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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 꼭 그해, 충북에서는 무슨 일이?

전인위 충북 대표, 막 귀국한 김구 예방
충북출신 임정요원 홍진·황학수도 귀국
광복군 명단 발표…국내 가족 안심시켜
조선국군준비대 등장 6.25 어두운 징조

  • 웹출고시간2015.08.10 20:33:31
  • 최종수정2015.08.10 21:05:02
[충북일보] 70년전 꼭 그해, 충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1945년 8.15 광복으로 36년간 잃었던 국권을 되찾으면서 도하 각 신문지면은 흥분과 희망으로 넘쳐났다.

당시 충북과 관련된 내용으로 새 조선 건설을 위한 식량 확보, 자치치안유지회 조직, 미 군정청 충청북도 지사대리 임명, 귀국한 김구 예방 등이 기사화됐다.

청주 3.1공원에 조성된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이밖에 충북출신 임정요인 귀국, 한국광복군 명부 발표, 조선국군준비대 충북사령부 구성 등의 내용도 보도됐다.

◇ 새 조선 건설을 위한 식량 확보

매일신보는 광복 이틀후인 1945년 8월 17일자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자료를 인용, 당시 식량 사정을 이례적으로 기사화했다.

'16일 현재로 각도 창고에 확보되어 있는 식량은 전부 1백2만3천8백76석이나 된다. 그러므로 일반은 조금도 불안한 생각을 가지지 말고 지도자를 신뢰하여 새 조선 건설로 동포된 지성을 받쳐야 할 것인데….'

당시 보도는 사회불안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로, 그해 8월 충북에는 5만1백70석으로 비치돼 있었다.

◇ 자치치안유지회 조직

제천지역 치안 유지를 위해 관내 유지들이 회합했다. 매일신보는 이에 대해 8.15라는 특수상황 속에서도 제천의 민심이 극히 안온하고 일사불란하다고 보도했다.

'종래 경방단원들도 제1선에 나서서 요소마다 경비를 하여 민심은 극히 안온하다. 이밖에 시골 각처에는 면을 중심으로 유지들이 파견되어 직접 면민들은 지도하고 있어서 군내 전체로 일사불란한 치안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현상이다.'-<매일신보 1945년 8월 18일>

◇ 충청북도 지사대리 임명

미 군정청은 1945년 11월 3일 충청북도 지사대리로 황인식(黃仁植)을 임명했고(임명사령 제27호), 닷새 후에는 레이·씨·세네이트(RayC.Senate)를 충북도지사로 정식 임명했다.(임명사령 제29호)

◇ 귀국한 김구선생 예방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참석했던 충북의 장준(張埈) 등 각도 대표들이 1945년 11월 26일 중국에서 귀국한 김구(金九) 선생의 집을 방문했다. 서울신문 1945년 11월 27일자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각도 대표들은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선생 일행의 귀국을 충심으로 환영하는 동시에 선생들의 苦鬪에 경의를 표한다. 현하 긴급한 문제는 우리 민족의 총역량을 집결 통일하는데 있다. 민족통일을 확립함에는 우선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를 제외할 것을 원칙으로 해야 된다. 그리고 통일정부는 반드시 전국 각지의 인민 대중의 요망을 토대로 출발되어야 한다.'

◇ 충북출신 임정요인 귀국

광복 석달이 넘어서면서 중국에 있던 임정 요원들이 속속 귀국했다. 이에 서울신문은 임정요원을 소개하는 코너는 마련했고, 충북출신 인사로는 임정 의정원의장 홍진(洪震)과 국무위원 황학수(黃學秀)가 소개됐다. 서울신문 1945년 12월 3일자는 홍진에 대해 '충주 출생으로 기미년 독립만세 때 해외로 망명하여 상해에서 조선독입인시정부에 가담하였다', 황학수에 대해서는 '제천 출생으로 기미면 중국으로 들어가 임시정부에 가담하였다'고 적었다.

◇ 한국광복군 명단 발표

동아일보가 임시정부 군대인 한국광복군 명부를 일부 공개하였다. 동아일보는 그 이유에 대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후 (중국)각지에 흩어져 있던 우리 청년 장병들은 어떻게 되었나 국내에서는 그 가족이 그들의 생사에 대하여 밤낮으로 초조히 생각하고 있기에 (…) 고국의 부모형제들에게 안도의 감을 주게 하는 동시에 조선재건에 마음 든든한 소식을 주기 위함'(12월 6·&·12일자)이라고 적었다. 충북출신으로는 양재연·정덕기·김상갑 등 27명이 소개됐다.

◇ 조선국군준비대 충북사령부 조직

조선국군준비대가 조직됐다. 자유신문 1945년 12월 18일자는 '붉은 피를 받쳐 조국의 간성이 되기를 맹서하고 아직 패잔일병의 최후 총검이 번쩍이던 8월 17일 시내 교동국민학교에서 귀환장변대라는 조그마한 간판 밑에서 출발하였던….'이라고 국군준비대의 출범을 보도했다. 충북에서는 상비군이 1천명, 예비군이 4천명 가입했다. 그러나 이 단체는 좌익계열로 6.25 동란의 어두운 징조였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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