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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 나뭇잎의 색깔이 짙어지고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매미가 요란하게 울면 여름방학이 가까워 왔음을 알게 된다. '여름방학'이란 말만 들어도 학생들의 마음은 마냥 설냥 설랬다. 산과 바다가 그립고, 외가(外家)의 원두막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여름방학을 하려면 1학기를 마치는 종업식을 했는데 한결같이 그 종업식이 마냥 지루했다. 마음은 벌써 딴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방학 과제물, 성적표 등을 나눠주는 종업식에는 여름방학의 최대 장애물인 '대청소'가 마음 바쁜 학생들의 발목을 잡았다.

교실 청소는 물론이고 그 넓은 운동장의 잡초를 다 뽑았다. 그 것 뿐만이 아니었다. 무심천 둔치를 학교별로 나누어 둔치에 난 풀을 제거하는 '무심천 풀베기'에는 청주시내 고등학교가 모두 참여하였다. 학생들은 교련복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며 목표량을 채웠다. 정해진 구간의 풀을 모두 베어야 비로소 집에 갈 수 있었다. 이 풀베기 작업이 끝나는 반부터 먼저 집으로 보냈으니 성가신 일이었지만 은근히 경쟁심리가 작용했다.

학교 다니는 형제들이 많던 1960년~1970년대에, 집 안 청소는 으레 아이들 몫이었다. 누나는 방청소 당번이고 나와 동생들은 마루와 마당청소 당번이었다. 어른들이 들일을 나가면 우리는 집에서 우선 청소를 하고 방학 과제물을 살핀 뒤 개울로 나가 수영을 했다. 그러니까 개인행동을 하기 전, 공적(公的)인 일을 우선 해결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에는 소위 '새벽청소'라는 게 있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아침 6시부터 쟁쟁 울려대는 동네 스피커 때문에 방학이 되어도 늦잠을 잘 수 없었다.

고향의 묵정밭에서는 옥수수가 익어갔고 청포도가 새끼줄을 따라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며 터널을 만들었다. 집 안 청소를 잘 한 날이면 어머니는 나무쟁반에 청포도와 복숭아, 옥수수 등 여름 먹을거리를 정갈하게 내왔다. 알이 통통 영근 옥수수 하모니카는 여름철의 별미였다. 뒤뜰에서 갓 퍼 올린 샘물에다 한나절 열기를 녹인 과일은 냉장고에서 강제로 몸을 식힌 요즘 과일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 어린 시절의 여름이 그리운 것은 그때의 여름이 더 낭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먹을거리가 부족하고 모든 것이 궁핍했던 과거이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가산점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 날의 정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여름방학이 되니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떼 지어 복지시설이나 관공서 등지로 몰려든다. 그래도 예약을 하고 오는 아이들은 양반이다. 예약도 안 하고 불쑥 찾아들어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몇 시간 '봉사활동 확인서'를 떼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보면 약간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극히 일부이지만 더 심한 아이들은 봉사활동도 안 하고 몇 시간, 며칠짜리 '봉사활동 확인서'를 떼 달라고 조른다. 안 된다고 하면 이번에 학부모까지 나서 누구누구와 친척이 되고 잘 아는 사인데 편리 좀 봐 달라고 애걸하기도 한다. 그 애걸을 들어줄 기관도 없지만 말이다.

노인 요양시설에도 봉사활동 대열이 찾아든다. 요양시설 측에서는 노인 목욕 등 부담이 가는 일은 학생들에게 절대 맡기지 않는다. 이런 일은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힘만 가지고 되는 일도 아니다. 만약 숙달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 일을 시켰다가 노인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셈인가. 그래서 요양원 측은 시설을 찾은 학생들에게 청소나 풀 뽑기 등 단순한 일만 시킨다. 봉사활동을 온다고 해도 별로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청소 등 간단한 일도 서툴다. 집에서 별로 청소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복지시설에서는 봉사활동에 나선 아이들을 애물단지로 본다.

봉사란 모름지기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가를 요구하면 그건 봉사가 아니다. 땀 흘려 일하며 공익정신을 배우고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것이 봉사활동의 취지다. 요즘 학교에서 실시하는 봉사활동은 조건 없는 봉사가 아니라 성적반영이라는 조건과 과실(果實)이 붙어 다닌다. 오죽이나 봉사를 멀리하면 '점수조건부 봉사활동'이 생겨났을까. 이기심의 한 자락을 접고 이타심을 펼친다면 우리사회는 한결 따뜻해질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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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