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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충혼탑 위치·6월6일=현충일, 졸속으로 선정

토지·곡식神은 사직단·전쟁 희생자는 고을 북쪽 여단에 모셔
조선시대식 현충일도 6월 망종과 달라

  • 웹출고시간2015.06.04 20:18:00
  • 최종수정2015.06.04 20:18:00

1957년 6월 6일 청주 사직동에 현충탑을 건립한 후 시민과 유가족들이 충혼제를 지내는 모습이다.

[충북일보] 6일이 금년 현충일인 가운데 전국 대부분의 충혼탑이 조선시대 사직단 자리에 서있고, 또 6월 6일로 정한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계에 따르면 이승만 정권은 지난 1956년 4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거해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했고, 이후 조선시대 사직단이 있던 자리에 충혼탑이 대대적으로 건립됐다.

앞서 일제는 청주의 경우 서공원(현 충혼탑 자리)에 청일·러일 전쟁에서 사망한 전사자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일본인 오쿠마온보(大雄春峰)가 1923년에 쓴『청주연혁지』는 서공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櫻井 장군도 이에 동조하여 재향군인들과 도모하여 그곳에다 청일·러일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의 기념비를 세웠다.'

문제는 조선시대 사직단(社稷壇)은 토지와 곡식신에 대한 제사공간으로 사자(死者)와는 무관했었다는 점이다. 사직의 社는 토지, 稷은 곡식의 신만을 의미하고 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 전쟁이서 죽은 사람이나 억울하게 죽은 이 등에 대한 제사 공간은 '여단'이라고 불렀고 이때의 제사를 '여제'라고 칭했다. 죽어서 가는 곳이 '북망산천'이라는 설에 따라 주로 고을의 북쪽에 위치했다.

현충일을 앞둔 4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한 참배객이 묘역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김태훈기자
청주의 경우 지금의 내덕동 밤고개 쯤에 위치했고, 조선시대 여지도서는 청주의 여단에 대해 '청주의 북쪽 5리에 있다'라고 기록했다.

서울의 경우 북교(北郊)에 국가의 여단이 설치됐고, 이중 단의 서쪽에 전쟁 전사자나 자식이 없이 죽은 무후사자(無後死者) 등 불행한 원혼을 모셨다. 청주를 비롯한 전국 고을도 이를 따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전통방식을 따를 경우 사직단이 아닌 여단이 있던 곳에 전쟁 전사자의 원혼을 모셔야 하는 셈이 되고 있다.

이승만 정권이 정한 '현충일=6월 6일'도 전통제례와 크게 어긋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사자가 모셔진 여단에 대한 제삿날은 매년 7월 15일과 10월 15일 등 두 차례로 반드시 최고 벼슬아치가 제사장을 맡았다.

이와 관련해 국가기록원은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6월은 6.25 사변일이 들어있는 달이고, 24절기 중의 하나인 제사를 지내는 망종이 6월 무렵이며, 1956년 망종이 6월 6일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망종은 일년중 가장 바쁜 달로, 국가의 주관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사례나 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망종은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으로, 얼마전까지 농촌에서는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던 시기였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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