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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0.25 14:22:02
  • 최종수정2017.10.25 14:22:02

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누군가 한 여름 머물렀을 길가의 나무의자에는 지난 밤 내린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들이 자기 자리인 양 앉아 있습니다. 빈 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의자에서 바라보았던 풍경들을 상상하며 가만히 눈을 맞춰 봅니다. 자연의 절기는 어김이 없어 벌써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갑니다. 이제 곧 겨울이 도래하면, 빈 의자 위 낙엽도 찬바람이 휩쓸어가겠지요.

저녁 무렵 다시 비가 내렸습니다. 퇴근 길, 버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한 아이가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아이가 찾는 것은 달님이었어요. 검은 구름에 가려진 달님은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네요.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이는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달님이 비에 젖으면 어떻게 하지·"

아이의 그 말이'퉁'하고 잊었던 동심의 세상으로 이끌어요. 아이의 시선은 맑고 순수하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말하니까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지식이 쌓이고 삶을 배우며 익혀가죠. 어른들은'달이 비에 젖는다.'라는 발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달은 구름보다도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서, 우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예수님은 성경(막 10:14)을 통해"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제지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다.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어린아이의 믿음은 순수합니다. 일체의 의심 없는 순정(純正)한 마음이니까요. 어른들은 자신의 지식이 담긴 항아리에 현상과 생각을 넣어본 뒤, 판단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의심이 깃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진리의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아이의 순정한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파하신 팔만대장경을 줄이면 금강경(金剛經)이고, 더 좁히면 <반야심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시 반야심경을 8자(字)로 바꾸면 결국'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하지요.

'산속의 스님이 달빛에 반하여 / 호리병에 물과 함께 담았지만 / 절에 도착하면 곧 깨닫게 되리 / 병 기울여도 달이 없다는 것을'

고려 때 문신 이규보의 시 <우물 속의 달(詠井中月)>입니다. 의미를 곱씹을수록 생각이 익는 시입니다. 분명 호리병에 달을 담았는데 절에 도착하여 물을 따라 보니 알맹이인 달이 쏙 빠졌어요. 즉'색즉시공(色卽是空)'이 된 것이죠. 달(色)은 없고, 빈(空) 물만 남았으니까요. 그러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그곳에 달이 둥실 떠있겠지요. 그 순간, 스님은 무릎을 쳤을 겁니다. 물속의 달은 허상(虛像)이라는 사실을 깨우친 거죠. 그제서야 스님은 깨달음의 달님을 마음에 온전히 품을 수 있었겠지요. 바로'공즉시색(空卽是色)'이 아닐까요. 빈(空) 마음에 깨달음의 달님(色)이 생겨났으니까요. 공과 색의 절묘한 순환이며, 균형인 거죠.

어린 시절, 캄캄한 밤길에는 어김없이 달님이 따라다녔죠. 걸어가도 기차를 타도 언제나 같은 속도로 다정한 친구처럼 머리 위에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면서 그 달님은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죠. 어디론가 떠나버린 겁니다. 그런데 지난 추석, 그 달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어린 조카가 골목길을 걷는데 혼잣말처럼 웅얼거립니다.

"하늘에 있는 달님은 왜 나를 따라다니지·"

아, 그랬군요.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달님을 보기 위해 밤하늘을 바라보았죠.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마냥 달님은'씩'하고 미소 짓습니다.

"저 달님은 아이만 좋아해. 삼촌이 너 만할 때, 언제나 따라다녔던 달님이거든."

깊어가는 가을에 가슴이 허(空)하다면, 행복한 달님(色)하나 따뜻하게 마음에 담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만난 달님은 삶의 에너지가 되는 고마운 색(色)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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