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 낯선 곳으로

2016.08.18 16:24:00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밤 바람에 살짝 풀어져도 맘 편하면 된다.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꿈꿀 때 누군가가 손 내밀어 준다면, 그 손을 잡고 어깨춤이라도 출 수 있다면, 입술 비집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별들과 숲속의 나무들을 벗 삼아 지친 마음 부려놓을 수 있다면 지난 여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이같은 당돌함이 어디서 생겼는지, 가당찮고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할 때도 있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워 젖멍울 앓기도 하고 이 도시를 탈출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낯선 곳을 향해 두리번거린다. 이럴 때는 바다보다는 산이 좋다. 바다가 사유의 보궁이라면 산은 은유의 숲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듯 숲과 계곡과 하늘과 별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그래서 강원도 정선의 이름 모를 산으로 향했다. 하룻밤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오가는 내내 새로움에 감사하고 일탈의 여백이 주는 향기에 마음 부려놓을 수 있었다. 여행의 백미는 우연성이다. 계획한 여정에 불쑥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만남, 그 속에서 생명의 신비와 가슴 설렘을 느낀다. 가는 길에 잠시 휴게소에 들러 소변을 보는데 찜찜한 생각에 천장을 바라보았다. 제비집이다. 어린 제비형제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오줌 눌 때 거시기 흘리지 마세요.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찌린내는 못 참겠어요." 제비형제들의 지지배배가 내게 일침을 가하는 소리로 들린다.

폐광을 예술공간으로 재생한 삼탄아트마임. 검은 일상으로 얼룩진 광부들의 흔적을 기억하고 새로운 창조를 캐내는 곳이다. 오래전에 독일의 뒤스부르크 졸베라인광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폐광산 시설을 활용해 공연장, 전시장, 카페, 레스토랑, 공공미술 등으로 특화시킨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던 동굴은 와이너리와 예술공간이 되었다. 검은 피를 토하던 샤워실과 화장실, 사무동과 식당 등도 갤러리가 되고 아티스트 레지던시 공간이 되었으며 전시장과 수장고로 이용되고 있다. 탄광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카이브센터와 레일바이뮤지엄이 들어섰다. 공간은 역사를 낳고 사랑을 낳는다고 했던가. 광부들의 눈물과 상처가 예술로 새로운 발자국을 만들고 있음에 경외감마저 든다.

정선의 강원랜드를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도박장부터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도박장이 창조경제 문화융성의 요람이 되었는데 현장에서 두 눈으로, 온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그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탄광촌의 변신에 가슴이 심쿵거렸는데 강원랜드에서는 내 영혼에 불꽃이 피기 시작했다 . '화려한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세계적인 컨벤션산업과 문화예술의 숲으로 변신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첩첩산중의 강원랜드가 자연과 문화와 예술과 산업의 조화라니…. 마음껏 희망하고, 그 희망이 현실이 되며, 현실속에 삶의 향기가 있음에 가슴 벅찼다.

내가 즐긴 콘텐츠는 산상음악회와 불꽃페스티벌. 수준높은 음악과 노래는 정처없는 나그네의 심연에 파장을 일으키고,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쇼를 통해 뜨거운 열정으로 빛나는 인간의 도전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프린지공연, 오페라갈라공연, 밸리록콘서트, DJ페스티벌, 썸머콘서트 등 여름 내내 문화예술로 풍요롭다. 사계절 테마가 있는 기획은 생태적 원시성이 주는 본연의 감동과 함께 새로움의 연속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은 자연이다. 인간 또한 위대하다. 자연을 닮아가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곳은 하느님이 주신 예술과 인간의 창조력이 경합하는 설렘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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