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들의 숙명적 비극

2009.05.25 18:31:28

오늘의 비극을 누가 책임질까. 지난 주말 아침 구전으로 처음 전해들은 뉴스 속보는 충격이었다. '에이 그럴 리가…··를 반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충북 청주에선 이날 한국기자협회 충북지부 체육대회가 열렸다. 하늘은 온통 찌푸렸다. 결국 비가 추적거렸다.

***문제점 되돌아보는 자세 중요

비극(悲劇)은 본래 희극(喜劇)과 함께 연극의 한 갈래다. 영웅적 인물이 직면한 비통한 사건을 진지하고 엄숙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극 형식이다. 인생의 슬픔과 비참함을 제재로 한다. 주인공의 파멸, 패배, 죽음 따위의 불행한 결말이 필연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격적인 비보다. 죽음을 결행한 극단의 선택은 마음 어디에서 왔을까. 온 국민이 갖는 궁금증이다.

검찰 소환을 받은 데서 오는 낭패와 수치, 모멸감 때문일까. 아니면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인가. 도덕성은 그의 평생 자존심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목숨을 버리는 극단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나. 알 길이 없다.

현 정권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책임감 때문인가. 그의 절망적 고뇌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게 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젠 우리와 어울릴 수 없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실체적 진실을 알기가 어렵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개월간 수뢰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 왔다. 정치적 동지와 측근, 가족까지 연루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검찰의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이 같은 상황은 노 전 대통령이 막다른 선택을 한 이유 추정의 근거를 만들어주고 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유서의 제목 역시 그런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여전히 추론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최고 권력의 비극을 자주 목도하기 시작했다. 비극의 대상은 죽은 권력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권력을 잘못 행사한 결과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정치의 비극적 실상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이후만 보자. 두 전직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수감생활도 했다.

다른 두 대통령은 아들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는 곤욕을 치렀다. 노 전 대통령은 죽음으로 비극의 결말을 맺었다. 이 나라 현대사에 뼈아픈 일을 하나 더 추가한 셈이다.

이쯤에서 들여다보자. 우리의 대통령 문화가 괜찮은 것인가. 정치·사회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노 전 대통령의 돌연한 죽음은 적잖은 사회적 논란과 파장을 부를 수 있다.

벌써 일각에선 현 정권의 과잉 수사 결과라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사필귀정이라는 매몰찬 반론도 있다. 한 마디로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그렇다.

정치권은 총체적 점검을 서둘러야 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 역시 진지한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물론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자세는 아주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파장은 민심의 흐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문화 바꿀 자성운동 필요

비리 있는 곳에 검찰권이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누구라도 죄가 있다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 뒤 죄가 확인되면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리고 법치다. 다만 이번 검찰권 행사 과정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사 진행 중 비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예외 없이 오명을 썼다. 권력비리 등이 주된 이유다. 그래서 비리·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언제나 과제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다. 하지만 늘 과제로 끝났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어쩌면 비극을 숙명처럼 몸에 달고 사는 지도 모른다. 정치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자성운동이 필요하다. 슬픈 5월의 끝자락이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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