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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경기 최악 "그래도 희망은 있다"

현장르포 - 청원군 내수오일장
"인근에 마트 잇따라 문열어 시끌벅적한 장터도 옛말"
"내년에는 일한만큼 벌어 서민경제 좋아졌으면"

  • 웹출고시간2012.12.30 20:08: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장터에서 가장 먼저 알아챈다는 말이 있다.

상인과 손님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단돈 몇 푼에 살까 말까 고민하는 망설임과 주고받는 덤으로 자연스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전국구로 상인들이 오가는 오일장은 서민들의 삶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충북에는 50여개의 크고 작은 오일장이 있다.

청원만 해도 문의(1·6일), 미원(4·9일), 옥산(4·9일), 내수(5·10일), 부강(5·10일), 오창장(5·10일) 등 6개의 장이 5일을 주기로 열리고 있다.

특히 내수 오일장은 내수읍사무소와 내수신협을 따라 줄지어 장이 선다.

한동안 서지 않았던 내수장은 10여 년 전 다시 서기 시작해 청원군 북부권 최대 장터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내수오일장이 부활한 뒤부터 내수장을 찾은 상인들은 올해로 1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다.

청원군 내수오일장 모습

지난 20일 연말 경제현장 분위기를 지면에 싣기 위해 오일장을 찾아나섰다. 당초 취재계획은 21일 열리는 문의장이었지만 비와 눈 소식에 하루 먼저 서는 내수5일장터를 급하게 찾아 나섰다.

내수오일장터는 매서운 한파에 갈수록 움츠러드는 경기 탓에 장터를 찾는 장사꾼도, 손님은 예상과 달리 적었다.

정오가 되자 도착한 장터에서 만난 상인들은 도시락을 꺼내 함께 나눠 먹기도 하고 인근 국밥집과 보리밥집에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고 있었다.

낮에 햇빛이 나며 날씨가 풀리자 장터에도 오가는 손님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 안순자기자

손님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바로 어물전이다.

겨울철 찌개를 끓여먹으면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동태는 진열하기 바쁠 정도로 손님들이 사간다.

오늘 나온 동태 한 마리는 2천원, 3마리를 사면 5천원에 해준다.

두 번째로 잘 팔리는 것은 명태를 꾸덕꾸덕 반쯤 말린 코다리다.

5천원이면 5마리를 살 수 있어 주머니 사정을 가장 잘 알아주는 생선이다.

북어보다 촉촉하고 생태보다 쫀득쫀득해 식감이 좋다 양념장에 조려 내면 특유의 비린내는 없어지고 고소한 맛이 살아나 감칠맛을 더해줘 겨울철 밥반찬에 제격이다.

제철 맞아 가득찬 알로 배불뚝이가 된 도루묵은 동태와 코다리에 밀려 체면을 구기고 있다.

올해로 13년째 내수오일장을 찾는 어물전 주인 민경제·배연화 부부는 남부러울 것 없이 한때 잘나가던 사장님, 사모님이었다.

민씨 부부는 지난 1997년 IMF외환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모질었던 사연이야 누군들 없을까.

민씨의 동업자이자 말동무인 부인 배씨가 있어 든든하다. 배씨는 부산 출신으로 물 좋은 생선 고르고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까지 손님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손님이 갑자기 몰려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내수오일장에서 어물전을 하는 민경제씨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동태를 손질하고 있다.

ⓒ 안순자기자
동태를 손질하는 와중에도 부부는 단골손님과의 환담을 이어갔다.

비상리에서 온 한 할머니가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생선손질을 기다리자 민씨가 먼저 말을 건넨다.

"어머니, 오늘 같이 추운 날 장갑은 왜 안끼고 오셨어?"

"깜빡했어."

"내가 장갑하나 드릴까?"

"공짜여? 줄라면 주든가."

"우리 쓰는 면장갑인데 다음에 올 때 돌려주셔."

"면장갑 그까짓 거 뭐라고 주면 끝이지. 뭘 가지고 와."

"허허허. 여보, 거기 면장갑 새 거 어머니 하나 드려."

