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룻밤

2024.09.12 15:16:23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에서 함께 잠들었던 것은 단 하루였다. 그것이 나를 딸로 알아보시던 마지막이었다. 전원주택이었던 그곳에는 대부분 치매환자와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분들이 지냈다. 여든 여섯이셨던 어머니는 그곳에서 어린 축에 들었다. 살림이 곤궁해도 이웃과 나누기도 좋아하고 이야기도 잘 하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독불장군이셨다. 당신의 눈에 차면 기어코 뺏어야 했다. 험한 말도 마다하지 않았다. 화려한 꽃무늬에 유독 집착하셨다. 누군가 꽃무늬 조끼나 양말을 입거나 신으면 당신 아들이 사 준거니 내 놓으라 악다구니를 퍼 부었다. 당연히 그곳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치매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요양원 원장님으로부터 모시지 못하겠으니 모셔가라는 문자도 여러 번이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요양원에서 계시던 어느 날이었다. 요양원으로 빨리 와 보라는 짧은 문자를 받았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이 철렁했다. 하루가 멀게 말썽을 부리는 분을 감당하는 것이 어디 쉬울까.

부랴부랴 요양원으로 갔던 날이 추석이 가깝던 이맘때였다. 요양원에 들어서니 어머니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며 팔이 온통 멍투성이였다. 지난밤 다른 분들의 꽃무늬 이불을 뺏느라 전쟁을 치른 흔적이었다. 침대에 누워 계신 분들은 뺏기지 않으려 온힘을 다해 버티셨지만 육신이 멀쩡한 어머니의 힘을 당할 재간은 없으셨다. 방 한 구석에 쌓아 놓은 이불을 보니 지난밤의 사태를 알만도 했다. 그런데 멍은 왜 드셨는지 의아해 하던 내게 원장님은 작은방을 턱으로 가리키셨다.

작은 방은 눈도 귀도 먼 할머니가 혼자 쓰셨다. 그 분은 거동이 불편한 치매환자였다. 젊은 시절, 바람 난 남편에 대한 한이 얼마나 깊었는지 왼 종일 남편과 시앗에 대한 악담반지거리를 해대시는 분이었다. 누가 오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으셨다. 낯 뜨거워 듣기도 불편한 성에대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뱉어냈다.

깜깜한 밤, 어머니는 침대 노인들의 이불을 모두 빼앗고 승리에 도취돼 작은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세상은 얼마나 두려울까. 하지만 그곳은 밝은 눈을 가진 어머니에게는 늪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어머니가 어찌되셨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잠든 그 할머니의 몸 어딘가를 밟으셨을 것이고, 그 뒤 그분의 손아귀에서 옴짝달싹 못하셨을 것이다. 그 분은 어머니의 두 손을 훔켜쥐고 시앗이 들어온 듯 두들겼고, 깨물었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어머니가 주무시는 침대가 여럿 놓여있는 큰방 바닥에 이불을 나란히 깔았다. 큰방과 잇대어 있는 작은방에서는 다른 날보다 더 험하고 큰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의 귀를 두 손으로 막아드렸다. 애기가 돼 버린 어머니, 딸과 함께 마주보고 누우니 행복하셨을까. 메마르고 깊은 주름들이 다글다글한 얼굴을 보듬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쓰다듬는 거친 손길에 눈을 뜨니 어머니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계셨다. 그 밤, 우리 모녀는 서로의 모습을 가슴에 꾹꾹 새기느라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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