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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6.02 18:40:4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세계적으로 훌륭한 문자(한글)를 갖고 있고,역사가 깊은 나라인데 왜 이렇게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을까."

지난 26년 간 글을 써서 먹고 살며 느낀 의문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지방의회의 '맏형님' 격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의회를 보자. 기자는 지난 1991년 치러진 동시 지방선거로 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지방의회가 탄생되기 전인 89년부터 6년간 서울시청과 서울시의회를 출입했다. 그 결과 56년 8월 의원정수 47명으로 서울시의회가 처음 구성된 뒤 박정희 군사정권이 일으킨 5·16 쿠데타로 해산되기 전까지 약 5년간 활동한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이 기간의 의회 관련 기록 중 상당 부분이 유실돼 관련 학자나 기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당시 기준으로 불과 30여년전에 작성된 '대한민국 지방자치 1번지'의 역사적 기록이,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항의도 해 봤다. 하지만 얻은 건 없었다. "우리나라 정치가 워낙 우여곡절이 심하다 보니,기록으로 인해 혹시 닥칠지도 모를 화(禍)를 막기 위해 누군가가 몰래 파기한 게 아닐까"라는 의회 관계자의 추측성 설명을 들으며 자위해야 했다. 대전시가 벌인 '대전천 정비사업'으로 2009년 철거된 대전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들 시설은 불과 30여년전인 74년과 76년 각각 지어졌다. 하지만 건축 서류를 대전시 공무원들이 법정 보존기간(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해버렸다. 그 바람에 2008년 7월 다른 관련 문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보상 등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졌다.

기록문화에 관심이 적은 것은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손가락 문화가 발달한 덕에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 첨단기계를 통한 '비기록성( 非記錄性)' 기계글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가히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엔 필기도구나 메모지도 필요없이,스마트폰에 모든 시청각 정보를 집어 넣는다. 하지만 동시대인이나 후세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를 '기록성(記錄性) 문서'를 생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아니,"문서 생산에 취미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기자는 10여년전부터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윗옷 주머니에 넣고 여행하는 버릇이 있다. 직업 탓인지,국내·외 주요 관광지에서 각 나라 관광객들의 행태를 비교하는 데서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기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관광객은 일본인이다. 유명 사적지 등을 '조용히 걸어 다니면서' 깨알같은 글씨로 수첩에 메모하는 70대 부부,여름방학 때 혼자 배낭을 맨 채 한국 주요 사적지를 답사하며 디카로 사진 찍고 노트에 메모하는 여학생을 보면서 "세계 1등 국가가 된 게 우연이 아니구나"라고 느낀다.

이런 가운데 이른바 '한국판 안네의 일기'가 최근 국제적 기록으로 공인됐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된 여고생의 일기가 다른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들과 함께 유네스코(UNESCO)가 선정하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영구 보존된다는 것이다.

5·18은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영국 작가 조지 리튼이 처음 썼다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라는 금언(金言)은,그 당시 이땅에서는 한낱 말장난에 불과했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씨가 계엄령을 내린 뒤 바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모조리 해직시키고,감옥에 가뒀기 때문이다.

당시 공공기관이 작성한 대부분의 기록물은 '사실(史實)'이나 '사실(事實)'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요즘처럼 휴대전화나 스마트폰도 발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작성한 정확한 기록이 '객관적 역사'를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당시 광주여고 3학년생 신분으로 전남도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일기장을 기록한 주소연(49·서울 중부교육지원청 장학사)씨는 국가기록원보다도 더 큰 일을 해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갖은 만행을 벌여 사망자는 밝혀진 사람만 해도 200명을 능가하고 실종자는 거의 한 동에 몇 사람 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매스컴은 일절 이러한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으며,완전히 정부 편에 서서 우리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있다." 20여년 경력의 기자에게 자괴감이 들게 하는 여고생 일기의 한 부분이다.

/최준호 기자 penismight@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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