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부는 청주의 바람

2016.04.14 15:27:06

변광섭

공예디자인벨트 총괄코디

올 봄은 예년보다 반 박자 빠르게 왔다. 봄인가 싶으면 눈이 오고 바람까지 심술궂어 겨우내 준비했던 꽃대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왔는가 하면 어느새 가버리는 계절이기도 한데 올해는 꽃들의 잔치가 비교적 순항하고 있으니 복된 일이다. 사람들은 4월의 풍경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 산으로 들로, 강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봄을 찾아 떠나는 발걸음이지만 대자연을 찬미하며 생명의 기운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함이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나는 지난주에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라는 이름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은빛 햇살이 쏟아지는 푸른 바다,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숲길 물길 들길, 색다른 박물관 미술관 등의 문화공간, 달달한 맛과 멋으로 가득한 사랑과 낭만의 섬 제주. 청주공항 덕분에 서울가는 시간보다 제주도가 더 가까우니 하루 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떠나고 싶은 자는 제주여행을 해도 좋겠다. 더군다나 올해는 제주도가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됐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볼거리가 준비돼 있지 않을까.

제주도 개막식에 청주시가 참여하게 된 것은 전년도의 동아시아문화도시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시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60여 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동아시아가 하나되는 새 역사를 만들었으니 그 성과를 공유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제주도민들에게 '한 수' 가르치며 함께 손 잡고 나아가야 하는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다.

청주가 준비한 것은 도시홍보와 공연이벤트, 그리고 청주가 자랑하는 직지와 젓가락콘텐츠였다. 생명문화를 테마로 한 1천500년의 역사,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 문화기반시설과 예술행사, 시민들의 삶과 사랑을 하나씩 소개했다. 금속활자본 직지의 가치를 알리고, 올 가을 열리는 직지코리아페스티벌을 홍보하는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주도 개막식을 빛내기 위해 청주의 대표적인 공연단체 놀이마당 '울림'이 신명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정적이 감돌았던 제주국제컨벤션센터가 한 순간에 어깨 들썩거리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제주도에서는 중국 닝보시, 일본 나라시가 참여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청주가 준비한 프로그램 중 최고의 인기품목은 분디나무 젓가락이었다. 지난해 11월11일 세계 최초의 젓가락페스티벌을 청주시에서 개최할 때 발굴한 청주의 생명콘텐츠가 바로 분디나무 젓가락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월령체가인 고려가요 '동동'에 "분디나무로 깎은 젓가락 내 님 앞에 놓았는데 남이 가져다 뭅니다. 아으 동동다리"라고 노래했는데 분디나무는 산초나무로 초정약수의 초(椒)가 산초나무를 의미하기에 주목 받았다.

문의면 벌랏 한지마을의 이종국 작가가 겨우내 분디나무 젓가락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무를 채취해서 찌고 껍질을 베낀 뒤 백골의 나뭇결을 바르게 잡고 젓가락을 만드는 일을 통해 천 년이나 문헌 속에서 잠자고 있던 분디나무 젓가락을 재탄생시킨 것이다. 결이 부드럽고 단단하며 향기로움까지 간직하고 있다. 게다가 향균작용을 하고 있으며 보관이 용이하다. 우리지역 야산에 자생하고 있어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신혼여행 온 부부는 평생 행복을 기원하며 부부젓가락을 만들어 갔다. 수학여행 온 대학생은 부모님 생일 선물을 하겠다면 예쁘게 포장해 갔고, 식당을 운영하는 중년의 여인은 요리할 때 쓰겠다며 큰 젓가락을 주문했다. 가족젓가락, 생일젓가락, 결혼기념일 젓가락 등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데 최고라며 입을 모았다. 젓가락을 통해 지난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새로운 천년을 이어갈 수 있는 창조성을 확인했으니 이번 제주도 여행은 무익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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