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저축을 한다

2020.04.05 15:23:50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정기검진 결과에서 비타민 D가 부족하다고 한다. 비타민 D쯤이야 햇볕을 쬐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줄 알았고, 평소 야외 활동을 많이 한다고 여겼기에 햇볕을 오히려 과다하게 쬐고 있는 것은 아닌 가고 여겼는데 의외이다. 검사 결과를 의사가 전화로 직접 알려주는 시스템인데 친절하게도 앞으로 햇볕을 가능한 한 많이 쬐라 한다. 이 말을 들으며 불현 듯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자타 공인의 운동광인 그 친구는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섭생에 유의하여 고기를 절제하고 앞으로 운동을 더 많이 하라는 조언을 했단다. 그러자 그 친구가 '운동을 더 하라구요? 그럼 저 죽어요.'라 했대서 웃었는데 야외 운동으로 까맣게 그을려 사는 나한테 햇볕을 더 쐬란다. 도대체 비타민 D의 역할이 무언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혈중 칼슘과 인의 농도를 조절하며 장에서 칼슘의 흡수를 도와 뼈의 성장을 돕고 튼튼하게 하는 호르몬 역할을 하니 중요한 영양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 몸이 참 신기하다. 평소에 경험한 것들을 묵묵히 저축했다가 필요할 때꺼내 쓴다. 햇볕을 받아 비타민 D로 활용하고, 어렸을 때의 좋은 경험이 훗날 성인이 되어 어려운 상황에서 버팀돌로 작용한다. 과거에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훗날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토해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에게 기왕이면 좋은 것들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신기한 것이 또 있다. 마음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짐이라는 뜻인데 몸의 어원은 모음이라 하며 '모아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늘과 땅의 정기를 모으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합하여 몸이 이루어지는 성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몸은 자연에서 나오는 음식을 섭취하여 에너지를 모아 지탱한다. 우리가 통상 부끄럽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수(羞-부끄러울 수)에 음식이라는 뜻도 있다. 사람은 먹어야 한다. 먹고 살아야 내 몸을 살릴 수 있는데 내 몸을 위하여 다른 동물도 먹어야 하고 식물도 먹어야 한다. 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먹기는 한다만 먹을 때는 늘 부끄러운 마음 즉 미안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으면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되고, 함부로 탐식도 안하게 되며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남기는 일도 없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조이불망 익불석숙(子 釣而不網 ·不射宿-공자께서는 낚시질을 하시되 그물질은 하지 않으시고, 주살질을 하되 잠자는 새를 쏘지 않으셨다.)' 있다고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필요한 만큼만 취하여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먹방에서 아귀처럼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신성한 음식에 대한 모독이다. 김지하 시인은 밥이 하느님이라고도 했는데.

어느 심장병 환자가 장기 이식으로 심장을 기증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고 주소도 모르던 어느 여인의 집을 자기도 모르게 찾아가게 되었단다. 처음 본 여인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심지어 사랑을 느껴 이상히 여겼는데 알고 보니 자기에게 심장 기증한 사람이 사랑했던 여인이란다. 뇌와 더불어 심장도 기억을 한다는 방증이다. 사람을 보고 호감을 느끼는 것도 가슴이 먼저 하고, 과거 익숙했던 것을 떠 올리는 것도 몸이 기억함에서 비롯한다. 행복도 화사한 분위기나 미려한 말보다 맛깔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었을 때 내장이 느끼는 강도가 제일 세다고 한다.

햇볕이 좋다한 들 넘치면 피부가 타듯이 매사 과유불급(過猶不及)이요 절제는 기본이다. 정돈되고 꼭 필요하며 엄선된 내용으로 저축되면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없으리라. 몸에 좋다는 건강 음식을 찾듯 후대들이 행복한 경험을 얻도록 어른이 모범되고 지혜로운 삶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배려다. 우리는 후손들이 잘 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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