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가 죽었다.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 오랜 세월 홀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외로움은 사람만 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죽은 구피가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우리 집 구피어항은 옹기로 된 수반이다. 내가 구피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년은 족히 되었지 싶다. 어느 해인가 막내 아이가 어린이날 행사장에서 구피 몇 마리를 얻어오면서 부터다. 구피들의 번식력은 왕성했다. 다른 집 구피는 새끼를 잡아먹기도 해서 번식이 쉽지 않다고 했는데 우리 집 구피들은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아마도 옹기 어항이 그 이유라고 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 오는 지인들은 부러워했다. 정말 조금 과장을 하자면 크지도 않은 어항 안은 고기 반 물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피를 키우기 시작하고 5년이 지나고부터 무료로 분양을 해주기 시작했다. 구피를 기르지 않던 사람도 우리 집 구피를 보고는 욕심을 냈다. 그때는 구피에 대한 인심이 정말 넉넉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그리도 분양을 많이 해 주었음에도 화수분인 듯 옹기 어항안의 녀석들은 언제나 복작복작 댔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이상했다. 구피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찾아와 구피가 죽었다며 울상을 지으면 선뜻 물속에서 건져 주었다. 급기야 작년에는 열 마리, 다섯 마리, 세 마리까지 줄고 말았다. 거기다 세 마리가 모두 수놈이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 한 마리만 남고 말았다. 어느 가을날, 나는 구피가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지만 혼자보다는 둘 셋이 나을 것 같아 암놈 두 마리를 구입해 어항에 넣어 주었다. 내 예상은 맞았다. 생기가 없던 수놈은 암놈에게 꼬리를 흔들며 따라 다니기 바빴다.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수놈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전 암놈 두 마리가 움직임이 둔하더니 죽고 말았다. 혼자 남았던 수놈도 무슨 이유였는지 이틀 뒤 바닥에서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만시지탄,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그동안 구피가 왜 죽어나가는지만 생각했지 어떻게 고쳐 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집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프면 나는 지체하지 않고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구피가 그렇게 죽어나가는 데도 나는 고쳐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병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다는 말이 옳다. 고려시대의 시인이자 철학가인 이규보의 '슬견설'이 나의 아둔함을 꼬집는 듯하다. 어느 날 작가의 집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길에서 어떤 사람이 몽둥이로 개를 죽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작가는 어떤 사람이 이를 잡아 이글거리는 화로에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더는 이를 잡지 않기로 했다고 화답을 했다. 손님은 육중한 짐승인 개와 미물인 이를 비교한 것에 화를 냈다. 이에 작가는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 소·말·돼지·양·벌레·개미에 이르기 까지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이 한결 같은데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냐고 설명을 해 주었다. 결국 작가는 '슬견설'을 통해 모든 생물들에게 생명의 값어치는 같으며 소중하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낑낑거리고 눈곱이 끼거나 밥을 먹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안아주고 안타까워하며 아파했다. 하지만 물속에 있는 구피들은 움직임이 둔해도 먹이를 잘 먹지 못해도 무심하게 지나쳤다. 나도 그동안 혹시 목숨의 크기를 잰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아둔함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을 잃게 했음에 참회한다. 이에 늦게나마 구피의 죽음을 슬퍼하며 간단하게나마 제문을 지어 애도하고자 한다.
'짧은 생 살아간 구피여, 이곳에서의 아픔과 외로움 모두 잊고 이제 극락에서 부모형제와 더불어 만복을 누리고 내세에는 구피계의 영걸로 태어나 강인하고 멋진 삶을 이어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