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충북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과 이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박걸순 충북대학교 교수는 26일 충북예술인회관 1층에서 열린 '2019 충북문화예술포럼 정기포럼'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이날 포럼은 '3·1운동 100주년 여성독립운동가와 시대 속 여성문화예술'을 주제로 개회식과 축사, 공연, 주제발표,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박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본적이나 출신을 논의할 때 여성으로서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며 "태생적 본적도 있으나 결혼으로 인해 남편의 본적으로 입적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양쪽 모두 출신으로 인정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근대사에서 여성을 당당한 역사의 일원이자 객체적 존재로 독립시켜 학술적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나혜석과 그의 시대-자유와 꿈을 향한 여성들의 투쟁'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한 관장은 "3·1운동은 조선 사회에서 천치로 취급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의심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준 사건이었다"며 "유학생이자 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나혜석의 3·1운동 참여는 좀 더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에는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원장을 좌장으로 한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는 김건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과 유영선 충북여성정책포럼 고문, 김윤섭 미술가 등이 참여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의 필요성과 출신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건실 연구원은 "현재까지 독립운동으로 포상된 유공자 1만5천511명 중 여성은 433명으로 약 2.2%를 차지한다"며 "전반적인 독립운동 서훈 기준이 완화되면서 묻혀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새롭게 조명되고 뒤늦게나마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추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여성의 본적지(출생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혼란스럽다"며 "인물의 출신지를 규정하는 것은 지역 선양사업의 기준이 되므로 깊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 유소라기자
[충북일보=증평] 증평군 도안면에 3.1운동 독립만세 발원지 기념비가 건립된다. 증평군에 따르면 1919년 4월 10일, 증평군 도안면 광덕리 구계마을에서 오후 5시경부터 약 300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 당황한 일제 경찰은 총검으로 무력 진압을 감행해 1명이 순국했다. 증평군은 국비로 확보한 4천200만 원과 군비 2천100만 원 등 모두 6천300 만원으로 당시 만세운동이 벌어진 도안면 광덕리에 오는 9월 기념비를 건립키로 했다. 군은 이번 기념비 건립 사업을 통해 우리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진 독립열사들에 대해 재조명키로 했다. 기념비 건립 예정지인 도안면 광덕리는 도안면 석곡리의 연병호 생가, 연병호항일역사공원과 인접해 있어 이와 연계한 나라사랑 함양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기념비 건립을 통해 지역주민 모두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도안면 광덕리가 애국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증평 / 김병학기자
[충북일보=진천] 진천군 광혜원면이 내달 3일 광혜원면 화랑공원 광장에서 4.3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갖는다.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00년 전 광혜원면에서 있었던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고 독립운동 정신 계승과 면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갖는다. 이번 재현행사는 광혜원면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비롯한 기관단체 회원, 학생, 지역주민들이 참여한다. 오전 10시 광혜원면 화랑공원 광장에서는 광혜원화랑풍물단의 독립 북소리로 식전공연이 시작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가 공적비 앞에서 참배의 시간을 갖는다. 이후 독립선언문 낭독, 유공자 후손 표창 수여, 삼일절 노래 제창과 만세 삼창 순으로 기념식이 진행된다. 기념식 후에는 참가자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광혜원면 시가지를 행진하면서 100년 전 그날의 벅찬 감동을 재현할 예정이다. 진천 / 김병학기자
