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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길을 통과하게 된다. 그 길은 걷든, 차를 타고가든 통과 수단이 다 다르지만 말이다. 요즘은 웬만한 길이 모두 포장되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지만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길에는 어쩐지 사람의 냄새가 풍겨나지 않는다. 도로 포장률이 높아야 자치단체장의 치적이 올라가고 일대가 발전된 마을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고속도로, 국도는 물론 어지간한 지방도까지 포장 안 된 길이 없을 정도다.

나는 운전을 할 때, 아주 바쁜 일이 아니면 고속도로보다 국도나 지방도를 택한다. 고속도로가 말 그대로 빠르기는 하나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 겨를도 없이 일직선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통에 운전하는 맛이 없다. 그 대신 국도나 지방도를 택하면 구경꺼리가 아주 많다. 늦 태풍을 이겨가며 옹골차게 오곡이 여물어가는 가을 들녘이 신선하고 고추잠자리가 무리지어 저공비행을 하는 모습도 정겹다.

어디 그뿐인가. 산들바람에 머리채를 흔들며 인사하는 길가의 코스모스가 예쁘고 울먹울먹 흘러가는 개울물도 가을의 운치를 더해 준다. 고속도로는 직선의 철학이고 국도는 곡선의 철학이다. 능률면에서는 직선이 곡선을 크게 앞지르나 사는 맛은 곡선이 더 고즈넉하다. 고속도로가 목적주의라면 국도는 과정주의다. 인생열차는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고속열차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고 찐 계란과 김밥도 사 먹어가며 쉬엄쉬엄 쉬어가는 완행열차이어야 제 맛이 우러난다.

속리산 법주사에는 일주문에서 절집으로 향하는 오리숲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VIP 차량은 그 포장도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절집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그리 급해 숲길마저 포장해놓고 서두르는지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당시의 흙냄새 나던 그 길이 그립다. 낙엽이 쌓이고 산짐승의 배설물도 여리저기 흩어져 있던 그곳에는 유년의 추억이 쌓여있는데 돌연 포장길로 변하여 옛날의 상념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우리의 생활주변에는 아직도 이런저런 길들이 숱하게 남아 있다. 산길, 숲길이 있는가 하면 사색의 오솔길도 있다. 메뚜기를 잡으러가는 논둑길도 있고 동구 밖 과수원 길도 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장 나들이 길도 있고 소몰이꾼의 지름길도 더러 남아 있다. 청원 추정리 2구에서 사흘티를 넘어 내북~보은으로 향하던 소몰이꾼의 길이 지금도 남아 있으나 인적은 없다.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던 골목길도 있다. 우리 집은 골목의 맨 끝에 있는 '막다른 골목집'이었다. 골목은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연애편지도 여기서 주고받았으며 아찔한 첫 입맞춤도 여기서 많이 행해졌다. 제대한 삼촌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그 넓은 양 어깨가 골목 양쪽에 닿을 정도였다. 정월대보름이나 명절을 맞으면 동네 풍물 굿이 진건하게 골목길에서 펼쳐졌다.

길은 시간적으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어준다. 공간적으로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심정적으로는 너와 나의 마음을 이어 우리가 생활공동체임을 확인시켜준다. 길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마음을 이어주고 보듬어주는 정신적 매개체다. 길이 있어도 마음이 멀면 이웃이 아니다. 지천으로 널린 그 길이 걷기열풍을 타고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 괴산의 산막이 길 등 명품 길이 속속 태어나고 있다.

송태호 답사대장이 이끄는 '청주 삼백리' 시민단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청주삼백리 길을 개척해 왔다. 말하자면 전국 명품 길의 원조가 바로 청주삼백리 길이다.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대청호 둘레 길과 더불어 충북을 대표할만한 길이다. 산업화 도시화 속에 충북의 옛 길이 많이 없어졌지만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늘재 길(계립령), 새재 길(조령), 청주 상봉재 길, 미테재 길 등 남아있는 충북의 옛길을 다시 찾아보고 가꿔나가야 할 일이다. 길 중에서 가장 험한 길은 역시 인생길이다. 그 적적한 인생길은 너와 나의 동반자가 있어 심심하지 않다. 옛 길을 걸으면서 역사의 향기를 맡아보고 주변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되찾아보자. 그렇게 하면 고된 인생길이 즐거움의 길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생활주변의 여러 길 중에 가장 중요한 길은 '마음 길'이다. 귀뚜라미가 불면증을 재촉하는 이 가을에 심중에 숨어있는 '마음 길'을 꺼내어 함께 걸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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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