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지붕 뾰족 교회

2023.01.12 16:10:00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일요일 아침, 초록 지붕 교회 앞이 부산하다. 신년 행사라도 있는 것일까. 어떤 이는 혼자서, 또 어떤 이는 부부가 함께 아이를 안고 교회로 들어간다. 작은 교회다. 그런데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젊은 부부가 많다. 물론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다.

초록 지붕 교회는 밭을 사이에 두고 우리 집과 마주 보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옆집에 가려 뾰족 지붕만 보였다. 그런데 작년 여름, 옆집이 헐리자 그 집은 온전한 모습으로 온몸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다. 이곳은 작은 소도시임에도 정말 많은 종교시설이 있다. 우리 집과 마주하고 있는 집은 통일교회인데 정확한 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건물이 특이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이 이는 곳일 수도 있다. 거대한 초록색 지붕은 서로 맛 대어 외벽의 기능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조록 지붕 건물과 좌측으로 잇대어진 조립식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생 시절, 나도 교회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옆 동네의 작은 교회였다. 아마도 장로교회로 기억한다. 그곳은 크리스마스 때나 특별한 때만 친구들과 어울려 갔던 곳이라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중학생이 되고 동네 또래 몇 이서 다니던 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이 읍내에 있던 지금의 통일 교회였다. 우리 친정집은 읍내에서 30분을 걸어 나오는 거리에 있다. 그때는 딱히 교통수단이 좋은 때가 아니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던 때였다.

통일 교회는 1950년대 초 교주 문선명에 의해 창시된 신흥 종교다. 음성에 통일교회가 들어 선 것은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1970년 말이나 1980년 초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그 교회에 갔을 때만 해도 교인들도 많지 않았고, 교회 내부도 부족한 면이 많았다. 당시 음성 통일 교회는 젊은 목사 부부가 교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자녀도 없었다. 그때 통일 교회는 유독 학생들이 많았다. 건물도 예쁘고 목사님 부부도 정이 많았다. 무엇보다 중·고생들이 많다 보니 교회는 활기도 넘치고 생기가 돌았다. 나도 또래들과 노는 것이 좋아 방학 때는 거의 매일 교회에서 머무르곤 했다.

고등학교를 타지로 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통일교회는 발길이 끊어지게 되었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통일교회에서의 추억이 가슴 한구석에서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잠깐이었지만 사춘기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사람 '교회오빠'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키는 작았지만 눈매는 부드럽고 말과 행동은 나긋나긋해 모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음에도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통일교회는 교인끼리 대대적인 국제합동결혼식을 올리기로 유명하다. 음성에 있는 여성 일본인들을 보면 대개가 통일교 신자가 많다. 그녀들은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지난해 내가 강의했던 글쓰기 교실에 통일 교인이었던 일본인 여성이 있었다. 얼마나 옹골진 사람인지 시골의 초등학교 자모 회장까지 맡고 있다고 했다. 글을 풀어나가는 솜씨도 좋아 재미도 있고 감동까지 주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었다. 쉬는 날도 없이 일감을 찾아다니는 그녀는 부지런하고 성실함까지 갖추었다.

험난하고 불안한 세상, 나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를 찾아 의지를 한다. 사람 사이의 불신, 위태로운 하루하루, 종교는 그 모든 걸 지켜주기도, 이겨내게도 한다. 우리는 종교가 없더라도 무심결에 자신이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게 된다. 그만큼 기도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자 의지하고픈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드디어 기도 시간이 끝난 모양이다. 무엇이 저리도 행복할까. 초록지붕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웃음꽃이 활짝 폈다. 꽃 같은 얼굴로 어떤 이는 승합차에 또 어떤 이는 작은 승용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 지근거리는 아니기에 서로 나누는 인사말을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꽃들을 가득 실은 차의 꽁무니를 보니 그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을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의 온기로 세상을 살아가는 초록지붕 뾰족 교회 사람들이 오늘따라 더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4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