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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한국의 고인쇄문화가 서양보다 200년 앞섰다는 것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먼저 찍어낸 '고금상정예문' (1234년)등을 기준점으로 삼은 것이다. 백운화상이 초록하여 그의 제자 석찬, 달담 등이 제작한 '직지'는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직지'이전의 금속활자본은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고 전해지는 것은 '직지 하권' 하나뿐이다.

최근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직지'보다 138년이나 빠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약칭 증도가) 활자의 실존을 밝혔다. 확인된 자는 명(明), 소(所), 어(於)등 12자에 달한다. 이 활자가 진품이라면 한국이 직지와 더불어 인쇄문화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런 일은 고 활자와 책을 단순 비교했다는 점이다. 직지 활자와 증도가 활자를 비교했거나 책끼리 비교했다면 몰라도 책과 활자를 비교하며 마치 그 우열을 잰다는 것은 아주 이상한 비교법이다. 더구나 일부 언론에서 큰일이라도 난 듯 '인쇄역사를 다시 써야 하느니, 교과서를 바꿔야 하느니' 하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매스컴의 고질병인 '센세이셔널리즘'이 작동한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기실 '직지'의 아성이 다른 인쇄본으로부터 도전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논쟁은 벌써 20여년이나 되었다. '직지'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것은 역시 이번에 이슈가 된 '증도가'이며 이외에도 삼장문선(三場文選) 등이 있다. 지난 1988년 2울, 단국대 김두찬 교수는 '고려판 남명집(南明集)의 구결연구'라는 논문에서 안동본 '증도가'가 주자본임을 주장한 바 있다. 그 이유로 첫째 판목에서 나타나는 나무결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둘째 판목과 달리 글자의 요철이 심해 먹물의 농도차가 심하고, 셋째 최이(崔怡)는 강화 천도 후 '상정예문을 주자, 인출한 장본인 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증도가'는 고려 고종 19년(1239) 몽골군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하였을 때 무신인 최충헌의 아들 최이가 민심을 수습코자 불교의 교리를 담은, 송대(宋代)에 전창돼오던 불가를 주자본으로 찍어낸 책이다. 현재 이 책은 금속활자본이 전해지지 않고 금속활자본을 번각(飜刻)한 목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증도가 목판본은 보물 제758호로 지정돼 있고 또 다른 목판본은 안동시의 박 모씨가 소장하고 있다. 이 두 목판본은 같은 인판에서 찍어낸 것으로 보고 있으나 안동본은 인쇄가 조잡하다.

그러나 남권희 교수와의 주장과 달리 중원대 이상주 연구교수는 증도가 금속활자와 목판본 증도가의 서법이 다르다고 맞서 이를 둘러싼 진위(眞僞)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려금속활자는 개성 개인무덤과 만월대에서 출토된 산무너질 '복'(山+復)자와 이마 '전(顚)자 두 글자뿐인데 이번에 무더기로 나왔다는 점도 의문이 간다. 이번에 선보인 12점의 증도가 활자는 일제시대에 발굴돼 일본을 거쳐 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미술 컬렉션과 컬렉터를 어떻게 거쳤는지 유통과정도 불분명하다.

증도가 끝부분에 있는 최이의 발문에 따르면 "금속활자로 간행된 이 책을 1239년에 다시 목판본으로 새겼다"고 기록했다. 번각본은 원래의 책을 목판에 뒤집어 붙여 볼록 새김(양각)을 한 것으로 책장을 뜯어 뒤집어 붙여도 한지의 특성상 글자꼴이 잘 나타난다. 글자꼴이 잘 나타나지 않을 경우엔 콩기름 등 식물성 기름에 적시면 투명하게 잘 보인다. 번각본은 인쇄물의 수요가 달릴 경우나 어떤 특수요인에 의해 시도되는 보편적인 고인쇄 기술이다. 번각본은 대개 원본에 충실하지만 새기는 사람(각수)에 의해 다소 달라질 수도 있다.

직지는 간기에 '청주목외 주자인시(淸州牧外 鑄字印施)', 즉 '청주목 밖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찍어 배포했다'라는 사실을 명기했다. 또 국내외 관련학계와 유네스코의 공인을 받아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증도가가 직지의 앞 자리에 오르려면 이러한 일련의 고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 단계에선 학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내 여론은 마치 올림픽 기록 갱신하듯 어느 것이 먼저냐에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 증도가가 먼저라면 직지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금속활자 발명국임을 더욱 확실하게 해 주는 것이 된다. 현 단계에서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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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