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생일이면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카페, 에클레시아', 음성 금왕의 백야리 호수를 앞에 두고 아늑하게 자리 잡은 카페다. 몇 년 전 백야 휴양림을 가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곳이다.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도 운치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싶어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알게 되는 일은 행운일 것이다. 그곳이 내게는 행운의 장소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호수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메뉴판에 식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예쁜 카페에서 좋은 사람들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 없던 정도 생길 것만 같았다.
내가 카페에서 주문하는 메뉴는 언제나 똑 같다. '아메리카노'. 다만 차가운 것인지 뜨거운 것이지만 달라진다. 아메리카노는 거짓이 없어 좋다. 커피에 우유를 섞은 라떼처럼 부드럽지도 않고 우유 거품으로 저 밑에 커피를 단단히 숨긴 카푸치노처럼 비밀스럽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 진한 갈색은 쓴 맛을 잘 보여 준다. 그렇다고 쓴맛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아메리카노의 첫맛은 쓰지만 목으로 넘어간 다음은 커피 향이 은은히 느껴져 기분까지 좋게 만든다. 아메리카노는 볶는 정도에 따라 신맛과 쓴맛, 구수한 맛이 있는데 나는 그 중 구수한 맛을 좋아한다. 그날은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라 그랬는지 선득한 느낌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두 손으로 감싸니, 바깥은 바람이 불고 제법 쌀쌀할 텐데도 창 너머의 풍경은 봄날인 냥 따뜻해 보였다.
에클레시아 카페를 다녀 온 몇 달 후였다. 지인의 생일날 나는 그녀를 태우고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나와 취향이 비슷하니 분명 행복해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인은 정말 예쁜 곳이라며 흡족해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점심도 먹도 차도 마시며 꽤 긴 시간을 머물렀다. 봄빛이 도는 백야 호수가 그날은 왠지 바다처럼 느껴졌다. 봄바람에 일렁이는 수면은 햇볕을 받아 물비늘을 이루며 반짝였다. 경치에 취해 사람에 취해 우리의 수다는 한없이 길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그날 서로의 심연에서 아낌없이 길어 올린 속정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저녁나절이 다 돼서야 우리는 그곳을 아쉬운 마음으로 나왔다. 바깥은 봄바람에 쌀쌀했다. 그때 카페 마당에서 벌레를 잡던 암탉이 우리를 보고는 뒤뚱뒤뚱 마당과 이어진 산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고 보니 카페 입구에 판매하는 달걀의 값이 비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양계장의 닭들과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니는 닭들은 분명 다르다. 행복의 수치, 모이의 질, 그러니 알도 값어치가 달라지는 것이겠지. 주차장 주변에는 주인장의 채마 밭도 보였다.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절로 주억이게 만들었다. 손님을 보면 벙긋벙긋 웃으며 반기는 모습 또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비결일 것이다.
가까운 거리도 아님에도 나는 소중한 사람과 가끔 이곳을 찾곤 하는데 그때마다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카페의 이름이었다. '에클레시아'는 무슨 뜻일까. 매번 물어 보아야지 하면서도 돌아오는 차안에서야 생각이 나곤 했다. 하여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에클레시아는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 시대의 민중회의인 아고라에서 유래했으며 "불러 모으다"라는 뜻의 '에칼레오(sκκαληω)'에서 유래했다.'
주인장의 생각과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맞다. 그러니 나도 잊을만하면 가깝지 않은 그곳으로 발길이 가는 것이리라. 주인의 혜안에 일순 감탄이 나왔다. 아름다운 백야리 호숫가, 작은 채마밭, 토종닭이 평화롭게 노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해맑은 주인장의 웃음은 '에클레시아'라는 이름과도 너무도 잘 어울리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