[충북일보=증평] 독립운동가 연병호(延秉昊) 생가는 증평군 도안면에 석곡리에 있다. 지난 2002년 1월 11일 충북도 기념물 122호로 지정된 연병호 생가는 1910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초가집으로 건립됐다. 그후 지붕 등이 변형됐다가 지난 1986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1996년과 1998년 생가보수사업으로 영당과 삼문이 건립됐다. 연병호는 청안 중명학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고 맏형인 연병환이 1910년 경술국치에 통분해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이 계기가 돼 함께 망명했다.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귀국해 해방을 협의하고 같은 해 12월 29일 비밀조직인 청년외교단이 적발돼 대구감옥에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1년 7월 출감 후 재차 망명해 이름을 병준에서 병호로 개명하고 독립혁명당을 조직후 1937년 1월 7일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약 중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해방을 맞아 국내에서 임시정부 환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해 영접부장으로 활동을 했고 1946년 7월 한독당 창당을 발기해 중앙위원 겸 훈련부장, 애국선열 사적조사위원장을 지냈다. 1948년 5월 10일 초대 국회의원선거에 괴산에서 입후보해 당선돼 제헌국회의원을 지냈고 1950년 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재선의원이 됐다. 1963년 1월 26일 70세의 일기로 타계해 사회장으로 장례 후 도안면 석곡리 선영에 안장됐다. 이후 1976년 10월 국립묘지 이범석묘 옆에 이장됐다. 현재는 증평에 생가와 함께 기념관이 건립돼 선생의 일대를 엿볼 수 있다. 증평 / 김병학기자 12.17_연병호_선생_사진_2 - 연병호 사진. IMG_0020 - 연병호 생가와 기념관이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에 조성돼 있다. 사진 / 김병학기자 IMG_0022 - 증평군 석곡리에 복원된 독립운동가 연병호 생가. / 김병학기자 IMG_0026 - 증평읍 석곡리에 조성된 연병호 기념관의 동상과 고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형물. / 김병학기자 3.1운동 유적지 탐방 - 증평 연병호 생가 1910년 경술국치에 중국에 독립운동 초대 국회의원 지내 독립운동가 연병호(延秉昊) 생가는 증평군 도안면에 석곡리에 있다. 지난 2002년 1월 11일 충북도 기념물 122호로 지정된 연병호 생가는 1910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초가집으로 건립됐다. 그후 지붕 등이 변형됐다가 지난 1986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1996년과 1998년 생가보수사업으로 영당과 삼문이 건립됐다. 연병호는 청안 중명학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고 맏형인 연병환이 1910년 경술국치에 통분해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이 계기가 돼 함께 망명했다.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귀국해 해방을 협의하고 같은 해 12월 29일 비밀조직인 청년외교단이 적발돼 대구감옥에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1년 7월 출감 후 재차 망명해 이름을 병준에서 병호로 개명하고 독립혁명당을 조직후 1937년 1월 7일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약 중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해방을 맞아 국내에서 임시정부 환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해 영접부장으로 활동을 했고 1946년 7월 한독당 창당을 발기해 중앙위원 겸 훈련부장, 애국선열 사적조사위원장을 지냈다. 1948년 5월 10일 초대 국회의원선거에 괴산에서 입후보해 당선돼 제헌국회의원을 지냈고 1950년 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재선의원이 됐다. 1963년 1월 26일 70세의 일기로 타계해 사회장으로 장례 후 도안면 석곡리 선영에 안장됐다. 이후 1976년 10월 국립묘지 이범석묘 옆에 이장됐다. 현재는 증평에 생가와 함께 기념관이 건립돼 선생의 일대를 엿볼 수 있다. 증평 / 김병학기자
[충북일보=청주] 청주시 옥산면 덕촌리에 독립운동가 마을이 조성된다. 시는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기념사업 공모에 당선됐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은 지역주민·시민단체가 직접 지역을 독립운동가 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청주에선 북간도와 연해주를 독립운동기지로 개척한 선구적 인물인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의 고향인 옥산면 덕촌리 마을이 선정됐다. 시는 국비 1억1천600만 원을 들여 정순만 선생 기념관과 만세운동광장을 조성하고, 마을을 둘러싼 응봉산에 애국의 길과 횃불 봉수대를 설치한다. 옥산면 덕촌리는 2016년 정순만 선생이 설립한 '덕신학교'가 복원돼 운영되고 있다. 덕신학교와 연계한 전통문화체험 교육장으로 육성될 예정이다. / 박재원기자
[충북일보] 충북의 독립운동 정신을 현장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념사업 추진된다. 청주에는 독립운동 마을이 조성되고 옥천에는 청산 3·1 독립 만세 공원이 들어선다. 증평에는 독립만세 발원지 기념비가 건립된다. 행정안전부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이들 사업을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공모사업'으로 선정하고 특별교부세를 지원한다. 충북도에 따르면 이번 공모사업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역특색에 맞는 독립운동가 마을을 조성해 지역주민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마련됐다. 청주 덕촌리 독립운동 마을 조성사업은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의 독립협회 활동과 국권회복운동 활동 기록을 전시하는 기념관 건립 사업이다. 옥천 청산 3·1독립 만세 공원 건립사업에는 독립운동가 흉상제작 및 태극기 변천사 전시 등이 추진되며 증평 독립만세 발원지 기념비는 증평 광덕리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추진된다. 이들 사업에는 특별교부세 2억5천800만 원, 시·군비 2억3천만 원 등 총 4억8천800만 원이 투입된다. 도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별 진행상황을 수시 점검하고, 기념사업 추진단과 공동으로 반기별 1회 이상 사업장을 점검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독립운동으로 희생하신 선열의 얼을 기리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호국정신을 계승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안순자기자
