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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새해에 살펴본 원숭이 인문학

사찰·궁궐 잡상의 원숭이像, 손오공 공통 표현
원숭이는 '원성이'가 변한 말, 그 전엔 '잔나비'
붉은 원숭이 해는 오행 가운데 '丙'과 관련있어
원숭이, 문헌 첫 등장은 삼국유사 이차돈 순교
'詩經' 때문조선 역대임금 원숭이에 비우호적

  • 웹출고시간2016.01.03 17:44:01
  • 최종수정2016.01.03 19:38:43
[충북일보] 2016년은 병신년(丙申年)으로 십이지의 띠로 치면 원숭이의 해, 그중에도 붉은 원숭이〔赤猿〕의 해이다. 원숭이는 국내 서식하고 있는 동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숭이는 전통시대 일본과 중국 등으로부터 이런저런 역사적인 이유로 국내에 많이 유입, 비교적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새해를 맞아 △병신년이 붉은 원숭이로 호칭되는 이유 △원숭이의 어원 △원숭이 이칭인 잔나비 △역사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원숭이 △조선 역대임금이 원숭이를 싫어한 이유 △원숭이 전통 조각상의 공통점 △원숭이와 관련된 고사성어 등 '원숭이 인문학'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 병신년이 '붉은 원숭이의 해'인 이유

병신년의 병(丙)은 천간(天干), 신(申)은 지지(地支)에 해당한다. 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이고, 지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이다.

이 가운데 후자 '신'에서 열두띠 동물중 원숭이가 나왔다. 그러면서 붉은 원숭이가 된 것은 천간의 '병'과 관련이 있다. 10개의 천간은 다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등으로 묶음이 되고, 이는 오행(五行) 목·화·토·금·수에 일대일 대응된다.

이때의 오행은 목은 靑, 화는 赤, 토는 黃, 금은 白, 수는 黑 등의 색(色)으로도 발현된다. 여기서 '병신년=붉은 원숭이의 해'라는 의미가 도출됐다.

청주목의 이인좌가 난을 일으킨 1728년(영조 4)은 무신년의 원숭이 해였다. 그러나 이때는 '누런 원숭이의 '해였다. '무기'가 오행 土에 대응되고 土는 누런 색〔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박미귀가 말하기를,"네가 심유현(沈維賢)에게 '무신년은 소복(素服)의 해이다.' 하지 않았는가"하였다. 대개 무신년은 황후(黃개사슴록변+侯)의 해이므로 비기에 '백의서생(白衣書生)이 조정에 찰 것이다.' 하였기 때문이다.'-<영조실록 4년 5월 10일> 인용문중 황후는 바로 누런 원숭이를 지칭하고 있다.

◇원숭이의 어원

어문학자들에 따르면 원숭이의 초기 발음은 '원숭이 원'(猿)과 '성성이 성'(猩) 자를 쓴

'원성이'였다. 이 '원성이'가 발음의 편리를 따라 '원숭이'로 변했다. 우리말중에는 '어' 가 '으' 계열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어른'이다.

지금도 충청도 시골에 가면 '어른'을 '으른'으로 발음하는 촌로들이 많다. 또 성씨 '정'을 '증'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원성이가 원숭이로 변한 경우도 같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원숭이를 의미하는 '성성이 성'(猩)자는 '성홍렬'(猩紅熱)이라는 병명에도 사용되고 있다. 성홍열은 피부가 빨개지는 병이고, 원숭이 엉덩이도 빨갛기 때문이었다.

◇원숭이 이칭인 잔나비

충청도 촌로들은 지금도 '원숭이 띠' 대신 '잔나비 띠'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어문학자들에 의하면 17세기까지만 해도 언중은 '원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것이 '나비'로 연음화됐다. 여기에 '재빠르다'의 형용사형인 '잰'이 붙어 '잰나비', '잔나비' 순으로 변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정월 첫 잔나비날에는 칼질을 하면 손을 벤다고 하여 일손을 삼가했다.

◇역사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원숭이

『삼국유사』 이차돈(異次頓, 506~527) 설화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신라 최초의 불교 순교자로 법흥왕 14년(527) 스스로 칼을 받고 숨졌다.

『삼국유사』는 이때의 모습을 '옥리(獄吏)가 그의 목을 베니 하얀 젖이 한 길이나 솟구쳤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나타난 반응은 하늘의 찬미와 땅의 공포 그 자체였고, 이때 원숭이가 등장한다.

