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문이다

2024.08.08 14:29:37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얼마 전 '대통령 염장이'로 유명한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한 인터뷰가 가슴을 두드린다. '중용(中庸)'은 염장이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상주도 아닌데 울상을 짓고 있으면 안 되며, 표정이 너무 밝아도 어두워도 안 된다고 했다. 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굿바이'에서 이쿠에이 사장과 다이고의 모습이 그러했고, 우리 동네 염장이 아저씨가 그러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첼리스트였던 다이고가 염습사가 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주검을 대하는 일은 누구나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게다가 시신을 염습하는 일이란 그보다 더 고통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작 염습을 하는 그 자체보다 타인의 시선이 더 무섭고 두려워 다이고가 그리 도망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이쿠에이 사장이 납관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이고는 자신이 가야 할 길도 비로소 그곳에서 깨닫게 된다. 그만큼 진중하고 엄숙하게 그러면서도 예를 다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죽은 자를 치장하는 이쿠에이 사장의 모습은 거룩함 그 이상이었다.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내가 먼 기억 속 그를 소환한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모른다.

그가 염장이인 줄 안 것은 작은 오빠가 죽은 후였다. 같은 동리이긴 했지만 그는 개울을 건너가야 나오는 주주골에 살았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몸을 지닌 그는 언제나 벙글대는 인상이 좋은 동네 아저씨였다. 그러니 주검을 만지는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의 눈빛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동그란 얼굴에 겉눈썹이 짙었던 그는 눈빛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을 못 할 만큼 강렬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작은 오빠는 교통사고로 몇 번의 뇌수술을 마치고 고향인 중리로 내려왔다. 간질환이 후유증으로 남아 변변한 직장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을 나가신 후 외출을 하려 바지를 입다 간질 발작을 일으킨 오빠는 그날 혼자 그렇게 서른 살의 젊은 생을 쓸쓸히 마감했다. 교통사고를 당한지 6년만이었다. 늦은 저녁에 주검이 된 오빠를 발견한 아버지는 그날 밤, 염장이였던 그를 부른 것이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마루에 올라 설 때까지만 해도 싱그레 웃던 그가 방문을 열고부터는 표정이 굳어졌다. 엄숙하고 근엄한 모습은 마치 딴사람 같았다. 방으로 들어간 그는 오빠의 시신을 놓고, 아버지와 무슨 말이 오갔는지 나와 언니는 그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방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방문 창으로 염을 하는 모습은 언뜻언뜻 볼 수 있었다. 고요와 평온 속에서 그렇게 오빠는 염장이 아저씨의 배웅을 받으며 영원히 잠들었다.

영화 '굿바이'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짙은 회색이다. 죽음을 다루는 영화여서 그런지 배경 음악과 화면들이 무거우면서도 어둡다. 그럼에도 영화가 다 끝났음에도 그 앞에서 바로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감동 때문이었지 싶다. 목욕탕 여주인을 사랑했던 화장장 직원 쇼키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죽음은 문이다. 죽는다는 건 끝이 아니다. 죽음을 통과해야 다음세상으로 향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은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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