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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아름다움 자태와 기교 -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정자와 누각

조선시대 행정 중심지…화려했던 과거의 흔적들

  • 웹출고시간2013.08.13 19:01:34
  • 최종수정2013.08.13 19:01:34
제천의 청풍문화재 단지내에는 한벽루와 팔영루, 응청각, 금남루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자와 누각이 있다.

한벽루는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익랑이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 세 건물 가운데 한벽루는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풍문화재단지내에 있는 정자와 누각은 제천시 청풍면내에 있던 것으로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 제천 청풍한벽루(淸風寒碧樓)

제천 청풍한벽루

보물 제528호로 지정된 한벽루는 정면 4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팔작지붕건물이다. 본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이 건립되면서 한벽루 자리가 수몰됨에 따라 1983년 청풍문화재 단지내로 이전했다.

처음 창건된 것은 고려 말기인 1317년(충숙왕 4)으로 당시 청풍현 출신의 승려인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객사 동쪽에 이 누각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1397년(태조 6) 군수 정수홍이 중수했고, 1634년(인조 12) 개창되었는데 현재의 건축은 양식적으로 이때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당시의 중수기에는 '숭정무신군수권경개창'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후 1870년(고종 7)과 1900년에도 중수가 있었고, 1972년에는 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에 복원했다.

한벽루 오른쪽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익랑(문의 좌우편에 잇대어 지은 행랑)이 붙어 있다. 석축의 낮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장식적 표현이 가미된 조선 중기의 주심포로 초가지에는 연꽃봉오리를 조각하고 쇠서를 뾰족하게 꾸몄다.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다. 건물내에 송시열(宋時烈)·김수증(金壽增)의 편액과 '淸風寒碧樓'라고 쓴 김정희(金正喜)의 편액이 있다.

익랑은 덤벙주초 위에 4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목조의 8각기둥을 세운 건물로, 누각으로 오르는 층계의 구실을 하고 있다.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익랑이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읍리 산8-14)

# 청풍 팔영루 (八詠樓)

팔영루는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李箕洪)이 남덕문(覽德門)이라고 한 그 터에 고종(高宗) 7년(1870)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다시 중수했다.

팔영루

팔영루는 청풍부(淸風府)를 드나드는 관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북쪽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성누문(城樓門)답게 홍예를 쌓은 높은 대(臺) 위에 우뚝 서 있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고종조(高宗朝) 부사 민치상의 청풍팔경(淸風八景)을 읊은 팔영시(八詠詩)로 하여 팔영루(八詠樓)라고 명명했다.

팔영루도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邑里)에서 1983년 이전했다.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청풍 응청각

# 청풍 응청각

응청각은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건물로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청풍문화재단지내로 이전했다.

모양은 앞면 3칸ㆍ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세웠고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것으로 예상된다. 2층은 앞면만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 기둥을 세웠으며 난간을 둘렀다. 동남쪽으로 3단의 나무계단을 설치해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구조는 1고주5량(一高柱五樑)이며 기둥머리에 쇠서(牛舌)가 1개 달린 초익공계(初翼工系) 건물이다. 홑처마 합각(合閣)지붕을 한 것이 특징이다.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청풍 금남루

# 청풍금남루(淸風 錦南樓)

조선시대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재단지 안으로 옮겼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탁 트여 멀리있는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한다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

청풍에서 70여년을 살아 온 이종구(79)씨는 "문화재 단지내에 있는 누각은 예전에 청풍면 읍리에 있던 것으로 과거 청풍면이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한 중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며 "지금은 한벽루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잘 보존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적에는 한벽루에서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동네어르신분들이 잔치를 할 때 종종 이용했다고 전했다.

관수정

한편 청풍문화재단지에는 동헌과 전망대로 쓰이는 관수정, 망월루 등이 있다.

망월루는 적과의 싸움에 앞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병학기자

관수정

한편 청풍문화재단지에는 동헌과 전망대로 쓰이는 관수정, 망월루 등이 있다.

망월루는 적과의 싸움에 앞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병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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