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절실했던 시절이었다. 80이 다 된 그 어른의 가슴 아린 이야기를 들었다. 2년 전 고졸 검정고시 학생이셨던 그분은 언제나 제일 앞자리에 앉으셨다. 무릎 관절염으로 걸음이 불편하셨음에도 제일 먼저 나오셨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셨다. 그 분은 음성군 평생학습과 프로그램이었던 성인 문해 수업을 시작으로 초졸, 중졸 과정을 거쳐 고등학교 졸업 자격 반에 이르렀다. 까막눈이 한글을 깨치고 글을 쓸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신다는 그 분은 국어 시간을 제일 좋아 하셨다. 시를 낭송해 드릴 때마다 18살 소녀로 돌아 가셨다. 고전 시조나, 현대시를 수업할 때면 늘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은 채 시를 마음으로 들여 느끼셨다. 어느 날, 정지용의 시 '유리창'을 낭송 한 후였다. 마치 당신 자식을 잃은 듯 눈물을 흘리시며 시인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냐고 애달파 하는 통에 한참을 기다린 끝에 수업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검정고시 수업은 시험을 목표로 수업을 해야 해서 어떤 때는 시간과의 싸움인 때가 많다. 학습자 대부분이 60, 70대 어르신들이다 보니 이해력을 바탕으로 수업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어르신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중세국어수업이 그렇다. 중세 국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많은 어휘들이 없어지기도 했고,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의미가 변한 어휘들도 많다. 난생 처음 보는 글자는 물론이고 읽는 방법 등 외워야 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ㅿ, ㆆ,ㅸ', 반치음, 여린 히읏, 순경음 비읍 등은 고등학교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글자들이다. 어렵다하면서도 앎의 힘 때문인지 모두들 성취감이 대단하다. 시를 좋아하시는 그 분도 중세 국어 시간이면 눈이 반짝인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연필로 열심히 노트에 적으시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온다. '어리다'는 어리석다는 뜻이고, '여름'은 열매라는 뜻이라고 하니 이렇게 어려운 글자를 배워야 하는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가슴을 쓸어내시는 모습에 강의실이 한바탕 웃음으로 왁자했다.
한글은 백성을 아끼는 세종대왕의 마음에서 탄생된 글자다. 중국을 사대했던 양반들로서 글은 양반과 평민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그러니 양반들은 일반 백성이 글자를 쓰고 읽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을 것이다. 한글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고난을 겪어야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언문', '반글', '암글'이라며 한글을 비하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수모를 겪었음에도 오늘날 세계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문자가 '한글'이다. 만약, 중국의 '한자'를 국문으로 썼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작은 나라가 세계 속에서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던 것도 우리의 언어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까막눈 어르신들이 문해 수업을 받은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는 일이다. 글을 안다는 것이 이토록 뭉클하게 하는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토록 한으로 남았던 공부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오롯하게 만들어 준 '한글', 그러니 어르신들에게 알토란같은 열매를 안겨준 한글이야말로 위대한 문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