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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6.23 16:45:0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당신을 꺾어야 하는 내 마음은 아릿하기만 합니다.

그처럼 예쁘지만 않아도, 분홍빛 고운 옷만 차려입지 않았어도 사람들 눈에 쉬 띄지 않으련만, 당신의 고상함은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당신을 탐하러 다가오는 사람에게도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당신을 멀리서도 쉬 알아볼 수 있답니다. 한 번만이라도 당신의 그 고운 자태를 본 사람이라면 꺾고 싶은 충동 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요.

둔덕산을 향해 한발 한발 오릅니다. 당신을 보고 싶은 마음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게 합니다.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고작 1주일여, 그것도 찾아와야 만나지 나를 만나러 찾아오는 법은 없답니다.

올해에도 아마 이번 주가 지나면 당신은 그 고운 자태를 감추고 홀연히 떠나고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찾아가는 나를 반기는 것도 아니지요. 1년 만의 해후에도 그저 벙긋이 미소 짓는 것으로 대신하고 마는 당신, 지금쯤 곱게 분 바르고 발그레 미소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혹여 때를 잘못 선택했다간 1년 동안 기다린 보람도 없이 헛걸음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파른 돌 자갈길이 숨을 몰아쉬게 합니다. 이렇게 비탈지고 험한 산길엔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늘 붙어 다니다시피 한 산행 동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혹여 친구가 따라붙었으면 다른 길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가 싶더니 모자챙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숨도 턱에 차오릅니다. 그래도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20여 년 전쯤 처음 이 산에 올랐을 때 나를 사로잡는 게 있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낭자처럼 무리지어 늘어선 당신, 그 아름다운 색에 현혹되어 풀 섶을 헤치고 가까이 다가가니 사진에서만 보아온 당신이었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무척 신기하고 아름다워 그 모습을 분주히 카메라에 담았지요. 하지만 그 행복도, 그 가슴 설렘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산등성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낭을 메고 포대자루를 든 일행들이 '저기도 있다.'하면서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그들의 포대에는 뿌리를 드러낸 당신들이 가득했습니다. 먹이를 만난 맹수의 모습이랄까. 다짜고짜 대들어 연장으로 당신들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위세에 눌려 뭐라 말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내 앞의 당신은 캐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나를 바라봅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비위에 거슬렸는지 나를 흘금거리더니 이내 반대편 능선을 향해 바삐 사라지고 맙니다. 내가 조금만 당찼어도 그들을 제지했을 터인데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고 비겁자였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내 앞에 있는 당신은 고작 다섯 포기!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 불한당이 다시 캐러 올 것 같아 부러진 소나무 가지를 끌어다 보이지 않게 덮어 주었습니다. 한 포기 캐서 가지고 오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애써 참아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산에서 처음 본 당신은 연지곤지 찍고 초례청에 들어선 새색시처럼 눈앞에 자주 아른거렸습니다. 그 환상은 직장까지 나를 따라왔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 서둘러 둔덕산으로 향했습니다. 지난주에 핀 당신은 시들어 자취를 감추고 대신 옆에서 피어난 당신들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겼습니다. 나는 누가 볼세라 얼른 배낭에서 호미를 꺼내 당신을 캐어 담았습니다. 그것도 세 포기를.

애지중지하며 집에 돌아와 화분에 굵은 모래를 담고 정성을 다해 심었습니다. 첫날은 볼그스레한 모습이 예쁘기만 하더니 하룻밤 자고 나자 잎이 처진 게 생기를 잃은 듯했습니다. 옮겨 심은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그렇겠지 했는데 영 깨성하지 못하더니 시름시름 앓기까지 했습니다. 괜히 캐왔다는 후회가 엄습해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며 자주 물을 주었지만, 나의 간절한 바람도 소용없었습니다. 대자연 속에서 영롱한 이슬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청량한 바람을 쐬며 자란 당신들이 아니던가요. 산새들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지내다가 차들이 내뿜는 매연,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의 플라스틱 보금자리, 모두 당신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부적합한 환경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다음 해부터는 당신을 만나도 캐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친구와 같이 그곳에 간 일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신을 보자마자'이런 행운이'하면서 캐려고 했습니다. 나는 친구를 설득하느라 내 짧은 산림지식을 총동원해야 했지요.

이제 개불알꽃이 필 즈음이면 혼자서 둔덕산을 찾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었습니다. 다행히 꽃이 피었으면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주변을 서성이며 늘어난 포기는 없는지 살피며 즐긴답니다. 등산로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오거나, 아쉽게도 헤어질 시간에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꽃송이를 모두 따서 호주머니에 넣습니다. 혹자는 자연을 소중히 할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 더구나 멸종위기의 식물을 망가트리는 행위라고 혹평할지 모르나 그런 모욕쯤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잘못된 행동이 사라져가는 당신의 개체를 늘리고 멸종위기에 처한 당신을 살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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