

# 정자와 누각의 의미

다락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는 자연 속에서 여러 명이 또는 혼자서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다.

양반들은 과거시험에 급제하기 위해 공부를 했으며, 사서삼경이 중심이 되는 학문은 학문으로만이 아닌 생활화를 중요시했다.

이는 자연인으로서의 청렴함과 검소한 생활로 자연에 순응하고자 하는 생활철학이었다. 선인(仙人)의 경지를 자연인으로 가정하고 선인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자신을 항시 자연의 일원으로 보고, 항상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바램에서 정자나 누각이 발생하게 되었다. 정자가 개인적이라면, 누각은 공적인 것으로 접대와 풍류로 학문을 연마하면서 정신을 수양하는 높은 수준의 공간이 된다.

# 백제때의 누각

누각의 기록으로 오래된 것은 636년(백제 무왕 37년) '신하들과 망해루에서 잔치를 치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볼 수 있고, '삼국사기'에서도 신라에 망은루, 명학루, 월상루 등의 누각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성곽그림에서도 누각형태의 건축물이 나타남으로써 궁궐 및 관아 건축이 공공시설로서 일찍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경주의 안압지와 임해전에서도 자연 속에서의 생활을 누리고자 인공 연못과 수림을 만들고 주위에 누정을 건축했음은 좋은 실례가 된다.

정자도 마찬가지로 삼국유사에서 488년(백제 소지왕 10년), 천천정에 임금이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어,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정자가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재상 이규보의 '사륜정기(四輪亭記)'라는 글에서 정자에 필요한 도구로 책, 베개, 바둑판을 중요시했다. 조선왕조에서 유학사상이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 일반생활철학에 철저히 적용되면서 정자는 지배계급, 즉 양반계급의 생활에 넓게 보급되었다.

산과 들에서의 정자의 장소성이 보여주듯이, 자연합일이라는 전통적 건축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신선이 있음직한 선경(仙景)을 선호했다.

관어대

관어대는 가야9곡 중 제1곡으로 '낚시하는 자리 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1949년 옥계저수지 축조공사로 아름다운 절경지와 낚시터가 사라졌다. 옥계리의 원 마을과 99칸의 대가를 자랑하던 병계 윤병구의 고택도 사라졌다.

# 풍류와 강학 역할

정자는 개인적 수양을 위한 풍류기능, 교육을 위한 강학기능, 종교적인 조상숭배를 위한 기능, 지역적인 계 모임의 기능 등을 위해 건축되고, 은둔과 공부를 위한 별서의 누정식, 일반서민들의 농촌들판 또는 마을 입구에 모정(茅亭)이 있다.

인위적인 자연구성과 정자 관계는 연못을 사각형으로 하여, 땅을 의미하게 하고 연못 가운데 동그란 섬을 두어 하늘을 뜻하게 하며 정자의 사람과 함께 하늘 ·땅 ·사람[天地人]을 공간상으로 계획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축설계의 예가 된다.

# 누각의 종류

정자건축은 사생활의 일면을 담당하는 건축물로 구조와 규모, 외장 등이 자유로오 자연과 동화된 형태를 구성하지만 누각은 개인보다는 공공(집단), 지역 단위의 특성 등으로 인해 규모 등이 고급건축에 해당된다.

누각은 현재 문루를 이루어 방어, 감시의 군사적인 요소가 많고 교육시설, 종교시설로 의식기능을 가진 것과 접대나 향연을 목적으로 한 형태가 있다.

# 정자의 기능

정자는 고려시대때 생활의 여유를 형이상학적으로 즐기는 퇴폐성보다는 지도자의 깊은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이었다.

정자는 집이 아닌 마을 앞 작은 동산이나 물가에 자리를 마련하고 자연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일을 하는 생활의 한 부분으로 벗과 더불어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규보가 생각하는 정자의 기능은 손님접대도 할 수 있고 학문을 겸한 풍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사륜정기에 기록하고 있다.

백석정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에 있는 것으로 조선 숙종(1677)에 동부주부(東部主簿)를 지낸 백석정(白石亭) 신교(申, 1641~1703)가 세운 고령신씨의 정자다.

# 정자의 조경과 배치

정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환경과 일치되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로 시대나 지역에 관계없이 일반화 돼 자유로이 건축됐다.

정자는 풍류와 관망, 휴식 등을 위해 세워진 것이 대부분이다. 또 추모하는 의미도 있고 주거나 강학의 목적으로 세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상생활속에서 휴식의 의미가 내포돼 주로 산천이 수려한 곳이나 바닷가, 강가의 절경 또는 농촌지역의 한가운데 등 휴식공간이 필요한 곳에 세워졌다.

정자는 기본 건축물에 부속된 하나의 건물이나 독립된 단일 건물로 건축했다.

의상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의상대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만든 6각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크기의 정자이다.

또 풍류와 정서적인 휴식을 강조하는 공간으로 자연의 경관을 고려하거나 주위경관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장소에 건립됐다. 심지어는 동굴속에 세워진 정자도 있다.

강이나 계곡에 있는 정자는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백사장 등의 광할함을 바라볼 수 있으며 물에 비친달 그림자를 감상하는 등 서정적인 공간에 세워졌다.

특히 연못에 세워지기도 했고 주위와 공간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정자는 주위를 형성하는 수목에도 많은 배려가 있었다. 인위적인 조경처리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형태로 사계절이 변화를 주는 색상과 구조로 이루어 졌다.

# 건축과 구조

건축은 평면의 유형으로 방과 방을 연결할 때는 외부의 독립공간으로 칸으로 나눠 정(丁)자 형태이거나 아(亞)자 형태의 구조였다.

정자의 초석은 자연암반이나 자연초석 위에 세워졌다. 누마루를 달아내는 상층구조의 경우에는 가종된 장초석을 모양있게 사각이나 원형 또는 6각형 등 형상을 달리하고 있다. 초석의 위치는 건축 구조상의 평면형태 또는 건축 목적에 따른 기둥 배치와 연관을 지었다.

측부의 기둥은 각기둥과 워녕기둥으로 지붕구조를 받치고 있다. 기둥하부는 마루 구조를 형성하고 그 위에 난간을 둘렀다.

기둥머리부분은 민도리 형식을 처리했고 규모가 큰 경우에는 기둥머리를 익공계 양식으로 하기도 했다.

# 누마루의 의미

전통적인 한옥의 마루공간은 누마루가 온돌과 결합된 특이한 구조다. 서민주택의 마루공간은 개방돼 신성한 공간은 동시에 과시적인 전시공간이었다.

누마루 공간 자체가 지면보다 높아서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들도록 했다. 연못이 앞에 있다면 물위에 떠 있는 착각을 하게되고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우월감을 느끼게 했다.

/김병학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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