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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송부일의 사찰을 찾아서 - 마곡사(中)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위치 : 충남 공주 마곡 운암 567
'전세계에 3개만 있는' 5층 석탑

  • 웹출고시간2011.11.07 18:02:2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해탈문과 천왕문, 영산전과 명부전 영역

마곡사 대광보전

세심교에 이르니 맑은 물이 마곡사를 태극모양으로 휘감아 두 영역을 긋고 흘러간다. 한 영역은 세심교 앞마당 영역이며 하나는 극락교 건너 영역이다. 세심교 영역은 해탈문, 천왕문을 아랫단에 두고 윗단에는 명부전, 영산전, 국사당이 위치 해 있다.

해탈문을 지나 홍성루를 거쳐 아래 영역의 중심건물 영산전이 서있다. 이 영산전은 지방문화재 제12호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시대의 건물이다. 영산전 현판을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겨놓은 글씨라 전해진다.

영산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 박공을 단 단층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과거칠불을 둘러싸고 1.250명의 현겹 천불상으로 모셔졌다.

죽음의 세계를 다스리는 명부전에서 나와 아랫단으로 내려오면 낡은 모습의 해탈문이다.

해탈문 안에 금강역사가 눈을 부라리며 금방이라도 칠 것 같은 모습으로 불국길로 향해가는 수행자를 보호하며 서있다.

이 해탈문을 지나면 바로 천왕문이다. 불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 천왕들이 동에는 지국천왕, 남에는 증장천왕, 서에는 광목천왕, 북에는 다문천왕이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 문지기 되어 서있다.

◇김구선생이 원종스님이

경내 마당으로 들면 백범 김구선생이 해방 후 상해에서 다시 돌아와 심었다는 향나무가 서 있는데 지금은 새로 만든 김구선생기념관 앞으로 옮겨져 있다.

김구선생은 구한 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지다를 황해도 아악군 치아포 나루에서 처치하여 인천 형무소에 구금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교도소를 탈출하여 이곳 마곡사에 피신했다.

숨어 사는 동안 출가하여 원종(圓宗)스님의 법명과 수계를 받고, 스님 생활을 하다가 상해로 건너가 민족과 나라 위해 살았다.

상해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선생이 해방 후 임시정부와 같이 귀국하여 민족운동을 하던 중 자유당시절 군인인 안두희에게 저격당하여 서거하셨다. 온 민족이 울고, 온 겨례의 오열 속에 효창공원에 시신을 안장하고 49제를 마곡사에서 올렸다. 현재의 연향각이 선생께서 기거 하시던 곳이라 한다.

◇5층 석탑

대광보전 앞으로 가면 지방문화재 제19호인 5층 석탑이 우아한 몸매를 자랑하고 중생을 향하여 서있다.

이 5층탑은 모든 면으로 보아 국보급 문화재이나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에 국보에서 제외되어 지방문화재로서 마곡사를 지키고 있다.

탑신이 폭에 비하여 높고 각 층의 체감율이 적으며 옥개석 귀꽃이 심하게 반전 되었다.

이 탑 속에 금이 들어 있다는 소문에 도벌꾼에게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화재로 인한 손상으로 돌이 타서 청석 대신 화강암으로 보충한 것이 거슬린다.

그러나 한국, 인도, 중국 등 세계에서 3개 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다. 또한 이 탑은 전체로는 5층탑인데 탑신이 8,7m로 훌쭉하게 뻗고 지붕돌의 처마가 좁고 반전이 심해 상승감이 크게 강조된다.

◇대광전의 부처님이 서쪽에서 동쪽을

이 오층 석탑 너머 탑 수직선을 보안한 모양의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집 팔작지붕 대광보전이 있다. 보물 제80호인 대광보전은 조선 정조 때 세워진 건물로 현판을 예원의 총수였던 표암 장세황이 썼다고 한다.

마곡사는 예로부터 화승들이 대대로 배출된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법당 안 본존불단 후불 벽 뒷면에 백의관음보살이 보타낙가산의 안락좌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상을 표현하고 그 배경으로 산수와 보살 뒤쪽에 크게 쳐놓은 대나무, 발아래 그린 화초들이 너무 아름답다.

이 광전 바닥에 나무껍질로 만든 자리가 깔려 있었는데 약 130여 년 전 이름 모르는 앉은뱅이 장애인이 절을 찾아 백일기도를 드리길 원했는데, 불구의 몸으로 백일기도를 드리는 동안 법당 마루에 깔 삿자리를 짜겠다고 자청했다. 백일 만에 30평정도 되는 자리를 짰다. 이상하게도 자리를 다 짜놓고 앉은뱅인 그가 스스로 일어나 걸어서 나갔다고 한다. 대광전의 전설을 알고 밖으로 나오면 바로 뒤에 대웅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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