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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1.11 17:33: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나는 어릴 때, 조숙한 탓이었는지 유행가를 곧 잘 불렀다. 노래를 좋아하는데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큰 맘 먹고 축음기를 사온 덕분이었다. 그 축음기에서 백설희의 '하늘의 황금마차' 안다성·송민도의 '청실홍실' 등을 배워 어른들을 따라 흥얼거렸다. 학예회나 소풍길에서 다른 아이들은 동요를 불렀는데 나는 엉뚱하게도 유행가를 불러 선생님을 당황케 했다. 그 후, 라디오에서 유행가가 흘러나오면 재빨리 가사를 받아 적어 따라 불렀다.

그렇게 해서 유행가 2~3백곡 정도는 거뜬히 불렀다. 야유회 등지에서는 노래방 기기가 없던 시절이므로 기타 반주나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방기기가 나오면서부터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 노래가사를 순전히 모니터에 의존하다보니 편리하기는 했지만, 모니터 없이는 노래를 부르기가 어렵게 됐다. 모니터가 없다보면 멜로디는 뻔히 아는데 가사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대학 때에 통기타 반주로 부르던 포크 송도 모니터 없이는 완창이 불가능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기억력의 상당부분을 노래방 기기에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당한 기억력의 손실은 비단 노래방기기 뿐만이 아니다.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그전에는 웬만한 전화번호는 기억했는데 휴대폰의 전화번호부 저장기능을 이용하고서 부터는 가까운 친지의 전화번호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산다. 가족의 경우 단축키로 저장을 해 놓아 10~11자리나 되는 휴대폰 전화번호를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어떤 때는 집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휴대폰 값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저장된 전화번호다. 휴대폰이야 새 것으로 사면 그만이지만 그 안에 전화번호를 다시 저장 복원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나는 길치다. 운전 경력이 26년이나 되는데 어디만 가려면 헤매기 일쑤다. 다른 도시를 가자면 수도 없이 길을 묻고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달한다. 늘상 돌아다니는 청주시내에서도 용암동, 가경동, 복대동 등지를 가면 번번이 뺑뺑이 질이다. 한번은 내비게이션을 달아봤더니 그야말로 신통방통하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좌회전, 우회전은 물론 감속구역이나 횡단보도 등지도 친절하게 가리켜준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안내 멘트가 조금 시끄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생활 속의 디지털 문화는 깊숙이 파고들어 어느새 의식세계를 점령해버렸다. 우선 당장 컴퓨터가 없으면 원고를 쓸 수가 없다. 워드프로세스를 배울 때는 손가락이 말을 안 들어 짜증이 나더니 이제는 쓰는 것 보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훨씬 빨라졌다. 어쩌다 필기구로 원고를 쓰다보면 답답증이 치민다. 알게 모르게 벌써 컴퓨터에 중독된 것이다. 가전제품들도 상당수가 디지털화 되어 주부들의 고된 손길을 덜게 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물이 끓고 김이 나는 것으로 요리과정을 짐작하던, 경험과 육감에 의한 밥 짓기가 아니라 전기코드만 끼어놓으면 알람이나 입력된 멘트로 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카메라, 전화기 등에 있어서 그 기능을 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리모컨에 나열된 메뉴버튼을 보면 정신이 없다. 깨알처럼 쓰인 작은 글씨나 영문으로 된 사용내역을 읽기도 어렵고, 누르기도 어렵다.

분명 디지털 문화는 여러 가지로 생활에 편리함을 준다. 그 이용방법만 알면 아날로그 방식보다 수백, 수천 배의 편리함을 주고 일의 능률을 올려준다. 그러나 저장된 파일이 한꺼번에 날아갈 때는 보통사람으로서 복구가 불가능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밤을 새워 쓰다시피 한 원고를 통째로 날려버린 황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 문화는 인간의 기억을 빼앗아감으로 그 사용에 저마다 수위조절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잘 아는 길이나 가까운 거리는 내비게이션을 쓰지 않고 운행을 한다든지, 가끔은 만년필로 편지를 써본다든지 하는 기억의 재생작업이 필요하다. 편리하다고 해서 생활의 모든 것을 디지털 문화로 바꿔놓으면 생활의 주체인 인간은 사고력을 상실한 채 디지털 문화의 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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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