[충북일보=괴산] 괴산군이 '괴산장터 3.19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19일 괴산읍 홍범식 고택 일원에서 대규모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일제 강점기에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충북 최초로 시작된 역사적인 '괴산장터 3.19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100년 전 바로 그날에 맞춰 열린 이날 행사는 괴산만세운동 100주년 학술토론회를 시작으로 기념식, 시가행진을 통한 만세운동 재현, 다양한 부대(체험)행사 등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은 3.19 만세운동 경과보고, 독립선언문 낭독, 감사패 수여, 군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만세삼창, 독립만세 대합창 순으로 이어졌다. 감사패는 경술국치 전후의 괴산항일투쟁사를 발간, 괴산군민의 바른 역사관 정립에 크게 기여한 김근수 괴산군 향토문화연구회 회장과 괴산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 후손 김교학 씨 등 5명에게 전달됐다. 이차영 괴산군수는 "괴산장터 3.19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괴산만세운동의 정신과 가치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그 기백과 자긍심으로 군민 모두가 하나로 뭉쳐 새로운 100년을 향해 전진하자"고 말했다. 기념식 후에는 학생, 주민, 보훈가족, 각급 기관·단체 회원 등 2천여 명의 괴산군민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홍범식 고택을 출발해 괴산 옛 장터를 거쳐 괴산문화예술회관에 이르기까지 1.4㎞ 거리를 행진하며 그날의 함성과 감동을 재현했다. 괴산 / 김윤수기자
[충북일보] 100년 전 괴산 인구의 10~15%가 3·1운동에 동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오대록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19일 괴산문화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괴산지역 삼일운동의 전개와 의의'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 기념해 열린 것으로 오 연구원은 "특히 20~30대 중심의 농민과 학생이 주도한 역동적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세기 등 괴산 지역의 만세 운동 참여자는 1920년대 민족운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김근수 중원대 향토문화연구소장의 '충북 최초 괴산 항일 만세운동'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괴산군 지역의 3·1운동을 비롯한 항일투쟁 관련 사적의 현황을 정리하고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김 소장은 "괴산 지역의 독립운동 정신은 동학농민혁명, 의병운동, 3·1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술대회는 앞으로 청주(22일),옥천(25일), 영동(27일), 충주(4월 1일), 음성(4월 2일), 보은(4월 8일), 진천(4월 9일),단양(4월 16일), 제천(4월 17일)를 순회하며 이어진다. 학술대회는 충북 3·1운동 전문연구자, 시군 향토사 연구자 등의 지역 3·1운동 전개양상에 대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된다. 도 관계자는 "앞으로 진행되는 학술대회는 충북 3·1운동 전문연구자, 시군 향토사 연구자 등의 지역 3·1운동 전개양상에 대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관심을 당부했다. / 안순자기자
[충북일보] 충북지역 독립운동 유적을 발굴·보존하고 3·1운동 기념사업 지원 근거를 담은 조례가 잇따라 제정됐다. 충북도의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상식(청주 7)·송미애(비례)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충청북도 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 '충청북도 독립운동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안'를 371회 임시회에서 의결했다고 18일 밝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제정된 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는 일제강점기 우리 도에서 펼쳐진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는 기념사업 지원 조례다. 조례에는 △독립운동의 이념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도지사의 책무 △독립운동의 보전과 계승을 위한 기념사업의 추진 △비영리 법인·단체 등에 사업 위탁을 통한 기념사업의 효율적 운영 △기념사업 시행을 위한 예산의 범위 내 보조금 지원 규정이 담겨있다. 이 의원은 "조국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순국선열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기고 조상들의 숭고한 행동을 계승함은 물론, 이러한 독립운동 정신을 후손들에게 이어주고자 이번 조례를 제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는 도내 독립운동 유적에 대한 발굴 및 조사, 보존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조례안에는 △독립운동 유적 발굴·보존을 위한 자문위원회 설치와 유적의 보존·관리 △도지사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에 대한 근거를 담고 있다. 도내 독립운동 유공자는 512명으로 전국의 3% 정도이고 독립운동사적지와 현충시설은 183곳으로 전국의 8%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의원은 "조례 제정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 강화는 물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자긍심을 갖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안순자기자
