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꽃

2022.08.25 14:08:35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다알리아, 여름이면 친정집 앞을 화사하게 밝혀 주던 꽃이었다. 하지만 여간 키우기 힘든 꽃이 아니다. 부지런해야 키울 수 있는 꽃이다. 꽃이 지고 늦가을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뿌리를 캐어 비료 포대에 담아 건넌방 구석에 잘 모셔놓는다. 다알리아가 다시 세상을 나오는 건 따뜻한 봄이다. 엄마는 그렇게 다알리아를 심고 거두는 일을 매년 행사처럼 잊지 않고 챙겼다.

10여 년 전 5월의 어느 날 엄마는 읍내 막내 딸네를 다녀가시다 그만 도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뇌를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엄마는 살림은 물론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를 앓기 시작하셨고 요양원에서 생활을 하시게 되었다. 그해 여름 언니와 나는 엄마를 모시고 잠깐 친정집을 들르게 되었다. 분명 주인도 없는 집인데도 집 밖의 담장은 물론이고 마당에도 꽃들이 잔치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당의 터줏대감인 하얀 진달래는 탐스러웠을 꽃송이들을 땅에 떨구고 있었고, 집밖을 지키던 다알리아는 담장을 기대고 서서 단아한 얼굴로 엄마의 귀환을 환영하고 있었다.

엄마는 워낙 꽃을 좋아하는 분이셨다. 친정집 앞의 큰길가는 엄마가 심어 놓은 금잔화와 과꽃이 여름에서 가을까지 지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곤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당신이 심어 놓고 가꾸던 꽃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다. 그 후로 다알리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분명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더 이상 세상을 나오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 다음해 친정집 담장에서 다알리아는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2년여를 요양원에서 계시다 어머니는 이내 먼저 떠난 아버지 곁으로 가셨고, 하얀 진달래와 목단만이 읍내 우리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그때 까지도 나는 다알리아를 생각지도 못했다. 어느 해던가. 동네를 산책하다 다알리아가 탐스럽게 핀 집을 발견하곤 그 앞에서 한참을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왜 그때서야 생각이 났고 깨달았을까. 엄마꽃인데,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 후 봄만 되면 시장에 나와 있는 다알리아 화분이나 알뿌리 앞에서 서성이곤 한다. 막상 사지도 아닐 거면서 어떻게 키우는지, 꽃은 어떤 색인지, 겹인지 홑인지 세세히 묻고는 일어난다. 이제는 다알리아에 대한 정보는 알만큼 알았으면서도 몇 년째 구경만 할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신이 없다. 우리 집으로 옮겨 왔던 하얀 진달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얀 진달래는 엄마의 친정집 뒷산에서 캐다 심은 나무였다.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 친정집 마당이 봄이면 하얀 진달래가 불을 밝힌 듯 환했다. 그런데 우리 집으로 옮기고 그 다음에 냉해를 입은 건지 아니면 자리를 옮겨서인지 시름시름 앓더니 두 해 만에 고사하고 말았다. 다행히 목단은 지금도 봄이면 제일먼저 짙붉은 꽃으로 나를 위로해 준다.

화초를 키우는 일은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 화초 사이사이 풀도 뽑아 주어야하고 관심을 주어야한다. 내가 하얀 진달래를 애지중지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하얀 진달래는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죽고 말았다. 그 뒤 화초를 키우는 게 두려워 선뜻 화초를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 내가 선택한 것이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습관처럼 다알리아 꽃 앞에 서면 한참을 우두망찰하게 된다. 그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운 엄마가 언뜻 보이는 듯도 하고 그 꽃이 말을 걸어오는 듯도 한 착각이 일기 때문이다.

깊은 밤, 하늘엔 작은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인다. 엄마는 별이 되셨을까. 유난히도 자식을 사랑했던 분이었으니 저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별이 되고도 남을 일이다. 8월의 밤은 생명의 빛으로 그득하다. 작은 풀벌레들의 힘찬 목청은 결코 시끄럽지 않다. 움직임은 부산스럽다 하나 그 어디에도 소란스러운 데도 없다. 작은 생명들과 함께 여름밤은 시나브로 흘러간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장날이다. 이번 장에도 다알리아는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202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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