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빈대

2022.09.22 16:15:18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다시 여름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9월 중순도 넘어 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예년 같으면 지금쯤 쌀쌀한 기운에 밤이면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야만 한다. 하지만 며칠째 무더위로 잠을 잘 수가 없다.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가을바람은 금풍이라던데 바람은 습하고 시원한 맛도 없다. 몸과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힘들건 말건 땅위의 풀들은 왜 이리도 잘 먹고 잘사는지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마당이 푸르러 간다. 풀들의 생명력은 가히 놀랍기만 하다. 오늘도 아침 일찍 마당에 앉았다. 먼저 사람이 들고 나는 대문 앞부터 시작이다. 땅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흙먼지가 인다.

대문 부근에는 키가 작거나 땅위에 바짝 엎드린 풀들이 대부분이다. 줄기가 오동통한 쇠비름을 비롯해, 고들빼기, 괭이밥, 주름잎, 애기땅빈대 풀들이 주를 이룬다. 그 중 애기땅빈대 풀이 단연코 일등이다. 더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도 있다. 풀을 뽑아 한군데 모아 놓고 보니 문득 『야생초 편지』에서 보았던 글들이 떠올랐다. 풀을 뽑다말고 서재로 달려가 『야생초 편지』를 찾아 읽었다. 교도소 꽃밭에 난 잡풀들을 뜯어 끓는 물에 데쳐 된장에 무쳤다는 '들풀 모듬', 모듬 풀로 담근 '모듬풀 물김치', 가만 보니 지금 내가 뽑아 놓은 풀들 중에도 그 재료가 여럿 있었다.

뽑고 돌아서면 어느 결에 또 올라오는 것이 풀들의 생명력이다. 사람을 어지간히도 힘들게 한다고 투덜거리기만 했지 이것이 이렇게 맛도 있고 몸에도 좋다니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는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라고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야생초만큼 강인한 것도 없다. 그곳이 어디건 가리지 않는다. 사람이 들고나는 마당은 물론이요, 물 한 모금 닿을 수 없는 건물이나 보도블록 틈새에도 어김없이 자리를 잡는다. 게다가 죄를 지어야만 들어 갈 수 있는 교도소 마당에도 야생초는 기껍게 뿌리를 내린다. 오히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지 않던가. 모듬풀 김치를 담가 같은 방 수감자들 끼리 나눠 먹던 모습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금 씁쓰름했지만 시원한 게 오후의 더위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는 그 맛이 궁금하기는 하다.

내가 뽑아 놓은 풀들 중 땅빈대 풀을 찾아보았다. '흰 피를 뚝뚝 흘리며 울부짖는'이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과연 빈대풀을 자르니 흰 점액이 흘러나온다. 흰 점액이 흘러나오는 풀들은 약으로 쓰인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책에는 주로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만 있어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땅에 붙어서 퍼지는 잎 모양이 빈대를 닮아 붙여졌다는 땅빈대, 우리나라의 자생 식물인 땅빈대는 요즘 보기가 드물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주 띠는 땅빈대는 '애기땅빈대'로 원산지가 북미인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사람만이 다문화가 되는 것은 아난가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많은 야생초들 중에는 귀화식물이 많다고 한다.

길가나 슾지에 무리로 자라는 돼지풀, 계란꽃이라 부르며 어린 시절 소꿉장난 밥상에 단골로 오르던 개망초 꽃, 꽃으로 반지도 만들고 손목에도 예쁘게 매어 주며 서로의 우정을 간직했던 토끼풀의 추억, 밤이 되면 수줍은 듯 피어나는 키 큰 달맞이 꽃, 마을을 들어서는 길 양옆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던 코스모스, 언니들은 코스모스 옆에서 나란히 서서 멋진 나팔바지를 입고 사진을 찍곤 했다. 어디 그뿐일까. 봄이면 과수원 밭을 노랗게 물들이며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노란 민들레꽃도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들어 온 야생초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귀화 식물은 무려 110종류나 된다고 한다.

귀화 식물이라고 천대할 필요는 없지만 다시금 생명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을임에도 가을 같지 않은 날씨가 이런 식물들의 생육에 더 힘을 보태주는 듯도 하다. 그나저나 『야생초 편지』의 저자는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는 「땅빈대」 글 말미에 야생초는 고갈되어 가는 천연자원의 대체물이며 난치병을 위하고 대중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고 호소하며 글을 끝맺었다. 책이 출판된 지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뉴스에 '애기땅빈대' 등 국내 자생식물 추출물 활용한 청결제가 출시된다고 보도됐다.가만 보니 마당 여기저기 널린 게 애기땅빈대 풀이다. 애기땅빈대가 여러 가지 약재로 쓰인다고 하니 나도 애기땅빈대 풀만 따로 모아 보았다. 알면 약초요 모르면 잡초라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풀이라고 업신여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뿌리째 바짝 말려 차라도 우려먹어야겠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