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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메타 커뮤니케이션 사업총괄 대표

나의 엄마는 시골 농가에서 맏딸로 태어나 집안일이며 농사일에 동생들 뒤치다꺼리까지 노동에 찌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했다. 여자니까 당연히 집안일이 우선이었던 시절이라, 배우고 싶은 공부도 제대로 못하셨다고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배움이 짧다 보니 봉제공장에서 미싱일을 직업으로 가졌고, 꿈이랄 것도 없이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었다고 하셨다. 결혼을 하고나서 자신과 같이 첫째로 딸을 얻으셨다. 그게 바로 나다. 여자라서 공부도 못했고 꿈도 못 꿨던 본인의 인생을 딸인 나로부터 보상받고 싶어 하셨다. 아들과 딸 이라는 드라마에서 김희애가 열연했던 후남이의 어릴 적 인생이 그대로 나의 엄마의 삶이었다. 그 시대 우리 어머니들의 보통의 삶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나의 엄마는 내가 집안 일 하는 걸 못하게 했었다. 팔자대로 살게 된다고 손에 물 묻히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남자들처럼 사회에서 직업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왔던 자기와는 다른 인생 살라고.

나는 그렇게 귀하게 자랐고, 남부럽지 않은 대학을 나와 일류로 꼽히는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수십년에 지났어도 직장에 들어가서 겪어야만 했던 나의 벽은 엄마의 어린 시절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여자로서의 차별과 무시를 직장에 들어가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진급 연한도 달랐고, 급여도 달랐다. 전체 여직원의 비율은 1%에 그쳤다. 그리고 대부분은 사무보조직이었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하는 너무나 당연했던 현실에 좌절하고 억울해 했었다. 엄마가 살던 세대와 달리 먹고 살 걱정 없는 발전된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녀차별은 당연한 것이었고, 한편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건 더 어려워 보였다.

그 몇 년 후 우리 경제는 IMF라는 폭풍 위기를 만났고, 산업 전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맞벌이를 하는 여직원들이 사직권고 1순위였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이었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남자들보다는 그래도 여자들이 더 여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이제는 대기업의 여직원 비율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일부 남성 집단에서는 여자들이 더 잘 나가는 시대라며 냉소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여자들 때문에 남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도 한다. 각종 국가 시험의 상위권은 모두 여자가 차지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작 나의 딸들에게 여자라서 할 수 없었고 또한 감내해야만 했던 일들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영국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 발표 내용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조사대상인 29개국 중 28.8%를 기록한 일본보다 낮은 29위를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녀임금격차, 여성임원비율도 29위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남녀 노동참여비율의 격차도 21.6%로 28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뚫을 수 없는 유리천장으로 씌워져 있는 것이다. 참 더디 간다.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그 딸이 살게 될 내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도 변화는 찾아오고 있다. 많은 혁신을 예고하고 있는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사뭇 다르다. 대통령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페미니스트 대통령임을 자랑스럽게 선언했고, 후보 시절부터 남녀동수내각, 여성대표성의 양적인 확대, 성주류화 관점에서 국가 정책을 재구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방했다. 실제 대한민국 정부에서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특정 부처의 장관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등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단계들을 밟아 나가고 있다.

며칠 전 청문회 과정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성평등없이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예전의 여성가족부 장관들과는 달리 행동하는 지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후보자이기에그 발언이 새삼 귀에 들어온다. 이 번 정부의 신념이 성평등적 관점에서정책과 제도들을 만들어 내고 사회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번 주는 여성가족부와 지자체가 함께 하는 양성평등 주간이다. '함께하는 성평등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내 딸들이 살게 될 대한민국이 좀 더 성평등이니 여성 차별이니 하는 표현이 필요 없는 성숙하고 세련된 사회가 되기를 꿈 꿔 본다. 내 엄마의 희망대로 여자라서 가져야만 했던 좌절 없이 스스로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진정한 평등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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