두 사람의 대화에 주변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툭툭 던지는 어투지만 그 속에는 꽁꽁 언 손을 녹여줄 따뜻한 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다리를 사든 할머니는 "이게 겨울철 별미야. 무 숭숭 썰어 끓이면 찌개가 되고 간장에 조리면 짭짤하니 밥반찬으로 최고"라며 장터를 나선다.

손님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어물전에서 다시 인터뷰가 이어졌다.

체감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민씨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장사 시작하면서 올해 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어요. 내년에는 대통령도 바뀌었으니 기대를 해볼까 해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우리 같은 서민들 일한 만큼 벌어서 잘사는 세상 됐으면 좋겠어요."

화기애애한 어물전을 뒤로하고 걷다 보니 창이 짧은 중절모라 불리는 '페도라'를 쓴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시골 장터에 페도라를 쓴 할머니라니. 몇 가지 채소를 진열해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 옆에 앉아 말동무를 자청했다.

성이 연씨인 할머니는 올해로 일흔여덟,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자식들 걱정할까 이름만큼은 비밀로 해달라는 할머니는 증평군 도안면이 고향이다. 북이면 서산리로 시집을 와 남편과 자녀 4명을 낳아 길렀다. 젊은 시절 고개를 넘어 행상을 해서 키운 자녀들은 모두 출가해 노부부만이 오붓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연씨 할머니가 장터를 찾는 이유는 용돈벌이.

장사가 안되는 날은 2만~3만원 벌지만 잘 팔릴 때는 10만원도 번다.

"자식들에게 바라기만 하면 되겠어? 평상시에는 마을 회관에서 따뜻하게 지내다가 장날만 나와서 집에 있는 채소 몇 가지 팔러 나와. 집도 가까워. 저기 네발 달린 오토바이 보여? 그거 타면 집까지 10분밖에 안 걸린다고."

ⓒ 안순자기자
10여 년간 한자리에서 자리를 지킨 할머니가 생각하는 체감 경기는 어떨까.

할머니는 "전에는 콩 한말로 청국장 쒀서 오면 다 팔고 집에 갔는데 요즘에는 안 팔려서 아예 팔 생각도 안해. 다들 어려우니까 그러지 않겠어? 내가 못 버는 거야 하는 수 없지만 갈수록 경기가 어려워져서 큰일이야. "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머니표 채소들을 살펴봤다. 파, 무, 늙은호박, 땅콩, 도라지, 시래기 등 직접 재배한 것들로 처음 봤을 때보다 더 값져 보였다.

할머니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기자를 유심히 살펴본 채소장수는 어디 신문이냐며 묻는다.

"우리 할머니 나오는데 내가 꼭 봐야지."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내면서 장터 상인들은 어느새 한가족이 되어 있었다.

채소 장수는 "몇 년 전부터 장터 인근에 마트들이 문을 열면서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시끌벅적하던 장터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고 회상했다.

증평군 창동리에서 온 양말장수 장모씨(72)는 "얼마전 다리를 다쳐서 딱 올해까지만 나오고 내년부터는 장사를 안 할 생각"이라며 "내수오일장을 찾는 서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 가판대에 진열된 털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장씨는 장갑을 꺼내 보이며 "어떤 손이라도 잘맞다"라고 신축성을 자랑한다.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도 저만치 두손을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연씨 할머니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두컬레에 5천원에 산 장갑을 들고 연씨 할머니에게로 갔다.

할머니는 그새 단골을 만나 안부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 제가 솜씨가 없어서 채소는 못사요. 추운데 이거 끼고 하세요."

할머니에게 장갑이 담긴 고무봉지를 건네자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다 못이기는 척 받아들고 "고마우이 고마워"라며 또 보자고 인사를 하신다.

어물전 민씨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장터에 들어섰을 때보다 돌아나오는 길 춥다고 생각했던 날씨가 한결 포근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만 잘살자라는 생각보다 장터를 찾는 손님과 상인들, 나아가 서민이 잘사는 2013년을 기대하는 내수장터 사람들의 훈훈한 정을 몸소 느끼면서 긍정의 힘을 다시금 되새긴다.

2012년 끝자락은 추웠지만 삶의 현장에서 제몫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열정으로 다가오는 2013년은 경제 회복소식이 일찌감치 들려오길 바란다.

/ 안순자기자 asj13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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