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문학콘서트의 교훈

2016.06.09 15:41:47

변광섭

공얘디자인벨트 총괄코디

손으로 쓴 엽서 한 통이 배달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우편물은 대개가 잡지이거나 세금 고지서이기 때문에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편지를 구경하는 것은 보물찾기보다 더 힘들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메일로 서신을 주고받거나 핸드폰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묵향 가득하고 필체 유려하며 종이의 결을 느낄 수 있는 편지는 박물관이나 문학관에 가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받은 엽서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였다. 청주에서 40여 년을 교육자로, 시인으로 활동하신 김효동 선생님이 보냈는데 짧지만 명료한 메시지가 내 가슴을 진하게 울렸다. 내용인즉 얼마 전에 국립한국문학관 청주 유치 기원 문학콘서트의 방청객으로 함께 했는데 "80평생을 살아오면서 이처럼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문학이야기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청주가 문화로 행복하고 예술로 하나 되는 미래를 위해 힘써 달라"는 간곡한 주문도 담겨 있었다.

엽서 한 장이 그 날의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학술회의나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행사가 끝날 즈음이면 관계자만 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날은 이야기와 음악이 함께하는 문학콘서트를 준비했고 무대도 책과 문화가 있는 풍경으로 만들었다. 일상성의 파괴, 새로운 경이를 만드는 과정이 문화가 아니던가.

진행도 새로운 흐름을 자처했다. 정은영 아나운서의 진행과 김승환 충북대교수, 임승빈 청주대 교수, 류정환 시인, 오혜자 작은도서관 관장이 문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경직된 분위기를 타파하도록 했고 시노래프로젝트 '블루문'의 정감 넘치는 시노래가 사이 사이에 곁들여지면서 문학콘서트는 드라마틱한 감동을 만들 수 있었다. 청주의 문학은 신채호와 홍명희의 민족정신, 그리고 정지용의 한국적 감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대한민국의 문학중심 역할을 해 왔다는 메시지에 자긍심을 갖는다. 작은도서관의 화려한 외출 이야기, 문학청년이 겪는 현실적인 아픔, 문학이 융복합 창조콘텐츠를 이끄는 동력으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달 제주도에서 열린 2016제주포럼 문화세션에서도 이와 유사한 분위기를 맛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문화청년들의 이야기를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피아노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건반 88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그 다양성의 조화가 세상을 아름답게 변주한다는 오프닝멘트에서부터 3년 동안 배출된 쓰레기가 작은 병 하나에 들어갈 분량밖에 되지 않고 이것을 업사이클링으로 재탄생시킨 미국의 환경운동가 로렌 싱어, 하반신 마비라는 신체적 장애를 딛고 장애인들의 예술향상을 위해 힘쓰며 행동하는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캄보디아의 온소크니, 젊은 나이에 제주에서 물질을 하며 친환경농사와 친정어머니에 시어머니까지 돌보는 해녀 강경옥 씨의 이야기까지 놓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문화는 언어를 넘어선 언어다. 우리가 문화의 밭을 일구고 예술의 바다에서 노를 저어가며 새로운 지평선을 찾아 나서는 것은 그 곳에 진정한 생명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보다 더 아름답고 값진 감동의 물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성만을 고집하고 형식에 얽매여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위대한 예술을 창조할 수 없다. 서로가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노력, 그리고 새로움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매일 창조의 세계를 여는 일이다.

문화는 흘러가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새로 시작되는 낯선 설렘이자 내 삶의 에너지다. 그리하여 문화는 꿈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시대, 아티스트의 시대, 창조의 시대를 어떻게 갈 것인지 고심참담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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