'이에 하늘은 침침해져 사양(斜陽)을 감추고 땅은 진동하는데 하늘에서 꽃잎이 내려왔다. 임금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를 적셨고 재상은 상심하여 진땀이 관에까지 흘렀다. 감천(甘泉)이 문득 마르니 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지니 원숭이가 떼지어 울었다.'-<삼국유사 흥법3>

◇조선 역대임금이 원숭이를 싫어한 이유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역대 임금들은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선물 또는 조공(朝貢)으로 들어온 것을 대체로 싫어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폭군 연산군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해 원숭이를 일본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 역대 임금이 원숭이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시경(詩經)』과 관련이 있다. 『시경』 각궁(角弓)편에는 "원숭이에게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가르치지 말고, 진흙 위에 진흙을 더 바르는 것 같은 행위는 하지 마라(毋敎노升木 如塗塗附)"라는 표현이 있다.

이때의 노는 '개사슴록변+柔'로 원숭이를 의미한다. 원숭이는 악을 상징하고, 그 악에게 나무에 오르는 것까지 가르쳐주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의미를 지닌다. 세종대왕이 말년에 불교를 믿자 유교 골수분자인 대신들은 이런 말로 반발했다.

'전하께서는 만백성의 대표로서 불교를 숭상해 믿으심이 이에 이르렀으니, 이는 원숭이에게 나무에 오르기를 가르치고 더러운 진흙 위에 다시 더러운 진흙을 칠하는 것과 같사오니. 불교를 숭상하는 징조를 장차 어떻게 막으오리까.'-<세종실록 23년 윤11월 24일>

◇원숭이 전통 조각상의 공통점

원숭이 조각상은 사찰과 궁궐 등 전통건물에서 접할 수 있다. 이중 사찰 원숭이 조각상은 사례가 드문 가운데 충북불교 종가인 법주사 경내에서 만날 수 있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지하의 원숭이 조각상. 대웅보전 것을 옮겨온 것으로 누군가 짓궂게 원숭이 조각 눈을 동전으로 가렸다.

법주사 대웅보전 계단 위에는 흔치 않은 원숭이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인도신화에 하누만(Hanuman)이라고 불리는 반사람-반원숭이의 상상동물이 등장한다. 이 원숭이가 중국으로 건너와 명나라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孫悟空)이 됐다. 손오공은 천계의 신들에게도 대드는 반항아였지만 후에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어 천축(天竺·인도)까지 함께 여행, 불경을 운반했다.

법주사가 대웅보전 앞에 원숭이 조각상을 세워놓고 있는 것은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삼장법사가 인도에 가서 불경을 가져온 것과 법주사 창건주인 신라 의신(義信) 대사가 서역으로부터 나귀에 불경을 긷고 들어온 설화는 그 상징성이 닮은꼴을 하고 있다.

법주사 본래의 원숭이 조각상은 현재는 금동미륵대불 지하에 위치한 성보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방문객들이 너무 많이 많져 원숭이 조각상이 변색되자 이를 성보박물관으로 옮겼다.

청주 관음사의 원숭이 조각상. 법주사 원숭이 조각상과 닮은 모습이다.

지금의 원숭이 조각상은 그 대체용으로 만들어졌다. 『서유기』 속의 원숭이를 상징하는 조각상은 법주사 말사인 청주 우암산 기슭의 관음사 대웅전 앞에서도 만날 수 있다.

창경궁 명정문의 잡상으로, 우측부터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조각상이다.

ⓒ 자료: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궁궐은 사찰과 다른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삼장법사의 손오공을 잡상(雜像) 조각으로 설치하고 있다.

잡상을 두는 이유는 토우로 만들어진 10신상(神像)을 지붕마루에 설치, 사람이나 생물·물건 등을 해치는 모진 기운인 살(煞)을 사전에 제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잡상은 지붕마루 길이에 따라 3~11개가 반드시 홀수로 설치된다, 이때 1~3번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손오공·저팔계 등이 대당사부(大唐師傅)·손행자(孫行者)·저팔계(猪八戒) 등의 이름으로 설치되고 나머지는 불규칙하다.

동아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손행자(손오공) 잡상.

ⓒ 자료: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이처럼 조선시대 사찰과 궁궐에 등장하는 원숭이 조각상은 손오공을 기본 모델로하고 있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원숭이와 관련된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와 앙급지어(殃及池魚)가 대표적이다, 전자는 『열자(列子)』의 황제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는 것을 일컫는다.

후자는 두필(杜弼)이 지은 격량문( 檄梁文)에서 유래하였다. 초나라 왕궁에서 키운던 원숭이가 산으로 도망을 가자 산에 불을 질러 나무를 모두 태어버렸다. 산불이 성문에 옮겨 붙자 급한김에 왕궁에 있는 연못의 물을 길러다 산불을 껐다. 그랬더니 연못의 물이 다 말라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물고기들만 죽음을 당하였다.

원문은 '楚國亡猿 禍延林木 城門失火 殃及池魚(초국망원 화연임목 성문실화 앙급지어)'로, 맨 마지막 구절에서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앙급지어와 유사한 고사성어로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경전하사(鯨戰蝦死)가 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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