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조정철 묘, 왜 수안보 돌고개에 위치할까

문중 "세번째 부인 영월 신씨의 친정 수안보 일대"
선영 파주에서 불특정 시기에 이장하였을 가능성
'연풍 수옥정 작명= 조정철' 구전은 사실 아닌 듯

  • 웹출고시간2016.04.04 15:52:12
  • 최종수정2016.04.04 15:52:21
[충북일보] 속보= 조정철(趙貞喆·1751~1831)의 묘가 충주 수안보 돌고개(박석고개)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세번째 부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본보 취재 결과, 조정철이 괴산 연풍면의 수옥정(漱玉亭) 이름을 지었다는 구전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충주시는 조선후기의 문신이면서 수안보 돌고개에 영면하고 있는 조정철을 관광 요소로 스토리텔링화하기로 결정,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조정철은 제주도 27년, 남해도서 2년 등 조선시대 최장기 유배생활을 한 인물이면서 제주여인 홍윤애(洪允愛)와의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로 근래들어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제주도는 홍윤애의 일대기를 몸짓언어〔춤〕로 작품화, 무대에 올리는 등 문학·예술·관광이 결합된 삼위일체식 스토리텔링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조정철은 충주 수안보와는 연고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그의 묘가 왜 돌고개 인근에 위치하는 지는 묘소 발견 이후 줄곧 커다란 궁금증이 돼 왔다.

이와 관련해 본도가 취재를 한 결과, 세번째 부인인 영월신(辛) 씨가 어릴적 수안보에 지역에 살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양주조씨 대종회에 따르면 조정철 선영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일대가 민통선 안의 지역이라 접근이 불가능, 막연히 그곳에 묘가 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지난 1994년 전 충주대(현 한국교통대) 박물관팀이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하던 중 돌고개 좌측(수안보 방향)에서 평범에 보이지 않는 미상의 묘를 발견, 이를 보고서에 수록하면서 조정철의 묘가 확인됐다. 당시 보고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안보의 박석고개 왼쪽에 치장이 잘 된 3기의 묘가 있는데, 이것이 경상감사를 지낸 조감사의 묘라고 한다. 현재 촛대석과 상석이 있으나 전혀 어떤 명문이 없어 정확한 관직이나 성함은 알 수 없고 다만 경상감사를 지낸 조씨라고만 알려져 있다.'

양주조씨 대종회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조사에 나서 지역 사학자 등의 고증을 거쳐 조정철의 묘로 최종 확정했다. 한글학회가 지난 1970년대 발간한 《한국지명총람(충북편)》은 조정철 묘 뒷산인 '조산(趙山)'에 대해 '양지말 남쪽에 있는 산. 조감사 모이가 있음'이라고 서술해 놓고 있다.

양주조씨 대종회 조원철 회장은 "문중에서는 조정철 어른의 묘가 파주에서 수안보 돌고개로 이장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장 이유는 세번째 부인인 영월신씨의 친정이 수안보 일대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문중은 영월신씨가 신사륜(辛師倫)이라는 인물의 딸이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생원·진사 합격자를 기록한 《사마방목》, 그리고 문과 급제자를 수록한 《국조방목》에 이름이 보이지 않고 있어 큰 벼슬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옥폭포 우측 암벽에 '趙貞喆' 암각자가 보인다.

한편 문중과 일부 자료는 괴산 연풍면 수옥정의 이름을 조정철이 지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수옥폭포 우측 암벽에는 해서체로 쓴 '趙貞喆' 암각자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1711년(숙종 37) 임수간(任守幹·1665~1721)이 조선통신사로 가던 중에 지은 《동사일기》 5월 21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술돼 있다.

수옥정 정자 뒤로 수옥폭포가 보이고 있다.

'아침에 주인 조의중(趙毅仲)과 수옥정(漱玉亭)을 지나다가 폭포를 보았는데, 깎은 듯한 석벽이 3면(面)에 둘렸고 고목과 푸른 덩굴이 울창하게 뒤얽혔다. (중략) 못가에는 판판하고 널찍한 반석이 있어 마치 먹줄을 치고 깎은 듯한 체대 같으며, 그 위에는 백여 명이 앉을 만 하였다. 그리고 바로 곁에 조그마한 정자가 있으니 이는 의중(毅仲)이 창건한 것이다.'

조의중은 현종~영조 연간의 인물 조유수(趙裕壽·1663~1741)를 말하고, 그는 연풍현감을 지낸 바 있다. 정자명 수옥정은 중국 소식(蘇軾·1037 ~ 1101)의 시 〈개선수옥정시(開先漱玉亭詩)>에 처음 등장한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