[충북일보] 유관순열사기념관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에 위치해 있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봉화대에서 봉화와 횃불을 밝혔던 매봉산 북쪽 아래 부근이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열사가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열사는 국현숙, 김희자, 김복순, 서명학 등의 학생들과 결사대를 조직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열사는 3월 5일 학생단 만세시위운동에도 참여했다. 이후 조선총독부의 휴교령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열사는 3월 13일 사촌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열사는 아버지 유중권을 비롯해 조인원, 김구응 등 20여명의 동네 유지들과 각 면·촌에 연락기관을 두고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했다. '아우내독립만세운동'으로 이름 붙여진 대규모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이다. 3월 31일 열사는 용두리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으며 주변 24개 지역에서도 일제히 봉화를 올려 호응했다. 4월 1일 조인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유관순을 필두로 한 3천여명의 군중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병천 주둔 일본 헌병들과 지원군이 일제히 사격을 가해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해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열사는 시위현장에서 부모를 잃고 체포돼 공주지방법원을 거쳐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열사는 서대문감옥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수감 중 일본 헌병들의 가혹한 폭행과 고문에 못이긴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순국했다. 정부는 열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으나 후에 망실됐다.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989년 10월 12일 초혼묘를 봉안했으며, 매년 9월 28일 열사의 순국을 기념하는 추모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에게 최고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추가 서훈은 열사의 서훈등급 상향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등 열사의 공적을 평가할 때 훈격이 너무 낮다는 지적에 따라 이뤄졌다. / 유소라기자 KakaoTalk_20190317_095736163 - 유관순 열사 초혼묘봉안기념비. / 유소라기자 KakaoTalk_20190317_095800509 - 유관순열사기념관 전경. / 유소라기자 KakaoTalk_20190317_095805767 - 유관순열사기념관 내부 전경. / 유소라기자 KakaoTalk_20190317_095949101 - 유관순열사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독립만세운동 재현 모형. / 유소라기자 KakaoTalk_20190317_095958426 -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서울 서대문감옥의 고문실인 벽관을 재현한 체험공간. / 유소라기자 KakaoTalk_20190317_111525938 - 기념관 외부에 유관순 열사의 서훈 1등급 추서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유소라기자 KakaoTalk_20190317_111628155 - 유관순 열사의 만세운동을 재현한 기념 동상. / 유소라기자 유관순열사기념관 유관순열사기념관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에 위치해 있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봉화대에서 봉화와 횃불을 밝혔던 매봉산 북쪽 아래 부근이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열사가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열사는 국현숙, 김희자, 김복순, 서명학 등의 학생들과 결사대를 조직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열사는 3월 5일 학생단 만세시위운동에도 참여했다. 이후 조선총독부의 휴교령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열사는 3월 13일 사촌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열사는 아버지 유중권을 비롯해 조인원, 김구응 등 20여명의 동네 유지들과 각 면·촌에 연락기관을 두고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했다. '아우내독립만세운동'으로 이름 붙여진 대규모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이다. 3월 31일 열사는 용두리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으며 주변 24개 지역에서도 일제히 봉화를 올려 호응했다. 4월 1일 조인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유관순을 필두로 한 3천여명의 군중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병천 주둔 일본 헌병들과 지원군이 일제히 사격을 가해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해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열사는 시위현장에서 부모를 잃고 체포돼 공주지방법원을 거쳐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열사는 서대문감옥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수감 중 일본 헌병들의 가혹한 폭행과 고문에 못이긴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순국했다. 정부는 열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으나 후에 망실됐다.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989년 10월 12일 초혼묘를 봉안했으며, 매년 9월 28일 열사의 순국을 기념하는 추모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에게 최고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추가 서훈은 열사의 서훈등급 상향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등 열사의 공적을 평가할 때 훈격이 너무 낮다는 지적에 따라 이뤄졌다. / 유소라기자
