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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3.31 18:19: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는 신정아 씨의 자전적 에세이 '4001'을 재판이 나온 날 서점에서 어렵사리 구입해 하룻밤을 꼬박 세워 읽었다.

전문서적이 아닌 신변잡기류를 기록한 책인데도 책값이 무려 1만4천원이나 됐다. 하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잇달아 보도되고 있는 '그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있자니,책을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언론인이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觀淫症)을 이용한 상업주의 출판문화'의 주요 고객층이란 사실도 솔직히 말해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책에는 신 씨가 그 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다른 대다수 자서전류와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인물 대부분을 실명으로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남의 소중한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모의 전직 여교수가,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사들에 대해 "평소 성격은 어떻고,무슨 노래를 좋아하고…"라며 주관적으로 점수를 매겨 버린다. 이 책이 근래에 보기 드문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 중 하 가지다. 이 책에는 특히 전직을 제외한 현직 기자만도 12명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는 기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책에 등장하는 현직 기자 중 신 씨가 좋게 평가한 사람은 딱 한명이다. 국민일보 손수호 기자 뿐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처음엔 그녀와 가까웠다가 '결정적 순간에 등을 돌린' 사람으로 묘사돼 있다. 신 씨는 특히 이 책에서 자신과 친했던 여기자들에 대해서는 '적개심'에 버금가는 나쁜 감정을 품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의리'가 없는 기자들이라는 것이다. 신씨가 막상 어려운 처지에 처하자,일반 기자들보다도 더 신랄하게 비판기사를 쓴 사람들이 바로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라며 신 씨는 분개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자는 18년전으로 '기억의 필름'을 되돌렸다. 1993년 2월 26일,인권변호사 출신으로 46세의 젊은 나이에 김영삼 정부의 첫 서울시장으로 임명된 김상철 변호사는 그날 오후 4시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했다. "…저는 시장으로서 앞으로 모든 일을 똑바르게 하겠습니다. 이 시간부터 직원 여러분에 대해서도 일을 똑바르게 하지 않으면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특유의 달변으로 "똑바르게"란 어휘를 거듭 강조,법조인 출신답게 시청 공무원들에 대한 사정의 칼날을 마구 휘두를 것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6일 후 사건은 터졌다. 김 씨는 자신이 저지른 '똑바르지 못한 행위' 때문에 결국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개인적인 문제로 개혁 현장의 일꾼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는 이임사를 남긴 채…. 김 변호사가 시장 자리를 물러나게 된 것은 취임 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그린벨트 지역에 있는 자신의 집 옆 농지 1천729㎡(524평)를 사들인 뒤 잔디를 깔고 정원수를 심는 등 토지를 불법으로 형질변경한 게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기자를 포함한 당시 서울시 출입기자들이 사회면 머릿기사 등으로 크게 보도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청와대는 비난 여론에 굴복해 '사상 최단명 서울시장'이란 불명예를 김 변호사에게 안겨줬다.

김 변호사는 그 후 여러 자리에서 서울시 출입기자들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나의 불법 사실이 얼렁뚱땅 넘어가면서,서울시장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모 종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특히 '7일간의 서울시장'이란 신앙 간증집을 출간,자신이 시장직에서 쫓겨난 게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장직을 그만둔 데 대한 일방적 해명과 함께 얼굴사진과 인적사항이 포함된 당시 서울시 출입기자 140여명의 목록을 자신이 관여하는 종교의 소식지에 게재,기자들을 '역사의 죄인'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무명 시절 신 씨에게 도움을 준 많은 기자가 지금은 그에게 '의리없는 기자'로 매도당하고 있다. "만약 내가 신정아 씨와 친한 기자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개인적 친분(사익) 때문에 사회 정의(공익)를 저버리는 게 과연 기자로서 할 일인가. 법을 어긴 서울시장을 눈감아 주는 게 언론인,아니 시민으로서 의리있는 행동인가.이 땅에서 기자로 살아가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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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