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知音), 다르지만 같다

2022.12.08 17:28:01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지음, 이 말은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백아가 어떤 마음으로 연주를 하는지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읽고 음을 알아보는 진정한 벗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진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백아와 종자기의이야기가 잘 말해 준다.

그럼에도 나는 요행히도 지음지교가 있다. 오래된 친구다. 일 년에 서너 번 만나 밥을 먹고 차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이다. 어떤 때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몇 년에 한 번씩은 둘이 여행도 가기도 한다. 사는 곳이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어 자주 만날 수도 없다.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우리 둘 모두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우리는 서로가 지음이라 여긴다.

그 친구를 만난 건 20년 전쯤 방송대학에서다. 둘 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 조금 늦은 나이지만 정말 즐겁게 공부를 했다. 문예창작을 공부한 그 친구는 좀 더 국문학을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인지 편입을 했고, 나는 국문학에 대한 꿈을 잊지 못해 시작한 공부였다. 우리는 대학을 마치고 몇 년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물론 사는 곳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다르니 대학도 과도 달랐다. 친구는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를 강의하는 일이 많기에 석사와 박사과정 모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나는 석사과정만 마쳤는데 현대소설 전공이었다. 우리 둘은 강의도 많지만 여전히 글도 열심히 쓰고 있다.

우리는 성향도 조금 다르다. 하지만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몇 년 전 친구와 곰섬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갔던 일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돌을 줍기로 했다. 서로 주운 돌을 보고는 한참을 웃었다. 친구 손에는 되알지게 여물어 보이는 다섯 알의 돌이 손안에서 뿌듯했다. 그에 반해 내가 주운 돌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큰 돌이었다. 거무죽죽한 돌은 거북의 형상을 했다. 거북이 등딱지처럼 갈라진 등과 머리, 뾰족한 꼬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렇다고 온전한 형상은 아니다. 비뚤어지고 모난 돌이었다. 자신이 주운 돌만 보아도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조용하면서도 꼼꼼한 친구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똑 부러지게 해내는 소유자다. 하지만 나는 덜렁대는 성격에 실수가 많고, 자기주장이 강해 예전에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살아온 시간이 거저는 아닌지 다행히도 지금은 유순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산다.

따뜻한 차를 마시는 중이다. 오늘은 한 달여 만에 만났다. 방금 전 청국장과 김치비지찌개를 먹고 난 후이다. '두 남자와 어머니 청국장'이라는 식당 이름에 끌려 간 집이었는데 벌써 두 번이나 찾은 집이다. 그리고 근처를 산책하다 알게 된 카페에서 우리는 또 서로의 마음을 읽는 중이다. 친구는 카페 주인이 만들었다는 따듯한 수제 레몬차를, 나는 언제나 그렇듯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런데 친구가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따뜻한 물 한 컵을 가져와서는 자신의 찻잔과 내 커피 잔에 부었다. 커피가 좀 진해 속이 거북했던 차였다. 어느새 내 마음을 읽었을까. 카페 창밖에는 겨울 된바람이 불고 있는 모양이다. 나무 옆에서 동사한 풀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번 이 카페를 들렀을 때만해도 풀들은 푸른 잎을 자랑했었다. 이별의 모습은 저리도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친구를 바라봤다. 그런데 나만이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은 아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친구의 눈빛과 얼굴에서도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렇게 몇 시간을 그곳에서 능놀다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 쓸쓸한 가을 은행나무 길을 한참이나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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