[충북일보=제천]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가 지난 16일 오전 11시 박달재 정상에서 86주년을 맞이하는 육삼정 의거 기념식 행사를 가졌다. 육삼정 의거는 1933년 3월 17일 중국 상해의 고급식당 '육삼정'에서 연회를 진행하려던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유길명)을 폭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윤봉길, 이봉창 의거와 함께 일제강점기의 해외 3대 의거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일본은 이 연회를 통해 중국 국민당 정부에게 거액의 뇌물로 주고 만주 일대의 독립군 근거지를 장악하려는 거래를 시도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독립의열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흑색공포단)은 일본공사를 폭살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지만 밀정에 의해 거사가 발각돼 실패했다. 육삼정 의거는 실패로 끝난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중국 국민당 정부와 일본과 밀약이 있었음이 드러나 중국에 엄청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민당 정부가 무너지는 계기가 됐고 중국내 항일연대전선을 형성하는 등 한국과 중국의 항일투쟁사에 빛나는 사건이었다. 이 육삼정 의거는 우당 이회영, 백야 김좌진 등 27명이 거사를 지원했고 직접적으로 가담했던 사람은 12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중 충북 출신 분들은 세 명으로 제천 이용준, 충주 류자명, 진천 박기성 선생이 주인공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는 전국 애국지사 후손들을 모시고 충북 출신의 이 세 명을 기리는 행사를 거사일인 3월 17일을 기점으로 이용준 선생의 추모비가 있는 박달재 정상에서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86주년을 맞는 육삼정 의거 기념식은 애국지사 후손 및 광복단체, 제천시 등 200명이 참석했으며 기념식 외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의 강연도 이어졌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리학효 지회장은 "3.1 만세항쟁과 임정 100주년을 맞는 올해에 열리는 매우 뜻깊은 행사"라며 육삼정 의거에 대한 지자체와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제천 / 이형수기자 이용준 애국지사 - 이용준 선생에 대한 일제의 기록.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이용준 애국지사1 - 이용준 선생에 대한 일제의 기록.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이용준 애국지사2 - 이용준 선생의 딸인 이국재씨에게 입수한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국내 귀국환영 사열식으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오른쪽 맨 앞에 선 분이 이용준 선생.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완전한 독립을 꿈꾸다" 제86주년 육삼정 의거 기념식 열려 이용준 애국지사 추모비 있는 박달재 정상에서 사진 이용준 선생에 대한 일제의 기록.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이용준 선생의 딸인 이국재씨에게 입수한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국내 귀국환영 사열식으로 추정되는 사진. 오른쪽 맨 앞에 선 분이 이용준 선생.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가 지난 16일 오전 11시 박달재 정상에서 86주년을 맞이하는 육삼정 의거 기념식 행사를 가졌다. 육삼정 의거는 1933년 3월 17일 중국 상해의 고급식당 '육삼정'에서 연회를 진행하려던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유길명)을 폭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윤봉길, 이봉창 의거와 함께 일제강점기의 해외 3대 의거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일본은 이 연회를 통해 중국 국민당 정부에게 거액의 뇌물로 주고 만주 일대의 독립군 근거지를 장악하려는 거래를 시도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독립의열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흑색공포단)은 일본공사를 폭살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지만 밀정에 의해 거사가 발각돼 실패했다. 육삼정 의거는 실패로 끝난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중국 국민당 정부와 일본과 밀약이 있었음이 드러나 중국에 엄청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민당 정부가 무너지는 계기가 됐고 중국내 항일연대전선을 형성하는 등 한국과 중국의 항일투쟁사에 빛나는 사건이었다. 이 육삼정 의거는 우당 이회영, 백야 김좌진 등 27명이 거사를 지원했고 직접적으로 가담했던 사람은 12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중 충북 출신 분들은 세 명으로 제천 이용준, 충주 류자명, 진천 박기성 선생이 주인공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는 전국 애국지사 후손들을 모시고 충북 출신의 이 세 명을 기리는 행사를 거사일인 3월 17일을 기점으로 이용준 선생의 추모비가 있는 박달재 정상에서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86주년을 맞는 육삼정 의거 기념식은 애국지사 후손 및 광복단체, 제천시 등 200명이 참석했으며 기념식 외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의 강연도 이어졌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리학효 지회장은 "3.1 만세항쟁과 임정 100주년을 맞는 올해에 열리는 매우 뜻깊은 행사"라며 육삼정 의거에 대한 지자체와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제천 / 이형수기자
