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은 소통의 다른 이름이며 표현이다. 일단 문 앞에 서면, 그 안에서 펼쳐질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오감이 발동한다. 그렇다고 그 안에서 내가 상상했던 것들이 똑같이 전개되진 않는다. 아무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그저 문턱을 넘기 전 문 앞에서 자유로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앞으로 펼쳐질 대상과 무언의 신고식을 즐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문이 주는 이미지나 분위기가 모두 다르기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동안에 보았던 문(門) 중 나의 오감을 자극했던 것들이 많지만, 최근에 다녀온 그곳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히 다가온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입구에서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가고자 기다리던 터였다. 입구에 딸린 대문 격인 울타리일까. 아무튼 문에 뚫린 틈새로 비치는 연둣빛에 눈이 부시다. 앞으로 다가가 그 뚫린 부분을 자세히 살피니 새의 형상이다. 철새가 마치 따스한 봄날 연둣빛 나무를 스쳐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이어 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논둑엔 자운영 꽃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마른 갈대들이 바람결에 너울댄다. 그 속에서 땅을 일구는 순박한 농부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안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순천만의 평화로운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다.
입구를 들어가고자 기다리던 사람의 등만 쳐다보았다면, 문에 조각된 철새의 형상을 볼 수 없었으리라. 순천만은 갈대와 습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이 지역의 상징으로 철새를 대문에다 조각한 것 같다. 마침 그 틈새로 새잎 돋은 나무가 생기를 불어넣어 철새가 날아가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안을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미 문(門)을 통하여 순천만과 소통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은희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월간문학 등단,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문(文)을 짓는다. 두 번째 관문에 들어선다. 문(門)보다 조금 더 어려운 문(文)이 아닐까 싶다. 약으로 치면 매우 쓰디쓴 약, 고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기억의 힘으로 문자화한다. 얼마나 대단한 문(文)인가. 이 과정을 거쳐 내가 스쳐온 흔적을 사후에도 영원히 남을 기록을 남기니 말이다. 무엇보다 작가라면 글을 멋지게 지어 남기고 싶은 마음 굴뚝같으리라.
순천만 기행에서 돌아와 아니 문(門)에 조각된 철새를 본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머릿속은 분주해진다. 그 장면은 나의 뇌 한구석을 헤집고 똬리를 튼 것이다. 녀석은 부르지 않아도 일상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랑 놀자고 한다. 참으로 미칠 노릇이 아닌가. 먹고 사는 일이 먼저인데 순간순간 놀아달라고 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언제쯤이면 저 철새처럼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간이 많다고 글이 술술 풀리는 건 아닌 것 같다. 하나 분명한 건, 뇌리에'그것'이 정확히 구성되기 전까지는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애면글면하며, 사유는 더 깊어진다. 그렇게 고뇌하여 얻어진 문장(文章)은 탄탄하리라.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독특한 문장(文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순간이다. 이 얼마나 영광된 순간인가. 글쟁이는 그 멋과 맛을 알기에 시시포스의 고역을 계속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問), 결미를 짓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가.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네가 정작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어 고역을 마다치 않고 짓는 행위를 계속하는지 말이다. 이 질문은 내가 붓을 꺾지 않는 한 이어질 것이고, 그 해답 또한 내 안에서 찾아야만 하리라.
순천만 입구에서 본 철새가 나의 시선을 붙잡은 건 아마도 내 모습과 같은 형상이라 여겨선지 모른다. 문 틀 안에 갇혀 있는 새의 모습, 그러나 그 틈새로 완연한 봄빛이 스며들어 연둣빛 희망이 감돈다. 그러니 새가 문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갇혀 있지 않은 철새이다. 마치 내가 창살 없는 세상의 감옥에 갇혀있으나, 희망을 안고 자유로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거나 같다.
결국 이런 내 행위는 현실과 욕망의 다툼처럼 보이나 나〔自我〕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문(門)에 갇힌 철새가 순간 훨훨 나는 착시를 일으킨 것은, 아마도 현재 어쩌지 못하는 내 자리를 탓하며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형상이 꼭 나인 양 중첩하여 바라보고 느낀 사유로 문(文)을 짓고, 이 모든 과정은 문(問), 묻고 또 묻는 일로 시작되고 끝을 맺으리라.
문(門), 문(文), 문(問)의 과정을 통하여 만물과 소통하고, 내 안의 나를 찾아 달래고 어루만져, 세상에 다시 설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