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피는 꽃은 유독 경이롭다.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 온 꽃을 본 순간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며칠째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땅도 꽁꽁 얼었다. 그런데도 땅 속에서는 어느새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눈발이 하나 둘 날리는 날이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마당을 나섰다. 우연히 화단을 보게 되었는데 통통한 무엇이 땅속에서 올라와 있었다. 주변에 거뭇거뭇한 나뭇잎에 덮여 있어 구별이 쉽진 않았지만 허리를 숙이고 자세히 보니 복수초였다.
복수초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 올라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입을 꼭 오므린 채였다. 이리도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런데 꽃 이름이 왜 하필 '복수초'일까. 하여 복수초의 유래를 찾아보았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복수초는 복(福)과 장수(長壽)를 상징한다고 한다. 복수초는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이른 봄 산지에서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꽃이 핀다고 하여 '얼음새꽃', '눈새기꽃' 이라고 부르며, 중부지방에서는 '복풀'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꽃이 핀다고 하여 원일초(元日草)란 별호도 있다.
내가 '복수초'를 처음 심은 것은 아마도 10년 전 쯤 이었지 싶다. 어느 이른 봄날 논술 수업을 위해 방문을 한 집이 있었는데 정원 한 귀퉁이에서 옹기종기 노란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아직은 봄꽃들이 올라오기 전이라 신기해 꽃 이름을 물어 보았더니 아이의 할머니가 '복수초'라고 일러 주셨다. 며칠 후 꽃시장에서 '복수초'를 사다 심어 놓았는데 해마다 잊지 않고 피어나고 있다. 처음 사 올 때는 포토 꽃 세 포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제법 세를 늘려 화단 앞자리를 든든하게 차지하고 있다.
'복수초'는 언제나 제일 먼저 화단을 밝히고는 다른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날 때 사라져 버린다. 여름이 되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도록 언제 있었냐는 듯, 집 주인인 나도 까마득히 잊고 만다. 그렇게 잊혀 진 복수초는 다시 겨울을 지나 봄이 오기 전 '나, 여기 있었지.' 하며 머리를 내밀어 존재를 드러낸다. 조용하면서도 천천히 말이다.
며칠 전 올해도 잊지 않고 올라와 준 복수초가 하도 고맙고 애틋해 지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지인은 복수초를 보니 목성균 선생의 수필 '얼음새 꽃'이 생각난다며 글을 보여 주었다. 조령산 꼭대기에서 잔설이 녹지 않은 언 땅을 헤치고 청초하게 핀 노란 꽃 두 송이를 보고 선생은 미치갱이 박중사와 그의 아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선생이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화령을 수비하던 부대가 정전이 된 후 해체 되었는데 이북이 고향이었던 박중사는 읍내의 미친 여자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선생은 방학이 끝나가던 어느 날 추위를 피해 양지쪽 다랑논 논둑아래 노란 반회장 겹저고리를 입은 아내를 꼭 껴안은 박중사의 모습을 본다. 둘의 모습은 마치 한 쌍의 원숭이가 꼭 끌어안고 털 고르기를 하는 사랑의 진면목(眞面目)이었다. '미치광이 풋나물 캐 듯' 살았던 그들은 다음해 봄 아이를 낳다 난산으로 아내와 아이가 모두 죽자 박 중사마저 미쳐서 들녘을 헤매다 사라졌다고 한다. 선생은 노란 복수초 꽃 두 송이가 마치 애틋한 박중사와 미친 아내의 모습과 겹쳐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복수초 꽃은 작고 앙증맞은 노란색으로 피어난다. 꽃 아래는 깃털 같은 잎이 수북하게 받쳐 준다. 마치 튼튼한 박중사가 자신의 억센 팔로 노란 반회장 겹저고리를 입은 아내를 껴안듯이 말이다. 우리 화단의 복수초도 열흘 후쯤이 되면 노랗게 꽃이 피어나리라. 그러면 나도 그 꽃을 보며 미치광이 박중사와 그의 아내라 생각을 해 보련다. 몰랐다면 모를까. '얼음새 꽃'의 사연을 듣고 난 다음에야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