[충북일보] 정관(井觀) 김복진(金復鎭·1901~1940) 선생. 낯선 이름이다. 충북 출신 독립유공자이지만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독립활동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고, 그에 대한 연구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독립활동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는 점이다. 김복진 선생에 대한 미흡한 정보는 '출생지'조차 혼선을 빚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온라인 학술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의 출생지는 청주시와 영동군, 두 곳이다. 인물정보 자료에는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 출생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에 수록된 독립유공자 정보 '본적(本籍)'에는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로 기록됐다. 공적정보 첫 줄에는 '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고 적혀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신분장지문원을 확인한 결과 본적지는 영동이 맞고, 출생지는 '충북 청주군 남강면 팔봉리'로 돼 있다"고 밝혔다. 신분장지문원은 국가보훈처 등에서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공적심사 과정에서 참고하는 일제 강점기 당시의 약식 수형기록이다. 본적과 출생지와 다른 것은 부친의 본적을 따라 기록하는 관례상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료를 찾아보는 일반인은 혼란스러울수밖에 없다. 본적과 출생지를 구분해 기록할 필요가 있다. 김복진 선생은 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목적에서 1927년 이성태(李星泰)의 권유로 고려청년회(高麗靑年會)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성태는 제주도 출신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이광수가 주관하던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고려청년회는 '화양(華陽)청년회'라고도 불린다. 1920년대 경북 청조 지역에서 청년운동과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청년운동 단체다. 주요 활동사항은 일본상품 불매 운동과 근검절약 계몽이다. 이를 위해 도주소비조합(道州消費組合)을 조직했다. 김복진 선생은 고려청년회 활동 중 일경에 피체됐다. 그 후 1930년 11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 6월을 받아, 미결기간을 포함해 6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김복진 선생은 독립유공자보다는 조각가로서 세간에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조각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는 도산 안창호(安昌浩)가 서거하자 제자 이국전(李國銓)에게 도산의 안면상을 뜨게 했다. 이로 인해 일경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1939년 독립에 대한 염원을 살려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보은 법주사의 금동미륵대불 제작에 착수했다. 시멘트를 사용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았지만, 자금난으로 중단됐다. 이후 그의 제자 윤효중이 1963년 완성시켰고 1990년 금동불로 다시 만들어졌다. 김복진 선생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그의 친동생인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1903~1985)이다. 김기진은 일제 강점기 조선문인부국회 상무이사 등 강력한 친일문예조직의 중추적 인사로 활동했다. 김기진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과 친일의 길, 양갈래로 나뉜 비통한 형제상이다. 김복진 선생은 마흔의 나이로 병사했다. 묘소는 고향마을인 팔봉리와 구암리에 걸쳐 놓인 팔봉산 자락(구암리 산15-4)에 위치했다. / 성홍규기자 KakaoTalk_20190311_111019048 - 청주 서원구 남이면 팔봉산 자락에 자리한 김복진 선생의 묘소. 김복진 선생의 초상이 새겨진 비석에 선생의 좌우명인 '사람은 역사 속에 살아야 한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글.사진=성홍규기자 KakaoTalk_20190311_111021546 - 청주 서원구 남이면 팔봉산 자락에 자리한 김복진 선생의 묘소. 김복진 선생의 초상이 새겨진 비석에 선생의 좌우명인 '사람은 역사 속에 살아야 한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글.사진=성홍규기자 KakaoTalk_20190311_111031629 - 청주 서원구 남이면 팔봉산 자락에 자리한 김복진 선생의 묘소에서 내려다 본 전경. 글.사진=성홍규기자 KakaoTalk_20190311_111030424 - 청주 서원구 남이면 팔봉산 자락에 자리한 김복진 선생의 묘소(붉은 원). 일반인이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다. 글.사진=성홍규기자 (사진) 잊혀진 독립운동가 정관 김복진 -청주 남이면 출신… 출생지 조차 '혼선' -고려청년회 활동 옥고·안창호 안면상 제작으로 연행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선구적 조각가' 족적도… '친일문학가' 김기진과 형제 정관(井觀) 김복진(金復鎭·1901~1940) 선생. 낯선 이름이다. 