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는 미감이다

2023.06.29 15:41:13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집이다. 적당히 굵은 면발은 쫄깃하고, 국물도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다. 게다가 푸짐하게 나오는 바지락에 누구라도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가게 이름이 어찌 그리도 국수의 맛과 잘 어울리는지 참으로 용하다. 미감, 맛을 느끼다. 그러니 '미감 칼국수'는 맛을 느끼는 칼국수라는 뜻인데, 사실 그 집 칼국수는 맛을 느낄 새도 없다. 정신없이 먹다보면 어느새 바닥이 드러난다. 음성 사람이라면 '미감 칼국수' 집이 맛 집이라는 것은 다 안다. 시간을 잘못 맞춰 가기라도 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11시 30분쯤이나, 아니면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산한 1시 반쯤 가게 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칼국수의 진한 맛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미감 칼국수 집은 예전에는 음성군청과 지근거리에 있던 작은 식당이었다. 작은 식당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알음알음으로 용케도 잘 찾아 갔다. 그것은 아마도 맛이 사람들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나도 남편을 따라 그 작은 식당을 가 본 적이 있다. 비좁은 식당은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불편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를 차지했다는 안도감으로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사람들은 대접에 머리를 박고는 후루룩후루룩 국수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식장 주인은 그때도 젊은 나이는 아니셨다. 후덕진 몸처럼 마음도 넉넉하신 분이셨다. 음식의 재료는 바지락을 빼고 모두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라고 하셨다. 혼자서 요리도 하시고 음식을 나르기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성질 급한 사람은 숨이 넘어 갈 쯤 칼국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아는 사람만 그곳을 갔던 듯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시간을 다투는 직장인들에게는 그 집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감 칼국수' 집은 군청과는 거리가 조금 떨어진 시장통 중간쯤의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마도 넘치는 손님으로 노주인장도 결단을 내릴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게는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었다. 게다가 음식을 나르는 직원도 두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점심때면 가게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다. 사람들은 가게도 넓어졌고, 직원도 한사람 두었으니 음식이 빨리 나올 것이라는 예상에 찾아 들었을 것이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다른 식당과 비교한다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몰리고 한없이 기다리는데도 주방 안의 노주인장은 언제나 느긋했다. 힐끔힐끔 식당 좌석을 가끔씩 보고는 알았다는 표정을 짓기는 하셨지만 속도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쯤 되면 사람을 더 들일만도 하건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하긴 지금보다 더 좁은 작은 가게에서 할 때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셨으니 이만하면 양반이라 생각하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미감 칼국수 집의 메뉴는 오로지 '바지락 칼국수' 한가지다. 그러니 사람 수만 알려주면 되었다. 얼마 전이었다.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 친구 둘과 함께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물론 늦은 점심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간 시간을 택해 갔다. 음식을 기다리는 중에 옆 좌석으로 손님들이 자리를 잡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두 쌍의 부부들로 보였다. 농부들에게는 비오는 날이 쉬는 날이니 날궂이를 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한 여인은 이곳을 와 본 경험이 있었는지 국수 네 그릇을 주문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 여인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얼굴을 붉히며 자신은 국수는 시키지 말고 술과 안주를 시키라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아내와 옥신각신 하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방 안에서 노주인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는 술 없어유! 술 마실 거면 다른 데로 가유!"

그 소리에 기가 죽었는지 남편은 아무소리도 못하고 죄 없는 아내 얼굴만 흘겼다. 잠시 후 우리 상으로 국수가 나오고 한참을 더 기다린 끝에 농부들의 상에도 국수가 나왔다. 우리는 네 사람이 정신없이 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며 가게를 나왔다. 그날 농부들은 아마도 먹지 못한 술로 조금은 마음이 흡족하진 못했을지라도 맛있는 국수를 먹었으니 사이좋게 돌아갔으리라.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감 칼국수'집이 오래오래 음성 사람들 곁에 있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어쩌면 부질없는 내 욕심일까. 요즘 들려오는 '미감 칼국수'에 대한 소식이 그저 풍문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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