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으로 꽃피는 지방자치

2016.03.03 14:40:20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지혜와 빛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풍경이 빛에 따라 무수하고 다양한 모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도 지혜를 통해 인생을 다양한 각도로 보게 되며 교훈을 얻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희망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혜와 빛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신영복 선생은 진정한 지혜는 톨레랑스(관용)와 노마디즘(인식의 확장)이라고 했다. 이어령 선생은 관심, 관찰, 관계의 3관주의를 강조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새로운 미래의 화두로 제시하면서 역사·자연·예술·문명·지리 등의 상호주의와 콘실리언스(통섭), 공감과 공생을 통해 창조와 혁신의 가치를 이끌어 내고 생명문화의 깃발을 드높이자고 했다.

그날 천안의 한 연수원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지역문화융성 지자체 공무원 워크숍은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례와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길은 많지만 그 많은 길을 다 가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고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든 국가든 지방이든 최고를 꿈꾸며 최상의 상태를 선보이고 싶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상처로 얼룩지고 아픔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와 빛이 필요한 것이다.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서 문화분야 공무원들이 모였다. 정부의 정책사업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이웃 도시의 사례를 엿보고 싶은 요량도 있었을 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동아시아문화도시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사례발표 했다. 동아시아문화도시는 갈등과 대립의 한중일 관계를 문화로 하나되고 예술로 치유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 사업이 10년 이상 지속된다면 노벨평화상에 버금가는 성과로 기록될 것이고 동아시아 평화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웅변했다.

전국에서 20여개의 사례 발표가 이어졌는데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기지시줄다리기, 통영 음악콘텐츠, 인천 근대문화유산 사업 등이 눈에 뛰었다. 북한강 가운에 위치한 버려진 자라섬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재즈페스티벌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한국의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즈를, 그것도 시골의 버려진 땅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의 시선은 냉랭했다. 그렇지만 농부와 학생과 예술인 등 지역민과 함께 하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특화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고 국가 대표축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래된 시간의 창고들을 창의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곳으로 인천 근대문화유산을 주목하고 있다. 개항장 일대의 낡은 건물을 아트플랫폼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주민들의 문화아지트로,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당진의 기지시줄다리기는 잊혀져가는 전통문화를 축제와 문화상품으로 차별화하고 주민들의 상생과 협력의 가치를 이끌어 낸 사례다. 줄다리기를 하는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과 함께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도 했다. 통영은 유네스코의 음악분야 창의도시로 선정됐다. 이 고장 출신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음악제를 개최하고 음악당과 콩쿠르와 음악도시간의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전개하면서 나라안팎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빛은 곧 생명이다. 지혜는 그 생명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는 거름이다. 문화를 마치 진정제처럼 소비하는 사람도 있고, 부와 권력의 또 다른 도구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화는 나와 가족과 지역과 국가를 풍요롭게 하는 빛이며 지혜의 산물이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이 땅을 아름답게 수놓지 않던가. 그리하여 이 땅의 도시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멋과 맛과 향과 결로 물결치고 공감과 향유의 새 시대를 일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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