충북 출신 독립유공자이지만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독립활동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고, 그에 대한 연구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독립활동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는 점이다. 김복진 선생에 대한 미흡한 정보는 '출생지'조차 혼선을 빚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온라인 학술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의 출생지는 청주시와 영동군, 두 곳이다. 인물정보 자료에는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 출생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에 수록된 독립유공자 정보 '본적(本籍)'에는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로 기록됐다. 공적정보 첫 줄에는 '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고 적혀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신분장지문원을 확인한 결과 본적지는 영동이 맞고, 출생지는 '충북 청주군 남강면 팔봉리'로 돼 있다"고 밝혔다. 신분장지문원은 국가보훈처 등에서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공적심사 과정에서 참고하는 일제 강점기 당시의 약식 수형기록이다. 본적과 출생지와 다른 것은 부친의 본적을 따라 기록하는 관례상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료를 찾아보는 일반인은 혼란스러울수밖에 없다. 본적과 출생지를 구분해 기록할 필요가 있다. 김복진 선생은 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목적에서 1927년 이성태(李星泰)의 권유로 고려청년회(高麗靑年會)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성태는 제주도 출신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이광수가 주관하던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고려청년회는 '화양(華陽)청년회'라고도 불린다. 1920년대 경북 청조 지역에서 청년운동과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청년운동 단체다. 주요 활동사항은 일본상품 불매 운동과 근검절약 계몽이다. 이를 위해 도주소비조합(道州消費組合)을 조직했다. 김복진 선생은 고려청년회 활동 중 일경에 피체됐다. 그 후 1930년 11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 6월을 받아, 미결기간을 포함해 6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김복진 선생은 독립유공자보다는 조각가로서 세간에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조각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는 도산 안창호(安昌浩)가 서거하자 제자 이국전(李國銓)에게 도산의 안면상을 뜨게 했다. 이로 인해 일경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1939년 독립에 대한 염원을 살려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보은 법주사의 금동미륵대불 제작에 착수했다. 시멘트를 사용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았지만, 자금난으로 중단됐다. 이후 그의 제자 윤효중이 1963년 완성시켰고 1990년 금동불로 다시 만들어졌다. 김복진 선생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그의 친동생인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1903~1985)이다. 김기진은 일제 강점기 조선문인부국회 상무이사 등 강력한 친일문예조직의 중추적 인사로 활동했다. 김기진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과 친일의 길, 양갈래로 나뉜 비통한 형제상이다. 김복진 선생은 마흔의 나이로 병사했다. 묘소는 고향마을인 팔봉리와 구암리에 걸쳐 놓인 팔봉산 자락(구암리 산15-4)에 위치했다. / 성홍규기자
[충북일보]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100년 전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조선인들은 '대한 독립만세 만세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왔다. 민주주의, 평화, 비폭력의 정신이 빛난 '기미독립만세운동', 즉 '3·1운동'의 시작이었다. 3·1운동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퍼져 전국으로 확산됐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는 33명. 3·1운동을 모의한 민족대표 대부분은 '보안법', '출판법'. '형법'의 소요죄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33명 중 의암 손병희(1861~1922), 우당 권동진(1861~1947), 청암 권병덕(1867~1944), 동오 신홍식(1872~1939), 은재 신석구(1875~1950), 청오 정춘수(1875~1951) 등 6명은 충북 출신이며 괴산 출신인 권동진을 제외한 5명은 청주 출신이다. 6명의 민족대표 가운데 정춘수를 제외한 5명의 동상은 청주시 상당구 수동 159-1 삼일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삼일공원은 충북도가 민족대표의 애국혼을 기리고 3·1정신을 되새기는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80년 8월 15일 준공했다. 태극모양의 바닥과 횃불모양의 조형물은 3·1운동의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준공 당시 6명의 동상이 세워졌지만, 정춘수 동상은 1995년 해방 50주년 과거사 청산의 일환으로 친일행적이 밝혀져 1996년 2월 8일 시민단체에 의해 철거됐다. 후손들에 의해 단죄된 '변절'은 씁쓸하다. 우암산(338m) 자락에 위치한 삼일공원에서는 청주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민족대표들의 눈이 목숨을 걸고 되찾아 준 주권을 후손들이 잘 쥐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 우선 미세먼지 없는 휴일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청주 삼일공원을 찾아보자. 100년 전 순국선열들의 순결한 숨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 / 안순자기자
