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 아래 첫 동네, 주봉리 내동

2023.07.27 17:00:59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탕건을 쓴 할아버지가 보여."

점쟁이는 나를 보고는 책을 읽듯 읊었다. 어찌 알았는지, 밭은 몸의 그녀는 그 뒤로도 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삼십 여 년 전, 시어머님을 따라 처음이자 끝으로 점집이라는 곳을 갔다. 시아버님의 병환이 깊어 어디에라도 속 시원한 답을 듣고 싶어서일 게다. 점쟁이는 과연 어머님이 원하는 답을 해 주셨지만, 아버님은 어머님의 원과는 다르게 몇 달 후 세상과의 끈을 놓으셨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원남면 주봉리가 고향이시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아버지는 글공부도 산꼭대기에 있던 절에서 스님에게 배우셨다고 했다. 소학교도 나오시지 않은 아버지가 제사 때면 한문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존경의 눈빛을 나누곤 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한문을 그리도 잘 아시는 데는 아마도 할아버지의 영향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할아버지는 근동 마을의 서당 훈장이셨다고 한다. 그러니 당신의 아들은 영험한 절집의 스님에게 수학을 맡기셨을 테다. 하지만 그리 부유한 살림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풍비박산이 나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곳저곳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은 어머니의 이름이 알려 준다. 어머니의 이름은 '최주봉'이다. 그런데 우리 자식들 그 누구도 어머니의 이름이 이상하다 생각지 않았다. 어느 해이던가. 나는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고향과 이름이 원래부터 같았냐고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은 '익남'이라고 했다. 한글을 모르셨던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이 그리 바뀐 지도 한참 후에야 아셨다고 했다. 짐작에 아버지가 혼인신고를 하면서 그리 바꾸지 않으셨을까 싶다. 아니면 면사무소 직원이 잘못 기재한 것을 아버지가 바꾸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 가셨으니 알 길이 없다.

아버지가 태어나신 주봉리 내동은 백마산이 품어주는 아늑한 동네다. 그곳에는 친정 부모님의 산소가 있다. 어린 시절 주봉리로 성묘를 갈 때면 아득해 하곤 했다. 그때는 보천까지만 버스가 운행을 했기 때문에 내동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큰길도 없었다. 작은 마을들을 중심으로 논과 밭이 많았다. 우리는 마을을 따라 흐르는 실개천을 끼고 걸었다. 오미와 서당골을 지나면 내동이 나오는데 그리 가깝지 않은 길이었는데도 우리 형제들은 투정을 하지 않았다. 산소에서 성묘를 하고 나면 아버지는 집안 어른들을 뵈러 언제나 내동 마을을 찾았다. 아버지가 엉세판에 힘들다가도 어깨가 올라가고 얼굴이 피는 것은 고향을 찾을 때였다. 그러니 자식들을 이끌고 내동 마을을 가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뿌듯함이었을지 요즘에서야 깨닫는다. 마음이 허우룩할 때면 가끔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주봉리 산소를 간다. 오매불망 그리워하시던 고향, 당신의 부모님이 누워 계시고, 백마산이 품어주는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술지락으로 살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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