[충북일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순국선열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충북 학생들의 만세 소리가 지역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다양한 기념행사를 통해 나라와 지역을 지켜온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항일운동 정신을 되새겼다. 진천 서전고는 지난 1일 오전 이상설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기념식과 만세행진을 했다. 서전고가 주최하고 서전고 학생자치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 등 3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교정에 있는 이상설 선생 청동 입상 앞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연 뒤 서전중, 동성중을 거쳐 약 3㎞ 구간의 거리행진을 실시했다. 행진 후에는 학교 앞 돌실공원에서 애국가 제창 플래쉬몹과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만세삼창을 진행했다. 음성 매괴고 역사동아리 학생들도 대소면에서 주관하는 기념행사에 참여해 3·1 독립만세추념비 묵념, 3·1절 노래제창 등을 하며 그 날의 정신을 되새겼다. 충주중산고 학생들은 충주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3·1운동 기념식 행사에 참여해 시내에서 관아공원까지 만세를 부르며 3·1운동을 재현하는 시가행진을 함께했다. 충북도교육청도 김병우 도교육감과 부교육감, 본청 국·과장, 직속기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3·1절 기념행사를 열었다. 지난 1일 오전 김 교육감과 간부들은 낭성면에 위치한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과 묘소를 찾아 헌화와 묵념을 한 뒤 만세삼창을 진행했다. 이어 상당공원으로 이동해 지역을 대표하는 의병장 한봉수 선생 동상에 참배한 뒤 3·1공원 내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을 찾아 3·1절의 역사적 의의와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선 선열의 독립정신을 되새겼다. 이후 김 교육감과 간부 일행은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도민들과 함께 3·1절의 뜻을 기렸다. 도교육청은 3·1절 100주년을 기념해 본청 정문과 현관 입구, 도로변에 현수막을 게시하고 정문 진입로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등 3·1절을 기리는 환경을 조성했다. 4일 월례조회에서는 전 직원들의 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 삼창, 3·1절 노래 제창 등 3·1절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 유소라기자
[충북일보]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3·1절 100주년을 맞아 충북 곳곳에서 기념식이 이어졌다. 충북도는 지난 1일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오상근 애국지사를 비롯한 도내 광복회원, 사할린 영주귀국자, 보훈단체장과 각계각층의 도민과 학생 등 1천500여 명을 초청해 100주년 3·1절 기념행사를 열었다. 기념식에서 국내항일운동과 3·1운동 관련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고(故) 김기순 애국지사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공영인(91·영동), 박명신(77·충주), 이동혁(83·제천), 이옥수(84·청주), 이현원(85·청주) 등 모범 광복회원 5명이 충북지사 표창을 받았다. 이시종 지사는 기념사에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자존을 위해 온몸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께 경의를 표한다"며 "100년 전 숭고한 3·1독립정신을 오롯이 이어받아 강호대륙으로 웅비하는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힘차게 준비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은 시군별로 이어지는가 하면 만세운동 재현, 나라사랑 걷기대회, 전국 횃불운동을 재현하기 위한 것대산봉화제, 기념음악회 등도 진행됐다. 증평군은 군청 광장 및 시내일원에서 3·1운동 기념행사를 했다. 이날 청년외교단과 신한독립당에서 독립을 위해 힘쓴 연병호(1894~1963) 선생의 손자 연규은씨, 청안만세 시위 중 순국한 이찬의(1878~1919) 선생의 고손(高孫) 이정표·정우씨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1천여 명의 주민은 농협하나로마트(증평읍 창동리)와 증평장뜰시장을 지나 군청을 돌아오는 1㎞구간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제천시 장락청소년문화의집은 충북국학원 제천지부와 함께 청소년을 대상으로 역사특강을 했다. 영동군과 3·1운동애국지사숭모회는 매곡초등학교 앞 숭모비에서 독립정신을 되새기며 유족대표 등이 차례로 헌작, 합동 묵념을 올렸다. 매곡초에서 노천교에서 삼일절 만세 운동을 재현하기도 했다. 한국도로공사 충북본부 오창(통영 방향)휴게소는 고객들에게 태극기와 태극무늬 스카프를 무료로 나눠줬다. 보은교육지원청은 보은읍 충원탑 및 뱃들공원에 위치한 소녀상 등 두 곳을 찾아 참배를 하며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문장대 정상을 찾은 탐방객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삼창 행사를 펼쳤다. 충주 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는 충주시 성내동 관아골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행사를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회복과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 지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